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북한 남포에서 발견된 제 3국 선박이 북한 깃발을 달고 등장했습니다. 마지막 출항지가 한국 부산이어서 주목됐던 선박인데, 중국계 회사가 관리하던 선박을 어떻게 북한이 소유하게 됐는지 관심이 쏠립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28일 북한 남포에서 ‘경성 3’호라는 이름의 화물선이 포착됐습니다.
선박의 실시간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MarineTraffic)’에서 확인된 이 화물선은 기존 북한 선박 목록에 없던 신규 선박입니다.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경성 3호는 지난달 20일과 27일 등 총 세 차례에 걸쳐 북한 남포와 송림 항 인근에서 신호를 발신했습니다.
그런데 VOA가 국제해사기구(IMO) 번호 등 기본 정보와 대조한 결과 경성 3호는 지난 8월 북한 남포에 제3국 깃발을 달고 도착했던 ‘안니’호와 동일 선박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VOA는 태평양 섬나라 니우에 선적의 안니호가 북한 남포항에 입항했던 사실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2020년 중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을 이유로 다른 나라 깃발을 단 선박의 입항을 엄격히 통제해 온 터라 제3국 선박이 남포에 입항한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니우에 선적의 안니호가 북한 선적의 경성 3호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중량톤수(DWT) 2천997t의 경성 3호는 2009년에 건조된 비교적 신식 선박으로, 이후 중국 선적의 롱강1호로 운항되다가 올해 4월 니우에 깃발을 달면서 이름을 안니호로 변경했습니다.
유엔의 선박 등록자료와 아태지역 항만국 통제위원회(도쿄 MOU) 등은 이 선박이 안니호로 이름을 바꾼 시점부터 마셜제도에 등록된 ‘우저우 쉬핑(Wuzhou Shipping)’이 새로운 소유주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우저우’가 중국의 도시명인 것으로 볼 때 중국계 회사의 소유일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됩니다.
상황을 종합하면 중국 선박이던 롱강1호는 올해 4월 ‘우저우 쉬핑’ 소유의 안니호가 됐다가 지난 5개월 사이 북한 선적의 경성 3호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북한이 우저우 쉬핑으로부터 안니호를 구매했을 수 있지만 애초에 이 회사가 북한의 위장 회사였거나 중간에서 브로커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안니호의 마지막 출항지가 한국 부산이라는 점도 주목됩니다.
한국 해양수산부의 선박 입출항 자료 등에 따르면 안니호는 6월 25일 오후 2시께 부산항에 입항한 뒤 약 3시간 30분 만인 이날 오후 7시 30분에 출항했습니다.
당시 안니호는 다음 목적지, 즉 차항지를 ‘OC’ 즉 공해상을 의미하는 ‘해상 구역(Ocean District)’으로 신고했습니다.
이후 다른 곳에 들른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지난 8월 북한 남포에서 발견됐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6년 채택한 대북 결의 2321호를 통해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에 선박을 판매하거나 북한 선박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북한이 위장회사를 동원해 중고 선박을 구매하는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VOA는 2021년 7월까지 타이완 소유였던 화물선 ‘더블 해피니스 1’호가 올해 3월 북한 선적의 ‘SF블룸’호로 다시 태어났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부양 2’호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선박은 2021년 7월을 전후해 홍콩 소재 ‘시노 에버 트레저’사에 매각됐으며, 선명과 선적을 몇 차례 변경한 끝에 북한 소유가 됐습니다.
또 한때 한국 소유였던 1만t급 이하 중고 선박 여러 척이 2019년과 2020년 집중적으로 북한으로 넘어가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2019년 12월 한국 인천항을 떠난 지 불과 9일 만에 북한 송림항에서 발견돼 논란이 일었던 한국의 ‘리홍’호는 북한 자성무역회사의 ‘도명’호로 탈바꿈했습니다.
같은 해 북한으로 벤츠 차량 등을 옮기며 제재 위반에 연루됐던 ‘지유안’호는 불법행위 포착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 깃발을 달았던 ‘서니 시더’호였고, 2020년 10월부터 북한 선적을 갖게 된 ‘수령산’호도 같은 해 7월 16일까지 한국의 한 해운회사가 선주였습니다.
그 밖에도 VOA는 지난 3월 발행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의 연례보고서를 인용해 현재 북한 소유가 된 유조선 ‘오션 스카이’호와 ‘신평 5’호가 매각 직전까지 한국 깃발을 단 한국 선박이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아울러 지난 몇 년간 수십 차례의 대북제재 위반 행위가 포착된 선적 미상의 ‘뉴콘크’호도 한 때 한국 선박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는데, 매각을 위해 한국을 떠나면서 차항지를 ‘북한’으로 보고했지만 어떤 제지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파장이 일었습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의 에릭 펜튼 보크 조정관은 29일 타이완 화물선의 소유권이 북한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최근 VOA 보도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우리는 제재 회피와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조사 내용은 논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이건 흥미로운 선박이며, 이 선박에 책임이 있는 (과거) 소유와 관리 구조는 전문가패널의 큰 관심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전문가패널은 소유권 전환 과정은 물론 구매 혹은 (소유권) 변경에 관여한 주체의 네트워크를 감시하는 데 있어 한국 당국과 긴밀히 협력한다”며 “전문가패널의 최신 보고서 또한 북한과 연계된 브로커들에게 무심코 선박을 팔지 않도록 선박 판매자들을 도울 여러 권고 사안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