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심각한 식량난 속에서 장마당에서의 식량 유통을 강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식량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한 조치지만 절대적인 공급 부족 상황에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22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당국이 양곡 수매 비중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면서 장마당에서의 쌀 등 식량 거래에 대한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농민들이 자체 처분할 수 있는 양을 포함한 전체 생산 식량 가운데 수매 비중을 어느 정도까지 확대할지 두고 봐야 한다며, 이런 정책이 장마당 민간 유통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최근 장마당에서 주민들의 식량 판매를 제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북중 무역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식량 가격이 급등하자 장마당 거래를 제한하고 국영 양곡판매소에서 거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일부에선 장마당 거래가 아예 금지됐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최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간한 ‘한반도 정세-2022년 평가와 2023년 전망’에서 북한 당국이 “올 10월 이후에는 식량 유통에서 집권적 성격을 강화하는 새로운 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양 교수는 “북한 당국은 종합시장 즉 장마당에서의 식량 판매를 금지하고 주민들은 당국이 운영하는 양곡판매소에서만 식량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종합시장에서 식량 매대를 없앴고 일반 주민들 중 직장에 나가는 사람은 일종의 식량공급카드를 받아서 양곡판매소에서 식량을 구입하도록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 관계자는 장마당 거래가 일부 금지됐다고해도 일시적일 수 있기 때문에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북한은 앞서 지난 9월 25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고 “양곡 수매와 공급 사업을 개선하고 당과 국가의 양곡정책 집행을 저애하는 온갖 현상들과의 투쟁을 강도 높이 전개”하는 문제 등을 강조했습니다.
양곡 유통 비리 단속과 척결에 나서는 한편 국가 주도의 식량 유통체계에 반하는 현상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새로운 양곡정책 방향의 핵심은 양곡 유통 비리 엄단과 국가 수매 확대라고 요약했습니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들어 ‘분조관리제 내 포전담당제’를 통해 기존의 집단농업체제를 완화하고 생산물에 대한 농민들의 자율적인 처분권을 확대하는 조치를 시행하면서 어느 정도 식량난을 완화하는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식량난 심화로 식량 가격이 장기간 고공행진을 하면서 장마당의 시장 기능을 축소하고 개인의 매점매석과 사재기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중앙통제 강화로 정책을 바꾸고 있다는 게 조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입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최근 식량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국가가 양곡 전반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고 그렇게 보면 장마당에서 개인들 간에 이뤄지는 사적인 식량 거래 이런 것들이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보여지죠.”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도 최근 발간한 ‘2023 국제정세 전망’ 보고서에서 올 한 해 북한에서 중앙통제 강화 기조가 경제 영역 전반에 확장됐다며,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공장과 기업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자율권이 용인돼 왔던 농업 분야까지 유사한 기조가 확대될 조짐이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탈북민 출신인 김혁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절대적인 공급 부족 상황에서 북한의 이 같은 정책 전환이 실효성을 가질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김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과거에도 쌀 값 급등을 막기 위해 국가가 물량 확보를 늘리고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을 쓴 적이 있지만 높은 가격의 음성 거래를 초래하면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혁 선임연구원] “쌀을 갖고 있는 물주들이 비싸게 팔 수 있는데 시장에서 통제를 당하니까 그 가격을 통제 당한다는 것은 쌀을 안 내놓는 것으로 연결되거든요. 식량을 시장에 안 내놓으면 사람들이 결국 시장보다는 개인 즉 물주들에게 가서 사야 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물주 집에 가서 쌀을 사기 시작하면 몰리지 않습니까. 몰리게 되면 쌀 가격은 당연히 올라가는 겁니다.”
북한의 이런 중앙통제 강화 흐름이 장기간 이어질지 여부에 대해선 엇갈린 전망이 나옵니다.
다만 장마당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가가 식량 전부를 통제하는 과거 계획경제 시대로 돌아갈 순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북한의 경우 국가가 식량 생산과 배급을 책임질만한 능력을 이미 상실했고 장마당에서의 상업적 유통을 배제하고 식량난을 해소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겁니다.
탈북민 출신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영희 남북하나재단 대외협력부장입니다.
[녹취: 김영희 대외협력부장] “북한 당국은 절대로 옛날 배급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이미 붕괴가 됐고요, 그 다음에 주민들이 시장에서 돈을 벌어들이고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그런 상태에서 다시 전 단계 형태의 배급제로 돌아가긴 상당히 어렵다, 이렇게 보고요.”
외교안보연구소 보고서는 북한의 정책 변화가 “악화된 국내외 여건에 대한 단기적 대응인지 중장기 차원의 구조적 변화인지 단정하긴 아직 어렵다”면서도 “여전히 공세적인 최근의 통제 강화 흐름은 북한의 정책기조가 국경 봉쇄 해제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