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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10년, 지키지 않은 약속들] 1. "보여주기식 '쇼' 여전...주민 고통 심화, 국제사회 기대는 실망으로"


지난 10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공식 집권 10주년을 기념하는 중앙보고대회가 개최됐다고 조선 중앙통신이 보도한 장면.
지난 10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공식 집권 10주년을 기념하는 중앙보고대회가 개최됐다고 조선 중앙통신이 보도한 장면.

북한이 김정은 집권 10주년을 맞아 그의 치적과 우상화 작업을 대폭 강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내외적으로 북한 주민과 국제사회에 약속한 것들을 상당 부분 지키지 않는 등 무책임한 행보를 보인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VOA 방송에서는 오늘과 내일 두 차례에 걸쳐 김 위원장 10년의 약속과 이행 결과를 국내, 국외로 나눠 점검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북한 주민들에 대한 김 위원장의 약속이 어떻게 이행됐는지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요즘 날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10주년 기념 초상화 제작, 무도회와 중앙보고대회 개최 소식 등을 전하면서 그의 업적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우상화 작업에 더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매체들이 그의 업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대체로 핵무력 강화와 최근 완공된 송화지구의 80층짜리 아파트 등 주택 단지 건설입니다.

북한 매체들은 그러나 다른 많은 국정 분야의 성적표, 특히 김 위원장이 과거 주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과 이후 어떤 성과를 냈는지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4월 집권 후 첫 공개 연설에서 주민들에게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게 대표적입니다.

[녹취: 김정은 위원장]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은 12일 VOA에, 당시 국제사회는 스위스에서 유학한 젊은 지도자의 이런 연설에 기대감을 나타냈지만, 결과는 불행히도 주민들이 허리띠를 계속 조이는 형국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제롬 소바쥬 전 소장] “Unfortunately, as we know, even before the pandemic that promise was not kept. The people kept ever tightening their belt and tightening their belt. That is more my worry. In terms of promises not kept.”

국제사회는 새 지도자의 ‘허리띠’ 발언을 통해 북한이 정치 논리보다 경제 논리를 앞세울 것으로 기대했지만, 심지어 코로나 대유행 전부터 주민들이 허리띠를 계속 조여야 할 정도로 걱정스러운 상황이 지속됐다는 겁니다.

김 위원장의 당시 공개연설을 김일성 광장 상단에서 직접 지켜봤다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간부 출신인 리정호 씨는 국제사회뿐 아니라 많은 간부와 자신도 내심 기대를 했다며,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 북한은 사실상 폐허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리정호 씨] “10년이 됐는데, 북한 주민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2013년 3월 전원회의를 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우리가 학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김정은이 뭐라고 강조했냐면 핵무기 외에 우리의 평화도 있고 인민의 행복한 삶도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핵미사일에 집착하면서 2017년부터 유엔의 강력한 대북 제재를 받아서 5년 이상 나라가 폐허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결국 김정은의 리더십 문제입니다.”

이 씨는 “정상국가에서 주택구 건설은 건설 일군, 관광지구는 문화·체육 일군, 핵·미사일은 군수공업 일군이 내세울 일이지 국가 지도자가 아파트 단지 조성을 일일이 홍보하지는 않는다”며 “지난 10년은 무능한 리더십이 만든 실패한 10년”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과거 야심 차게 추진한 원산갈마 해안 관광지구 건설, 당 창건 75주년에 맞춰 개원하려던 대규모 평양종합병원도 완공 목표일을 여러 번 연기했지만, 아직 완공 소식이 없습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이 대표적 치적으로 선전했던 마식령스키장과 양덕 온천관광지구, 삼지연군 관광단지는 사실상 몇 년째 개점 휴업 상태로, 수많은 노동력을 투입한 것에 비해 수익은 ‘전무’하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또 지난 2016년, 36년 만에 7차 당대회를 열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통해 자력부강, 자력번영으로 전력과 석탄, 금속, 철도운수 등 4대 선행부문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2020년 당 창건 75주년까지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정은 20~30년 전보다 더 퇴보했다는 지적입니다.

옛 동유럽의 대표적인 공산국가였던 루마니아 차우셰스크 정권하에서 성장한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은 북한 지도부가 옛 공산 국가들의 무의미한 구태를 21세기에도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그레그 스칼라튜 총장] “These projects are utterly meaningless. I understand this very well. This is Nicolae Ceaușescu of Romania used to operate in the 1980s. People have a lot of trouble, everyone was in the midst of a humanitarian crisis and the regime was wasting money on building these structures that were absolutely meaningless and unnecessary for the country at that time.

1980년대 루마니아 국민은 많은 어려움과 인도적 위기에 처했지만, 챠우셰스크 정권은 자금을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구조물 건설에 허비했다는 비판입니다.

스칼라튜 총장은 “21세기 정상적인 국가 지도자라면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사회에 편입하며 국가를 발전시켜야 하지만,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노동당은 오롯이 체제 생존을 위해 이런 무의미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며, 그들 자신도 체제 안에 갇혀 더 나은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평양종합병원과 원산갈마 해안 관광지구 완공 등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강력한 국제 제재와 코로나 팬데믹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워싱턴의 민간연구기관인 스팀슨 센터의 마틴 윌리엄스 연구원은 12일 VOA에 정치 지도자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모두 지킬 수는 없다면서도 김 위원장의 내부 상황 파악 능력에 의구심을 나타냈습니다.

[녹취: 마틴 윌리엄스 연구원] “We don't know exactly how much Kim Jong Un understands about the situation in North Korea. It could be that he knows very well what's going on. It could be that people when they brief him, don't give him the full picture because they don't want him to get angry. They don't want him to get upset.”

윌리엄스 연구원은 “김정은이 북한 내부 상황에 관해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는지 모르겠다”며 “그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 수도 있고, 간부들이 그에게 보고할 때 그가 화를 내는 것을 원하지 않아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지도자가 3대에 걸쳐 이런 실패한 정책을 고집하는 것은 정상 국가 지도자처럼 재선을 염려하거나 견제와 균형 제도, 주민들의 시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리정호 씨도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0년간 더 강력한 공포정치와 숙청으로 주위에 올바른 조언을 할 적임자가 없는 환경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리정호 씨] “지도자의 말씀과 방침은 곧 법이다, 지상명령이다, 그래서 여기에 자그마한 토도 달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가 약속했다가 못 해도 지도자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데 있고 자기만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보는 눈에 한계가 있단 말입니다. 그렇다고 누가 조언해서 지도자 동지, 이렇게 합시다 하고 해도 그 말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 잘못 조언했다가는 누군가 목이 달아나니까 조언도 못 합니다. 그래서 과대 망상증이란…”

이런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국제사회는 북한 정부에 개혁을 거듭 촉구하고 있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최근 다시 채택한 북한인권결의는 북한 정부에 시민적·정치적 권리 이행을 강조하며 “독립적인 신문과 기타 언론 설립을 허용하는 등 온, 오프라인에서의 의견과 표현, 결사의 자유 보장”을 촉구했습니다.

유럽의회도 지난주 채택한 북한 인권 규탄 결의에서 “북한 정부는 정치적 반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자유 언론, 결사의 자유, 단체 협상 또는 이동의 자유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면서 북한 정부가 비준한 국제 인권 협약들을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유럽의회 결의] “whereas the DPRK government does not allow any political opposition, free and fair elections, free media, freedom of association, collective bargaining, or freedom of movement; calls on the Government of the DPRK to fulfill its obligations,”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처럼 세상이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소수 국가로 나뉘고 있고, 국제 투자자들은 후자에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며, 김정은 위원장은 불가능한 자력갱생이 아닌 종합적인 개혁을 통해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스칼라튜 총장] “(약속 이행을 위해서는) 종합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인권 이 모든 분야에 다 필요합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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