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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신종 코로나 통제 불능 상태...한국 측 백신 지원 접촉 제안에 무응답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스크를 쓴 채 평양 시내 약국을 시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15일 공개한 사진.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스크를 쓴 채 평양 시내 약국을 시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15일 공개한 사진.

북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으로 의심되는 발열자 규모가 단기간 내 누적 120만명을 넘어서면서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북한이 호응하면 신종 코로나 백신 등 방역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추정되는 발열자가 연일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6일 “노동당 정치국이 15일 또다시 비상협의회를 소집하고 방역대책 토의사업을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국가비상방역사령부에 따르면 북한에서 지난 14일 오후 6시부터 15일 오후 6시까지 전국적으로 39만2천920여명의 발열자가 새로 발생하고 8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로써 지난달 말부터 전날 오후 6시까지 북한 전역에서 발생한 발열자 총수는 121만3천550여명이며 누적 사망자는 총 50명입니다.

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종 코로나 관련 의약품이 제때 유통되지 않고 있다면서 인민군을 투입해 안정시키라고 특별명령을 하달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당 정치국이 전염병 전파 상황을 신속히 억제 관리하기 위해 국가예비의약품들을 긴급해제해 시급히 보급할 데 대한 비상지시까지 하달하고, 모든 약국들이 24시간 운영체계로 넘어갈 데 대해 지시했지만 집행이 바로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의약품 사재기와 불법 유통 등 부정적 현상들을 법적으로 감시·통제하지 못했다며 중앙검찰소장 등 사법과 검찰 부문 간부들을 강력히 질타했습니다.

이는 신종 코로나가 급증하면서 전국적으로 의약품 사재기와 불법 유통 등이 극심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김 위원장은 앞서 14일 주재한 정치국 협의회에선 “악성 전염병의 전파가 건국 이래의 대동란이라고 할 수 있다”며 자신의 가정상비약을 기부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탈북민 출신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북한에 신종 코로나 관련 약이라는 게 일반 해열제 같은 것으로 주민들이 장마당에서 구입해 왔지만 전국적인 봉쇄령과 함께 장마당이 모두 폐쇄되면서 국가가 이를 확보하는 데 전면에 나서는 양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약품 생산자들도 그렇고 약장사들이 갖고 있는 약을 공짜로 내놓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을 강제하는데 검찰소장한테 얘기하는 게 그거거든요. 약품 장사들이나 이런 데서 돈 내고 사서 가지고 있던 약들을 다 지금 내놓으라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그게 이제 말이 안되니까 군대 전쟁예비물자로 갖고 있던 것을 풀고 있다는 소리거든요.”

한국 정부는 북한이 이미 신종 코로나 통제 불능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고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남북관계의 정치, 군사적 고려 없이 언제든 열어놓겠다는 뜻을 누차 밝혀왔다”며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 위협에 노출된 북한 주민에게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윤석열 대통령] “북한 당국이 호응한다면 코로나 백신을 포함한 의약품, 의료기구, 보건인력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러면서 북한에 관련 실무접촉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통일부는 이날 오전 11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한에 신종 코로나 방역협력과 관련한 실무접촉 제안을 담은 대북 통지문을 발송하려 했지만 북한 측이 접수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통지문은 권영세 통일부 장관 명의로 돼 있고 수신인은 북한 측 김영철 통일전선부 부장입니다.

이 통지문은 “북한 측의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발생과 관련해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과 마스크, 진단도구 등을 제공하고, 한국 측의 방역 경험 등 기술협력도 진행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는 한편 이를 위한 남북간 실무접촉을 가질 것을 제의하는 내용”이라고 통일부는 설명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북한이 과거 신종 플루 사태 당시 한국으로부터 타미플루를 지원받은 적이 있다며, 비록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과의 관계 교착이 지속되면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지만 보건 위기와 관련해선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대한민국이나 미국이 아무런 입장 변화가 없는데 자신들이 먼저 손을 내미는 데 주저하다 보면 정치 군사적 고려에 의해서 그런 인도적 지원을 거부하고 시간을 지체할 경우 북한 내 있어서 더욱 더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14일 당 정치국 협의회에서 “현 상황이 지역간 통제 불능한 전파가 아니라 봉쇄지역과 해당 단위 내에서의 전파 상황”이라며 “중국 당과 인민이 거둔 선진적이며 풍부한 방역 성과와 경험을 적극 따라 배우라”고 강조했습니다.

외부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중국식 봉쇄정책에 의존해 자력으로 신종 코로나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북한은 또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국가적 비상사태에 빠지면서 중국에 대해선 방역물자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방역당국과 의료 전문가들은 북한의 현 상황을 신종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가운데 전파력이 강력한 오미크론의 폭증세로 보면서 북한이 통제할 수 있는 한계를 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16일 언론브리핑에서 “북한은 아마 진단검사 없이 증상만 갖고 확진자를 판정해 내는 것으로 보인다”며 “오미크론은 확진자 절반 정도가 무증상이고, 발열은 10% 정도이기 때문에 실제 더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증상 중심으로 확진자를 관리한다는 것은 무증상자 또는 유증상자 중 초기 무증상자로 인한 주변 감염 전파를 차단하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감염 통제가 쉽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추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오미크론의 통상적인 치명률을 기준으로 발열자 40만명 가운데 8명 사망은 납득할 수 없는 수치라며 북한 내 백신 접종이 전무한 점, 열악한 의료수준을 고려하면 사망자 집계시스템에 문제가 있거나 당국이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엄 교수는 이미 감염자가 폭증한 북한의 현 상황에서 당장 필요한 것은 치료제이지만 중장기적인 대처를 위해선 백신 접종도 최대한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엄중식 교수] “팍스로비드나 라게브리오 같은 경증 단계에서 투여할 수 있는 치료제, 그래서 고위험군의 위중증 환자 발생을 줄일 수 있는 치료제가 1차적으로 필요하고요. 북한의 대도시 중심으로 백신 접종을 빨리 진행하는 게 중장기적으로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종 코로나 확산이 사망자 폭증과 경제 파탄으로 이어지면 김 위원장이 집권 후 최대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이 1994년 고난의 행군기를 그동안 최대 위기로 공식 인정해 왔거든요.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건국 이래 대동난이라고 이게 더 심하다고 인정을 한 거거든요. 지금 이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의 정권 안보 위기에요. 그러니까 경우에 따라선 이 고비를 넘을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물량만 확보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줄 수 있는 건 한국 밖에 없거든요.”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중국에만 의존해 현재의 방역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면 위기 극복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중국 단독으로 북한 주민 전체에 충분한 백신을 제공하기도 어렵고 중국 백신의 효과는 중국 내에서도 불신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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