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외부 정보 시청과 유포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면서 주민들이 그런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상당히 꺼리고 있다는 탈북민들의 증언이 나왔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안전하게 외부 정보를 접하도록 하고, 그들의 상업 활동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정보를 유입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됐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평양리과대학 수재 출신으로 지난 2019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장혁 씨는 18일 주한미국대사관과 미국의 비정부기구인 국제공화연구소(IRI) 한국사무소가 공동 주최한 ‘북한의 정보 자유’ 온라인 회의에서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력이 과거와 비교해 상당히 약화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외부 정보 접근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강화하면서 주민들의 두려움이 커졌다는 겁니다
[녹취: 장혁 씨] “정말 안전한 루트가 없으면 과거에 비해서 정보를 습득하려고 안 해요. 왜냐하면 어디 가서 차라리 은행을 털지 정보를 보다가 (노동교화형) 15년 형을 선고받으면 인생이 그냥 끝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들이 실질적으로 정보를 안전하게 볼 수 있는 솔루션(해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항공대에 재학 중인 탈북 청년 류성현 씨도 외부 정보에 대한 호기심으로 미래를 망칠 수 없다는 인식이 북한 청년들 사이에 증가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류성현 씨] “통제를 더 강화했고 얼마 전에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었죠. 그래서 정보를 접한다는 게 과거보다 몇 배로 더 힘들어졌죠. 굳이 영화나 드라마 하나 때문에 자기 앞길을 망칠 일이 있냐 그래서 (볼 기회가) 생겨도 그냥 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너무 후과가 무섭기 때문에.”
실제로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인간개조론까지 꺼내 들며 사상 통제를 지시한 가운데 반동사상문화배격법, 그리고 지난해에는 청년교양보장법을 잇달아 채택하며 외부 정보 접근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제3국에 체류 중인 북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최근 VOA에, 고난의 행군 이후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에 대한 접근이 북한에서 상당히 보편화됐지만,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부터 통제가 다시 강화돼 장성택이 처형된 2013년부터 평양은 정보 접근이 훨씬 어려워지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 정보를 유입하는 민간단체들도 이런 상황을 주시하며 외부 정보에 접근하는 주민들에게 피해가 덜 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 국민통일방송의 이광백 대표입니다.
[녹취: 이광백 대표] “굉장히 치밀하고 세심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걸 하는 북한 내 협력자들이 감시받지 않고 처벌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단속이 심화되면서 SD 카드를 바로 바꿨습니다. 굉장히 작고 만에 하나 발각되더라도 북한 주민이 이것을 쉽게 바로 파기할 수 있도록. 최대한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정보 내용도 김정은 정권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민감한 내용을 줄이는 대신 주민들이 부담 없이 보면서도 세상과 자신의 삶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고 시민의식을 강화할 수 있도록 비율을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따른 북한 당국의 국경 봉쇄 장기화로 “정보 유입이 굉장히 어렵고 대안도 잘 보이지 않는다”며 처벌과 감시 강화로 북한 내 조력자를 찾는 것도 과거보다 힘들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 당국의 이런 대대적인 사상과 정보 통제는 역설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두려움을 방증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한국 서울대학교 김병연 국가미래전략원장은 앞서 언론(중앙일보) 기고에서 북한 정권이 옛 소련과 중국이 수십 년 전 포기한 사회주의 인간개조론을 새삼 강조하는 것은 “제재와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벼랑으로 내몰리자 주민의 불만이 정권으로 향하지 않도록 차단하려는 시도”라고 풀이한 바 있습니다.
북한 지도부 스스로 수십 년에 걸친 허위정보와 세뇌의 통제망이 깨지는 현상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징조란 지적도 나옵니다.
류성현 씨는 영화나 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만 시청해도 북한 청년들은 새롭게 반문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녹취: 류성현 씨] “영화에 담겨 있는 내용이 북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반전(역설)적인 의미를 줍니다. 한국에서는 아, 자기 할 소리를 다 하고 살고 있구나. 북한 사람들은 자기 할 소리를 못 하고 영화나 음악 이런 것들이 그 체제의 단점에 대해 말할 수 없는데, 여기 한국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냥 거리낌 없이 사회의 부패성에 대해서 막 나오더라고요.”
장혁 씨는 북한 주민들의 정보 요구 수준도 진화하고 있다며, 생활과 장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갈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혁 씨] “드라마에 목메는 것은 10대 정도고 20대 이상부터는 다른 좀 더 질이 높은 정보를 원해요. 경제지수, 유가, 금값, 그 외 새 직업들이 생기고 있잖아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제빵사라든가 다양한 직업이 실질적으로 존재하고요. 그들이 시장이 형성되어서 생존경쟁이 진행되고 있다는 거죠. 그러자면 과학기술 등 (다양한) 정보가 필요한데, 이게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거든요. 과거에는 정보 자체가 돈이 안 됐어요. 지금의 정보는 바꿔 말하면 경제적 정보는 돈으로 환산이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문화 콘텐츠처럼) 쉽게 지우지 않아요”
대북 정보가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가지려면 이런 북한 주민들의 요구에 맞는 실질적인 정보 개발과 유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IRI의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이란 의미를 담은 BYFY 의회의 대학생 오경진 씨는 VOA에,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지 않고 검색을 통해 확인하는 한국 청년들의 상황과 북한의 상황이 너무 대조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오경진 씨] “저희는 어떤 뉴스가 있다면 그 뉴스를 그대로 믿는 친구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누가 기사가 나왔는데 내용이 이렇다고 하면 어 그거 진짜인지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니 반문하기도 하는데, 북한은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조선중앙TV에서 어떤 정보를 제공할 때 그 정보가 사실인지 알아보거나 친구와 토론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이 정보가 맞는지 알아보겠다는데 이것조차 나의 신변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회가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사회인지, 그런 당국을 믿어도 되는지,”
오 씨는 “한국인들이 당연히 누리는 시민의 권리와 의식을 북한에는 왜 몰래 밀반입해야 하는지, 세계인권선언, 국제 인권협약 등 인간의 기본적 권리가 북한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엄청난 희생과 지출이 필요한 상황에 관해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미국 정부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정권의 허위정보가 국제 질서와 자국민의 인권을 더욱더 위태롭게 하고 있다며 생각이 같은 동맹·파트너 국가들과 공동 대응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우즈라 제야 국무부 민간안보·민주주의·인권 담당 차관은 지난 15일 상원 외교위원회가 주최한 권위주의 대응 관련 청문회에서 북한을 직접 언급하며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들이 국제규범에 도전하고 자국민의 권리를 억압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있다”고 비판했었습니다.
미 정부 산하 독립기구인 ‘미국공공외교자문위원회(ACPD)’는 최근 발표한 ‘2021 포괄적 공공외교와 국제방송’보고서에서 ‘허위정보(disinformation)’를 168차례나 언급하며 북한과 관련해 “맞춤형 연구와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북한의 인권 침해와 학대를 조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