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유회사 ‘SK 에너지’의 유류가 북한으로 유입돼 최근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습니다. 또 지난 2~3년 사이 한국 선박 최소 6척이 북한으로 불법 매각된 사례까지 확인되면서 한국의 잇따른 제재 위반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국제 제재 체제가 강조하고 있는 ‘주의 의무’가 적절히 이행됐는지 또 한국 정부 차원의 예방 조치가 얼마나 이뤄졌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함지하 기자와 더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문제가 된 SK 에너지의 정유제품 1만t은 사실 중간 회사를 거쳐 북한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SK 에너지가 아닌 중간 회사의 잘못이라는 주장이 나오는데 타당한 해명입니까?
기자) 해당 거래가 국제사회 제재와 전혀 상관없는 문제라면 그렇게 주장할 수 있을 겁니다. 총포상에서 판매된 총기가 강도 행위에 이용됐다고 해서 총포상이나 총기 제조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인데요. 하지만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 제재 체제는 그렇게 간단한 논리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총을 누가 사가는지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것이죠. 특정 물품에 대한 제재 그러니까 금수조치는 제재 대상이 해당 물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제재 대상에겐 해당 물품에 접근하기 위한 다양한 회피 수단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국제사회 제재 체제는 점점 복잡해지고 지능적으로 진화하는 회피 행위 자체를 막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제재 품목을 다루는 기업들에 대해서도 ‘주의 의무’를 기울여 여기에 협조할 것을 의무화한 상태입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금수품목이 제재 대상국에 들어간다면 대량살상무기 개발이나 인권 유린과 같은 국제사회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각별히 주의하라는 겁니다.
진행자) 지금 말씀하신 ‘주의 의무’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하냐는 의문도 제기되는데요?
기자) 그래서 미국 재무부 등은 정기적으로 주의보를 발행하고 또 제재 위반 가능성이 있는 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주의 의무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불법 선박 간 환적을 통한 북한의 유류와 석탄 거래 문제가 불거진 이후 미국 재무부와 국무부는 선박 업계는 물론이고 해상 보험회사, 각 항구의 서비스 제공업체, 정유회사, 중간 거래상 등을 구체적으로 특정해 각자 주의할 수 있는 부분들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리곤 제재 위반 논란이 발생했을 때 이를 근거로 해당 회사에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정부는 대북제재 논란에 휩싸인 회사들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는데요. 벌금을 내게 된 회사 중에는 실제로 북한과 거래 사실을 전혀 몰랐던 곳도 포함돼 있습니다. 2019년 약 1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은 미국의 ‘엘프 코스메틱스’는 중국 소재 2개의 납품 업자로부터 인조 속눈썹을 수입했는데, 이후 해당 제품 중 일부가 북한에서 만들어진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재무부는 엘프 코스메틱스 사가 ‘대북제재 규정의 실효성에 위험이 큰 지역으로부터 제품을 조달하면서도 공급망에 대한 충분한 실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이번 SK 에너지는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건가요?
기자) 사실 SK 에너지 측은 최초 VOA가 이 문제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n차 거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무고함을 주장했는데요. 정상적인 업체에 유류를 판매했지만 그 유류가 여러 단계, 즉 n차에 걸쳐 판매에 판매를 거듭하다가 최종 구매자에 의해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논리였습니다. 또 최초 ‘벌크’ 즉 대량으로 판매된 유류 중 일부가 북한으로 흘러간 것이기 때문에 관리가 쉽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SK 에너지가 최초 매매 계약을 체결한 회사가 직접 선박을 이용해 북한에 유류를 건넸다는 점에서 당시 거래는 n차가 아닌 1차 거래였고요. 또 최초 계약된 유류 1만t 전량이 4척의 북한 선박에 옮겨 실린 것으로 나타나 거래량 일부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VOA가 이런 문제를 지적하자 SK 에너지 측은 최초 내놨던 해명을 정정했습니다.
진행자) 결국 최초 매매 계약을 체결한 주체가 대북제재 위반을 일으킨 만큼 ‘주의 의무’에 좀 더 신중했다면 문제를 막을 수 있었다는 의미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SK 에너지로부터 유류를 구매해 북한으로 넘긴 회사는 ‘에버웨이 글로벌’이라는 곳입니다. 타이완에 주소지를 둔 회사인데, 에버웨이 글로벌은 ‘청춘해운’이라는 회사의 페이퍼 컴퍼니 즉 사무실이나 직원은 그대로인데 간판만 다르게 한 회사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청춘해운은 또 SK 에너지의 유류를 선적한 유조선 ‘선와드’호의 운영회사입니다. 여러모로 수상한 면이 발견되죠. 여기에 더해 청춘해운은 에버웨이 글로벌 외에도 모두 8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운영 중인데요. 이런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 의구심을 가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재무부는 2019년 주의보에서 정유회사들이 대북 유류 공급을 피하기 위해 ‘공급망에 속한 회사들의 실사를 의무화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진행자) 유류의 목적지를 ‘공해상’으로 표기한 점도 문제가 된 부분이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SK 에너지와 에버웨이 글로벌은 유류 매매 계약을 체결할 당시 문제의 유류를 하역할 항구를 ‘공해상’이라고 지정했습니다. 물론 해운업계 전문가들은 원양어선 등에 유류를 공급하는 유조선들이 있기 때문에 ‘공해상’이라는 목적지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다만 재무부와 유엔 안보리는 이번 거래가 이뤄진 타이완 북부 해상을 북한의 불법 활동의 ‘요충지’로 꼽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호주, 캐나다, 일본 등이 군함과 초계기를 파견해 집중적으로 감시를 하는 곳이기도 하죠. 이런 지역에서 유류 1만t을 거래할 땐 신중했어야 합니다. 미 재무부는 2020년 발행한 주의보에선 “선박과 화물, 출발지, 도착지 그리고 거래 상대편 당사자를 포함해 관련 항해에 대한 상세 정보를 검토할 것”을 권고했는데, 이런 항해 정보를 얼마나 상세히 들여다봤는지 의문입니다.
진행자) 한국 선박이 북한 선박이 돼 나타났다는 논란도 이번 SK 에너지의 유류 공급 문제와 함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사실 중고 선박 거래를 한 건데, 중소 선박 업자들이 북한과의 거래를 미리 인지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요?
기자) 물론 그런 주장이 타당할 수 있습니다. 선박 1~2척을 운영하는 중소 해운회사가 중고 선박을 중국 업자 등에게 매각했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이 중국 업자는 북한을 대리하거나 북한의 위장회사일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 해운회사 입장에서 이를 미리 알 수 없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돼 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유독 한국 선박 업계에서 이런 문제가 불거진 점은 체계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VOA는 최근 한국에서 북한으로 선적이 옮겨진 선박 6척을 찾아냈는데요. 모두 2019년에서 2020년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최초 1~2척이 북한 깃발을 달았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정부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예방 조치를 취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진행자) 실제로 현재 대북제재 위반의 핵심 선박이 된 ‘뉴콘크’호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됐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뉴콘크호는 최근 전문가패널 보고서에 62차례 등장할 정도로 현재 대북제재 위반 핵심 선박입니다. 그런데 VOA 취재 결과 3년 전까지 한국 깃발을 달았던 이 선박이 마지막으로 한국에 입항하면서 다음 목적지를 ‘북한’으로 기재해 한국 해양수산부에 보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지금의 뉴콘크호가 된 겁니다. 한국 해양수산부는 VOA가 이 문제를 지적한 다음 날 뉴콘크호의 출항 기록을 ‘중국’으로 수정하면서 단순한 실수였다는 해명을 했는데요. 하지만 뉴콘크호가 최초 입항 당시 ‘북한’을 차항지로 기재한 게 사실로 드러났고, 결과적으로 뉴콘크호가 북한의 통제 아래 있는 제재 위반 선박이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됐습니다.
진행자) 하지만 문제의 거래들은 모두 기업과 기업 사이에서 이뤄진 것인데, 한국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기자) 전문가들은 한국 정보기관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번 SK 에너지나 한국 해운회사의 선박 거래도 한국 정보기관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지적입니다. 과거 VOA는 2018년 북한산 석탄의 한국 반입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 이와는 별도로 한국 국정원의 선박 감시 체계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한국은 독자제재의 일환으로 북한에 기항한 선박이 6개월 동안 한국에 입항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남포에 기항한 선박이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한국에 입항한 것이었죠. 지금은 고인이 된 김정봉 전 한국 국정원 대북정책실장은 당시 VOA에 북한을 기항한 모든 선박에 대해 추적을 하는 게 국정원의 역할이지만 그러한 감시체계 혹은 보고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대북제재 위험성이 높은 유류와 선박 거래에 대해 얼마만큼의 정보력이 동원됐는지에 의구심이 제기됩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함지하 기자와 함께 최근 한국 회사의 유류와 선박이 북한에 넘어간 경위와 여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얘기 나눠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