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름반도(크림반도)에서 발생한 군부대 탄약고 폭발 사건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와 협력한 비밀조직을 적발해 해체했다고 17일 러시아 당국이 밝혔습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크름 지부는 이날 "잔코이와 얄타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한 결과 6명의 러시아 시민으로 구성된 테러 단체의 비밀 세포 조직을 무력화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조직은 급진적 이슬람 정치 단체인 '히즈브우트 타흐리르(이슬람해방당)' 소속이라고 FSB 측은 설명했습니다.
FSB는 이어서, 이들이 우크라이나 테러 조직 요원들과 함께 현지 무슬림을 모집했으며, 테러 이데올로기를 퍼뜨렸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현재 러시아에서 활동이 금지됐지만 크름반도에서 우크라이나의 지원을 받았다고 FSB 측은 덧붙였습니다.
■ "테러 행위증거 확보"
FSB는 이들의 은신처에서 선전 자료와 함께 테러 활동에 쓰인 통신 장비 등을 증거로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디지털 저장 기기도 수거했으며, 해당 물품들을 토대로 추가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FSB는 이날 해당 조직의 은신처를 급습하는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주요 매체들은 해당 영상이 연출됐으며, FSB의 사건 발표 내용도 허위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측이 이같은 허위 사실들을 확전 구실로 내세울 수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름 행정부 수반은 이날 "사보타주(파괴행위)를 저지른 공작원을 찾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크름반도는 우크라이나 영토이지만, 지난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곳입니다. 악쇼노프 수반도 러시아 측 인사입니다.
■ 크름반도 북동부서 폭발 잇따라
크름반도 북동부 잔코이 구역의 마이스케에 있는 군부대 임시 탄약고에서는 전날(16일) 화재에 따른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주변 변전소에서도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최소 민간인 2명이 부상 당했고, 3천여명이 대피했습니다.
러시아 매체들은 폭발 사고에 이은 변전소 화재로 철도망이 영향을 받아 여객열차 7개가 지연됐고, 크름반도 북부 지역의 철도 교통이 일부 중단됐다고 전했습니다.
크름반도 중부지역의 공군 기지에서도 연기가 치솟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보도됐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오전 6시15분께 크림반도(크름반도) 북부 잔코이 구역의 마이스케 마을에 있는 군부대 임시 탄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보관 중이던 탄약이 폭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추가 발표에서 "사보타주로 인해 군용 창고가 손상을 받았다"고 밝히고 "다수의 민간시설, 전력선, 발전소, 철로, 주거 건물이 부서졌다"고 설명했습니다.
■ 공격당한 사실 이례적으로 인정
'사보타주'는 '방해 공작'·'파괴 행위' 등을 의미합니다.
어떤 형태의 '사보타주'인지는 러시아 국방부가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례적으로 자국 지배 지역의 군사시설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충성하는 무장 세력에 의해 공격 받았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라고 주요 매체들은 해설하고 있습니다.
지난 9일 크름반도 서부 노보페도리우카 내 사키 공군기지 일대에서 폭발이 발생했을 때 '단순 사고'라고 밝혔던 주장과 다른 상황입니다.
일주일 만에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러시아 측의 평가가 달라진 것입니다.
■ 우크라이나 '모호성' 유지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16일 크름반도 폭발 사건 직후 "(크름반도의) 비무장화가 진행 중"이라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습니다.
'비무장화'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유를 말할 때 주로 쓰던 표현입니다.
포돌랴크 보좌관은 아울러 "정상 국가일 때 크름반도는 흑해와 산과 휴양이 있는 지역이었지만, 러시아가 점령한 크름반도는 창고 폭발과 함께 침략자와 도둑의 사망 위험이 높은 곳이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군은 공식적으로는 이번 폭발과 무관하다는 입장입니다. 크름반도를 타격한 공격 주체에 관해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9일 폭발 당시에도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 항공기 9대가 파손됐다"고 발표한 뒤, 곧이어 위성 사진에서도 이같은 사실이 확인됐으나 누가 공격한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포돌랴크 보좌관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앞으로 2~3개월 동안 크름반도의 러시아군 사키 공군기지에서 발생한 것과 비슷한 공격이 더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지난 6월에는 크름반도 주변 흑해 석유 시추시설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고, 지난달 말에는 크름반도 세바스토폴항에 있는 러시아 흑해함대 본부가 드론(무인 비행기) 공격으로 파괴됐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크라이나 군은 공격 사실을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군사 전술에 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말라는 주문을 주요 당국자와 군 관계자들에게 내린 바 있습니다.
■ '크름반도 탈환' 목표 제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6월, 크름반도 수복 의지를 공표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시 영상 연설에서 "얄타, 수다크, 잔코이 등 크름반도 도시들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휘날리게 만들 것"이라고 선언하고 "우리가 반드시 크름반도를 해방시키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측이 크름반도 탈환을 명시적인 전쟁 목표로 밝힌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9일, 크름반도 사키 공군기지 일대에서 폭발이 일어난 직후에도 이같은 목표를 재확인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시 영상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와 자유 유럽을 상대한 러시아의 전쟁은 크름반도와 함께 시작됐다"고 강조한 뒤, "전쟁은 크름반도의 해방과 함께 끝나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러시아의 크름반도 점령은 유럽 전체와 세계 안정에 위협"이라고 비판하면서 "크름반도는 우크라이나의 것이며,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러시아가 중요하게 여기는 곳
러시아는 크름반도에 역사·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사흘 전인 지난 2월 21일 대국민 연설에서, 제정 러시아 시절의 영광을 되찾는 희망을 크름반도에 투영한 바 있습니다.
크름반도에는 1년 내내 얼지 않는 부동항인 세바스토폴 항구가 있어 전략적 가치가 높습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강제 병합했던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입니다. 러시아 군은 세바스토폴 항구를 흑해함대의 본부로 활용 중입니다.
지난달 말에는 흑해함대 본부에 드론 공격이 감행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드론 공격에 이어 일주일 사이에 두 차례 폭발이 일어난 크름반도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신성하게 여기는 '성지(sacred place)'이자 '거룩한 땅(holy land)'과 같은 곳이라고 이날(16일) 뉴욕타임스는 평가했습니다.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크름반도에서 잇따른 사건 발생을 계기로 향후 전쟁 양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우크라이나가 크름반도를 공격하면 '심판의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