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김현숙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해외 봉사 기관인 평화봉사단이 최근 파견 행사를 열고 봉사단원들을 일부 지역으로 파견했습니다. 영어 명칭으로 ‘피스코(Peace Corps)’라고 부르는 평화봉사단은 지난 2020년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하자 봉사단의 활동을 중단하고, 봉사단원들을 본국으로 귀국시켰는데요.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잦아들면서 봉사단원들을 다시 파견하기 시작한 겁니다.
"첫 번째 이야기, 다시 세계로 떠나는 평화봉사단"
[현장음: 평화봉사단 파견식]
워싱턴 D.C.에서 열린 평화봉사단 파견식. 중미 국가인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프리카 잠비아 현지의 평화 봉사단 직원들이 영상으로 환영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 해외 자원봉사단원들과 함께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것을 기대한다는 메시지였는데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평화봉사단의 활동이 약 2년 만에 다시 시작되는 현장엔 기대와 흥분이 가득했습니다.
[녹취: 캐럴 스판]
캐럴 스판 평화봉사단 최고경영자(CEO)는 이제 봉사단원들이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 대응과 재건 노력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평화봉사단원은 주로 대학생이나 전문기술이 있는 젊은이들이 2년간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에 머물며 현지의 교육과 농업, 기술 개발과 지역사회 개발, 위생 상태 개선 등을 돕는데요. 평화봉사단은 현지의 언어를 구사하는 건 물론, 풍습과 생활 수준도 현지인과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미국과 현지 국가의 우호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역할도 하고 있죠.
하지만 팬데믹 이후, 평화봉사단의 임무도 변화가 생겼는데요. 팬데믹 이후 처음 봉사지로 떠나는 단원들은 현지인들에게 코로나 관련 교육을 하고 백신 접종을 독려하는 활동도 하게 된다고 합니다.
팬데믹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원들은 파견국에서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는 위험도 아직은 있는데요.
[녹취: 지젤 마르티네스]
지젤 마르티네스 씨는 코로나 추이가 최근엔 변화를 보이곤 있지만, 처음에는 봉사지로 가는 게 좀 망설여졌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봉사자들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게 하고, 코비드 검사도 받게 하는 등의 지침이 나오면서 우려가 해소됐다고 했습니다.
최근 대학을 졸업한 마르티네스 씨는 이번이 생애 첫 번째 평화봉사단 활동으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떠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녹취: 아이린 마크]
평화봉사단은 늘 자신이 원했던 활동이었다고 말하는 아이린 마크 씨는 이번에 두 번째로 봉사 활동을 떠나는 건데요. 마크 씨는 지난 2020년에 파라과이로 파견지가 결정됐지만, 코로나 사태 때문에 지금까지 연기됐다고 했습니다.
[녹취: 아이린 마크]
마크 씨는 개인적으로, 전문가로서 성장하길 원하고, 또 누군가를 돕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평화봉사단에 지원하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스판 CEO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한 우크라이나에서도 평화봉사단이 오랜 기간 활동을 진행해 왔다고 했는데요. 팬데믹으로 단원들이 철수하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봉사활동이 진행됐던 나라가 바로 우크라이나라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봉사했던 단원들은 미국으로 귀국했지만, 현지의 민박 가정들 그리고 함께 일했던 우크라이나인들과 연락하며 우크라이나 상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하네요.
[녹취: 조셉 허즐락]
조셉 허즐락 씨는 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우크라이나에서 캐나다로 이주하셨고,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됐다고 했는데요.
우크라이나 이민 가정 출신인 허즐락 씨에겐 현 우크라이나 사태가 평화봉사단원으로 봉사하는 데 가장 큰 동기가 된다고 했습니다.
[녹취: 조셉 허즐락]
허즐락 씨는 파견식에 앞서 2차 세계대전 기념관을 찾았다며,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데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랐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고 했습니다. 허즐락 씨는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도 끝끝내 평화가 찾아오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평화봉사단은 지난 1961년 3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창설했는데요. 케네디 대통령의 뉴 프런티어 정책, 즉 신 개척자 정책을 반영한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는 평화봉사단은 창설 이래 지금까지 총 142개국에 24만 명 이상의 자원 봉사단을 파견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던 한국에도 평화봉사단이 들어왔었는데요. 지난 1966년부터 1981년까지 2천여 명의 단원이 농촌 지역으로 들어가 보건 활동과 영어 교사 등으로 봉사활동을 했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한 피냐타"
미국에선 생일 축하 모임 등 각종 파티에서 ‘피냐타’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화려한 색의 종이나 천으로 만든 인형인 피냐타를 높은 곳에 걸어 놓은 뒤 사람들이 눈을 가린 채 긴 막대기로 두들기면 종이 인형이 깨지면서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사탕이나 과자 등이 쏟아져 내리게 되는데요. 원래는 멕시코에서 축제나 성인들을 기리는 축일에 쓰이던 전통 인형이었지만, 멕시코계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이제 미국에서도 일반적인 풍습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죠.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에는 피냐타를 제작∙판매하는 ‘어메이징 피냐타’ 라는 회사가 있는데요. 요즘 이곳에선 특별한 목적을 가진 피냐타를 만드느라 분주하다고 합니다. 바로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인들을 돕기 위한 피냐타가 제작되고 있는 건데요. ‘어메이징 피냐타’의 사장인 로레나 로브레토 씨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보고 난 뒤, 이런 특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녹취: 로레나 로브레토]
뉴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접하곤 마음이 무거웠다는 건데요. 포화를 피해 모국을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가족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 현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는 로브레토 씨는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습니다.
[녹취: 로레나 로브레토]
본인이 바로 니카라과에서 온 이민자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로브레토 씨는 1970년대 니카라과에서 끔찍한 내전을 겪으면서 친척들과 친구들을 잃었고, 경제적으로도 모든 것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어메이징 피냐타’의 직원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을 향한 연대를 피냐타에 담아내고 있었는데요. 하트 모양의 피냐타를 정교하게 만들고 종이 장미로 장식을 하되, 우크라이나 국기 색인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제작을 해서 누가 봐도 우크라이나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회사의 판매 담당자인 안헬라 산체스 씨는 특별 피냐타를 통한 기부 활동을 제안한 장본인인데요.
[녹취: 안헬라 산체스]
산체스 씨는 같은 이민자로서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너무나 이해가 되고 지금 어떤 심정일지 공감이 된다며 따라서 우리가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선 거라고 했습니다.
‘어메이징 피냐타’는 인터넷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금 활동을 알리고 있다는데요.
[녹취: 안헬라 산체스]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고, 온라인 주문도 들어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캘리포니아주 밖에서도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한다며 이런 모금 활동을 시작하고 또 많은 사람이 여기에 동참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로브레토 씨는 ‘우크라이나 문화 센터’를 통해 특별 피냐타 판매금 전액을 기부해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돕고 있습니다. 로브레토 씨는 지구촌 시민의 일원으로서 이들을 도울 사회적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했는데요.
[녹취: 로레나 로브레토]
기부 활동에 동참함으로써 도움을 줬다는 자부심과 함께, 다른 사람들의 참여도 끌어낼 수 있다는 겁니다. 로브레토 씨는 자신이 피냐타를 통해 우크라이나인들을 돕듯 모두가 함께할 때 반드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