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경제 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러시아 내 북한 외화벌이 회사들도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서방세계가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경제망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하면서 가명 계좌를 통한 북한의 송금도 어려워져 현지 북한 업체 책임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러시아 내 북한 외화벌이 상황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은 28일 VOA에,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현지 북한 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 내 북한 외화벌이 회사들은 노동에 대한 대가를 루블화로 받은 뒤 이를 달러로 환전해 북한으로 보내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서방세계의 각종 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북한 당국에 보낼 상납금에 큰 구멍이 생겼다는 겁니다.
루블화 환율은 28일 한때 달러당 120루블까지 올라 달러 대비 가치가 전 거래일보다 30% 폭락하는 등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이날 러시아 당국의 파격적인 금리 인상 등 적극 개입으로 약간 하락했지만 루블화 가치는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거의 40% 가까이 폭락했다고 세계 유력 매체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내 한 소식통은 루블화가 붕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면서 달러 사재기도 극성이라면서, 북한 외화벌이 업체의 “단위 책임자들이 극심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가 27일 입수한 북한 당국의 문건 ‘2022 전투 계획’에 따르면 러시아 내 한 외화벌이 업체는 올해 노동자 1인당 6천 500달러를 상부에 납부해야 합니다.
달러당 70루블대를 기록한 지난해 10월 환율을 적용하면 노동자 1명이 46만 루블을 바치면 되지만, 최근 환율인 달러당 110루블을 적용할 경우 71만 루블을 벌어야 상납금을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과거보다 30~40%를 더 벌어야 상납금을 충당할 수 있고, 앞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현지 북한 책임자들은 환전 시기를 놓고도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북한 당국의 문건은 특히 “교육비는 루블화로, 국가 계획은 무조건 외화(달러)로 바쳐야 하며 모든 작업조는 자기 앞에 부과된 올해 국가 계획을 무조건 수행하도록 한다”고 못 박고 있어 책임자들이 상부에 해명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했습니다.
[소식통 A] “기본 루블은 필요 없으니까 우리 조국에 달러만 딱 들여보내야 하니까 지금쯤 골 아플 겁니다. 관계자들이. 그렇다고 국가에서 그걸 생각해서 (상납금을) 적게 해주지는 않을 거고. 무조건하라 하는 거니까.”
소식통들은 또 문건에 적힌 연간 3만 루블에 달하는 ‘교육비’는 유엔 안보리의 제재로 노동 비자를 받을 수 없는 북한 노동자들이 유학 비자로 위장 입국한 뒤 학교에 내는 비자 발급 대가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앞서 지난해 12월 인권 관련 대북 추가 제재를 부과하며 러시아에서 북한 노동자들에게 수백 건의 불법 학생비자를 발급한 러시아 대학 유러피안 인스티튜트 주스토와 이를 승인한 이 대학 드미트리 유리비치 수아 교무처장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가 지난 26일 추가 압박 차원에서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경제망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하면서 북한 외화벌이 업체들의 대북 송금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스위프트는 1만 1천 개가 넘는 전 세계 은행들이 안전하게 결제 주문을 하기 위해 쓰는 전산망으로, 스위프트 퇴출은 국제금융 시스템과의 단절로 송금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금융 핵폭탄’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북한 해외식당 지배인 출신으로 중국과 러시아 내 대북 송금에 관여했던 허강일 씨는 27일 VOA에, 러시아 내 북한 업체들은 최근 페이팔(Paypal) 같은 국제 온라인 지불 시스템의 가명 계좌를 통해 중국으로 송금한 뒤 북한으로 가져가는 방식을 활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에 대한 스위프트 퇴출로 달러가 묶이고 이런 송금 수단도 모두 중단돼 북한 당국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허강일 씨] “북한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강성은행 등 특수은행이 비밀리에 많이 (러시아에) 나와 있어요. 그러면 돈을 다 그쪽으로 다 송금해요. 그럼 강성은행 아이들이 중국에 있는 페이팔 계좌로 쏩니다. 러시아에서 이제 송금하려는 돈을 움직이지 못하니까 북한도 야단이죠. 가뜩이나 (루블화 폭락으로) 돈도 줄지만, 돈도 보내기가 힘들다 그 소리죠.”허 씨는 북한 당국이 북러 국경을 통해 인편으로 돈을 보내는 것은 세관 당국의 통제 등으로 한계가 있어 모스크바를 기점으로 한 이런 불법 금융망 송금을 애용해 왔다면서 “지금쯤 책임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미국 조지타운대학의 윌리엄 브라운 교수도 28일 VOA에, 북한이 러시아에서 루블화를 달러로 환전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 I'm sure it's a lot of trouble because I'm sure they deal in dollars and they're losing...it depends on how this thing settles out. It may change quite dramatically, again, probably will change many directions. But it does sort of show the vulnerability of the North Korean workers and their whole, you know, their whole activity.브라운 교수는 아직 우크라이나 사태가 초기이기 때문에 방향이 어떻게 극적으로 바뀔지 알 수 없다면서도 러시아 내 북한 외화벌이 기관들의 현 상황은 북한 노동자와 활동의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전례로 볼 때 북한 업체들이 러시아 내 은행이나 업체로부터 부족한 상납금과 특별 행사 때문에 빌린 달러도 꽤 있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러시아에는 과거 최대 4만여 명에 달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유엔 안보리가 북한 정권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제재로 2019년까지 해외 모든 노동자의 송환을 결의하면서 대폭 줄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앞서 북한 노동자 대부분이 귀환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에 따라 1천 명이 대기 중이라고 밝혔었습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위와 러시아 현지 소식통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북한 노동자가 다양한 위장 비자로 입국해 러시아에서 계속 외화벌이에 투입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소식통들은 유엔의 대북 제재와 코로나 여파 등으로 북한 지도부의 재정 상황이 계속 악화돼 해외 파견 업체들에 대한 상납 부담과 압박이 계속 커져 왔다며,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로 상부에 대한 업체 관계자들의 불만도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