외부 정보를 담은 전단과 USB 등 물품은 접경지역 북한 주민들에게 분명히 큰 도움을 준다고 이 지역 출신 탈북민들이 VOA에 밝혔습니다. 한국을 방문 중인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전단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 데 대한 반응인데, 탈북민들은 다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은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어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을 방문 중인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19일 남북 접경지역인 철원에서 지역 주민들을 만나 대북 전단에 관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한국 언론들은 퀸타나 보고관이 이날 북한 주민들의 표현의 자유, 정보의 자유가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도 “북한 주민들이 전단을 통해 외부 정보를 접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접경지역 주민들은 대북 전단에 대한 북한 정권의 위협으로 전쟁 불안감에 시달렸으며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지만 타인을 괴롭히고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며 대북전단금지법을 제정한 정부와 여당을 옹호했습니다.
하지만 남북 접경지역 북쪽에 살다가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민 다수의 생각은 많이 달랐습니다.
이들은 고향 주민들에게 외부 정보를 보내는 사안을 놓고 한국 내 여론이 양분되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면서도 전단과 물품 등 외부에서 보내는 정보는 북한 주민들뿐 아니라 향후 통일 비용 절감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전단을 일절 못 보게 하고 초코파이 같은 식량과 물품에는 독이 들었다고 교육하지만, 그런 선전이 다 거짓이란 것을 알만한 주민들은 다 안다는 겁니다
[녹취: 김영철 씨] “제가 알고 있고 제가 느낀 감정은 그게(전단 물품이) 대단합니다, 영향이. 이게 무시 못 하는 겁니다. 유엔에서 말하는 인권이라든가 인식을 발전시키고, 제일 좋게 하는 것은 그것만 한 수단이 없다고 봅니다. 요즘 여기서 말씀하는 게 문화전쟁이라고 하잖아요. 문화적으로 하면 어떤 면에서 우리가 정부가 바라는 평화와 통일 면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한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런 남한 사회와 역사를 알기 쉽게 전해주는 외부 정보가 향후 북한의 개방 후유증을 줄이고 통일 비용을 낮추는 데 큰 기여할 것이란 설명입니다.
평양에서 성장한 뒤 군대를 거쳐 황해남도 배천군에서 살다가 2014년 서해를 통해 망명한 탈북 청년 한설송 씨 21일 VOA에, 과거 대북 전단이 남북한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설송 씨] “팩트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북한이란 나라가 만들어질 때부터 어떤 사기극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봤었는데, 제가 진짜 맹신하고 따라가고 충성하는 정권에 대한 게 까발려진다고 생각하니까 저 자체로 치욕스럽고, 거기서 꽤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탈북하기 위한,”
처음에는 “삐라(전단) 내용이 남조선 괴뢰정권의 음모라고 생각”했는데, “점차 전단 내용을 읽으면서 북한 정권의 교육에 의심을 품게 됐다”는 겁니다.
[녹취: 한설송 씨]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선택으로 외부 정부와 담을 쌓고 있는 게 아니라 국가라고 주장하는 북한 정권에 의해 강압적으로 외부와 차단이 된 상태가 아닙니까? 그런 주민들한테 삐라 등 물리적 도움을 줘서 그들이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외부 정보나 상황에 대해 알 수 있는, 권리를 챙겨주는 게 거기 있던 입장에서 정말 고맙고,”
하지만 주민들의 교육 수준과 성장 배경에 따라 전단에 대한 온도 차가 많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난 2018년 서해를 통해 한국에 망명한 A 씨는 21일 VOA에, 북한에서 받은 교육 때문에 감히 전단을 읽지 못하고 밟아서 흙 속에 묻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강원도에 있는 북한군 1군단 소속 군사분계선 근처 민경부대에서 복무한 뒤 2018년 한국에 입국한 김주원 씨는 탈북 여성들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주희유미TV’)에서 군 복무 시절 접한 전단 내용을 그대로 믿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주원씨/‘주희유미TV’] “그 내용을 보면서 아 이 괴뢰도당 놈들이 자본주의 사회 그걸로 우리를 이용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지, 야, 진짜 한국이 이럴까 이런 생각을 가져보지 못했어요.”
특히 호기심에서 읽었던 전단에 ‘김 씨 가족이 나라의 영도를 제대로 하는가?’란 문구를 보면서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는 겁니다.
김 씨는 그러나 대형 풍선에서 떨어진 초코파이와 달러 지폐는 허기진 군인들에게 매우 요긴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2012년 북한군 복무 중 서부전선을 통해 한국에 망명한 정하늘 씨는 21일 VOA에, “대북 전단의 영향은 분명히 크다”면서 문제는 두 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
우선 조용히 보내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 전단을 보내는 일부 탈북민들 때문에 남한 사회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것과 김씨 정권의 치부를 바로 건드려 주민들이 오히려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의 문을 닫게 하는 병폐가 문제라는 겁니다.
[녹취: 정하늘 씨] “지혜롭게 (전단을) 보내야겠죠. 뱀처럼! 거기에 자극적으로 김정은을 까는 얘기보다 공감할 수 있는,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할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경제력이라든가 한국의 실상을 많이 들여보내야겠고 그런 게 개인적으로 북한 군인들에게 많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김영철 씨도 “서너 살 때부터 세뇌를 받은 북한 주민들에게 김 씨 가족과 체제를 바로 건드리는 것은 ‘역린’을 건드리는 것과 같다”며 대북 전단의 내용을 연성의 힘, 즉 소프트파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영철 씨] “우리 탈북민들이 여기 와서 사는 것! 사장돼서 일하고 비행기 타고 여행 다니고. 나 먹고 싶은 것 식당 가서 고기 사 먹고. 이거 얼마나 좋아요. 여기에 정치가 들어갔어요? 사상이 들어갔어요? 사람이 먹고사는 것은 똑같은데 단지 나는 북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나는 북을 탈출해 한국에 와서 사는 이유 하나만으로 삶이 하늘과 땅 차이가 되는 게 아닙니까? 이런 감성을 건드린다면…”
김 씨는 그러나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과 대북전단금지법 여파로 탈북민 유튜버들조차 전단 언급을 꺼리는 등 자체 검열을 한다며, 북한에 고향을 둔 사람으로 이런 현실이 무척 답답하다고 말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21일 VOA에, 대북 전단 등 정보 유입은 분명히 효과가 있다며 “북한 주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외부 세계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외부 정보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군인들의 의식 변화를 지적했습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 “The best the outside world can do in order to empower the people of North Korea is to send them information…Seventy percent of the 1.2 million KPA soldiers are forward-deployed, south of the Pyongyang-Wonsan line. These military personnel used to be within reach of the leaflet balloons. That is why the Kim regime has always been so sensitive over the balloon launches.”
스칼라튜 총장은 평양 이남 지역에 배치된 북한 인민군의 70%가 전단에 접근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서, 이 때문에 김정은 정권이 항상 대북 전단에 매우 민감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비롯해 북한 고위 탈북민들도 앞서 VOA에, “김 씨 정권에 대항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북한 군대”라며, 한창 공부할 나이에 10년 이상을 수령을 위해 죽는 연습만 하는 등 일생을 망치게 하는 만큼 군인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