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한 분단 이후 처음으로 동해상 북방한계선 NLL 이남 한국 영해 근처로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한국 군도 이에 대응해 공군기를 출동시켜 NLL 이북 공해상에 미사일 사격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2일 오전 8시 51분께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SRBM 3발을 발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1발은 동해 북방한계선, NLL 이남 공해상에 떨어졌습니다.
이 미사일은 NLL 이남 26㎞, 한국의 속초 동방 57㎞, 울릉도 서북방 167㎞에 낙하했습니다.
공해상이기는 하지만 영해가 기준선에서 12해리 즉 약 22㎞까지임을 고려하면 영해에 아주 근접한 지역에 떨어진 겁니다.
북한은 그동안 해안포와 방사포를 NLL 이남으로 쏜 적은 있지만 탄도미사일을 쏜 것은 전례 없는 일입니다.
NLL 이남으로 발사된 미사일은 방향이 울릉도 쪽이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중앙민방위경보통제센터가 울릉군에 오전 8시55분께 공습경보를 발령했다가 오후 2시 경계경보로 대체했습니다.
공습경보는 2016년 2월 7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서해 최북단 백령도와 대청도에 발령된 지 6년여 만입니다.
북한은 또 이들 3발의 미사일 발사 전후로 세 차례 더 미사일들을 쏘면서 최소 25발을 발사했습니다.
오전 6시 51분쯤엔 평안북도 정주시와 피현군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SRBM 4발을, 9시 12분쯤부터는 함경남도 낙원, 정평, 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평안남도 온천, 화진리와 황해남도 과일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지대공 미사일 등으로 추정되는 10여 발을 발사했습니다.
오후 4시30분부터 5시 10분까지는 선덕과 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과일과 온천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지대공 미사일 등으로 추정되는 6발의 추가 발사가 포착됐습니다.
북한은 지난 6월 5일 SRBM 8발을 섞어서 쏜 적이 있었지만 최소 25발을 하루 동안 발사한 건 처음입니다.
한국 군은 또 오후 1시 27분쯤엔 북한이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서 동해상 NLL 북방 해상 완충구역 내로 발사한 100여 발의 포병사격을 포착했습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을 소집해 “실질적 영토침해 행위”라고 지적하며 엄정한 대응을 지시했습니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도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분단 이후 처음으로 NLL을 침범해 자행된 미사일 도발이자 실질적인 영토 침해 행위라는 점에서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김성한 실장] “정부는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및 9.19 군사합의를 위반하여 도발하고 있음을 강력히 규탄하며 특히 이번엔 우리 국가애도기간 중에 자행한 점에서 매우 개탄스럽게 생각합니다.”
한국 군은 곧바로 북한 도발에 비례해 실제 대응행동에 나섰습니다.
합참은 “공군 F-15K, KF-16의 정밀 공대지미사일 3발을 동해 NLL 이북 공해상, 북한이 도발한 미사일의 낙탄 지역과 상응한 거리 해상에 정밀 사격을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사격은 이날 오전 11시 10분부터 낮 12시 21분께까지 이뤄졌고 발사한 미사일은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슬램-ER(SLAM-ER) 등이었습니다.
합참은 “한국 군의 거듭된 경고에도 북한이 도발을 지속하는 만큼 이후 발생되는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분명히 경고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승겸 한국 합참의장은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 겸 미한 연합사령관과 공조회의를 통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상황을 긴밀히 공유하고, 북한의 위협과 도발에 대해 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굳건히 할 것을 확인했습니다.
한국 민간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부연구위원은 북한의 공세가 선을 넘고 있다며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양욱 부연구위원] “이런 성격의 공격은 조금만 각도가 틀려지면 곧바로 영해에 떨어질 수도 있고 우리 선박이나 이런 것들이 조업할 수 있는 그런 지역에 미사일을 떨궜다고 하는 것 이것 자체는 대한민국에 대한 공격에 준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북한의 이번 도발은 미한이 지난달 31일부터 닷새 일정으로 F-35A와 F-35B 스텔스 전투기 등 240여 대를 동원해 한반도 상공에서 벌이고 있는 대규모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을 빌미로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지난달 28일 이후 닷새 만이고 올해 들어선 26번째입니다. 이와는 별도로 순항미사일을 3차례 발사한 것이 언론에 공개된 바 있습니다.
북한 군사정책을 총괄하는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번 미사일 발사에 앞서 2일 새벽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내고 미한이 북한을 겨냥해 무력을 사용할 경우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박 부위원장은 미한이 북한에 무력 사용을 기도한다면 자국 ‘무력의 특수한 수단들’이 부과된 전략적 사명을 지체 없이 실행할 것이라며 사실상 핵 무력 사용을 위협했습니다.
박 부위원장은 ‘비질런트 스톰’에 대해 “철저히 공화국을 겨냥한 침략적이고 도발적인 군사훈련이라고 평가한다”며 “대단히 재미없는 징조”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진무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는 북한의 이번 미사일 도발은 규모나 양상으로 볼 때 단순한 무력 시위를 넘어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 전술과 유사한 작전 훈련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김진무 교수] “비질런트 스톰 훈련이 북한에 대한 강력한 군사적 압박이고 그 훈련이 북한 동해나 북한 영토에 접근할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미사일을 NLL 남쪽으로 발사해서 반접근 지역거부 전략의 일환으로 한미연합군이 북한 영토로 접근 못하도록 경고를 하기 위한 사격이 아니었겠느냐 그렇게 해석하고 싶어요.”
박 부위원장은 또 미국 국방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2022 핵태세보고서’에서 북한이 핵 사용시 정권의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고 적시한 부분에 대해 미국이 북한 정권 종말을 핵 전략의 주요 목표로 정책화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한이 전략자산을 동원해 연합훈련을 하고 있고 한국 국민들이 ‘이태원 참사’ 사건으로 충격에 빠진 상황에서도 북한이 이같이 도발을 감행한 것은 이례적인 공세적 태도라며 핵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박 교수는 박정천 부위원장 담화는 궁극적으로 7차 핵실험까지이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도발이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인도 파키스탄 사례가 생각이 나는데 파키스탄이 핵 능력을 갖춘 후에 인도와의 제한적 국지도발 횟수가 훨씬 증가했거든요. 그것도 핵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그런 공격적인 군사정책을 쓸 수 있다, 그 모습이 이번에 북한한테 다 드러났다고 생각이 되고요.”
한편 박 부위원장의 담화가 북한 대내 매체에선 일절 다뤄지지 않은 데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엔 체제 결속 차원에서 이를 활용했을텐데 이번엔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사정을 감안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