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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신냉전 구도’ 외교전략에 적극 활용…미중 대립 완화 등 변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8기 6차전원회의에 참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8기 6차전원회의에 참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신냉전 구도’라는 국제정세 인식을 부각시킨 이후 북한이 이를 대외정책에서 보다 적극 활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냉전 구도에 대한 중국과의 기본적인 입장차 등 북한의 외교전략을 제약하는 요인들이 존재한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를 통해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며 이에 맞는 대외사업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또 미국이 일본, 한국과의 동맹 강화를 명분으로 ‘아시아판 나토’와 같은 새로운 군사블럭을 형성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목소리를 직접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곤경에 처한 러시아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담화를 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탱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미국을 비난하면서 러시아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한 전호 즉 참호에 서 있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한은 미중 패권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지난해 중러와의 밀착을 활용해 미국 한국과의 대결외교를 폈습니다.

그런 북한이 올들어 신냉전 구도를 외교전략에 한층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30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의 방한 행보에 대해 ‘신냉전의 불구름을 몰아오는 대결 행각’이라고 비난 보도를 했습니다.

이어 북한 외무성은 지난해 12월 유럽연합, EU가 결정한 9번째 대러시아 제재와 나토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움직임 등을 비난하는 기사를 관영매체에 실었습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스스로 신냉전 체제로 규정한 국제무대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박사입니다.

[녹취: 박형중 박사] “한국이 단순하게 전통적으로 한미일 연대만 강화하는 게 아니라 나토 쪽하고도 연대를 강화하고 있고 이게 전체적으로 공동전선이 펼쳐지는데 그런 구도에 대해서 북한 나름대로 대응하는, 일종의 세를 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북한이 신냉전 구도를 부각시키는 의도는 국제사회 고립을 벗고 대북 제재를 돌파할 수 있는 우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입니다.

한국의 북 핵 수석대표를 지낸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이 신냉전 구도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을 앞세워 대북 제재의 돌파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최근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수세에 몰린 러시아 편들기가 과도할 만큼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천영우 전 수석] “북한한테 제일 절박한 게 제재 구도를 깨는 건데 이 제재 구도를 깨는 데 러시아가 북한에 확실하게 신세를 지게 만드는 겁니다.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데 중국과 경쟁적으로 라이프라인(생명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러시아를 꽉 잡은 거죠.”

천 전 수석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강대국의 약소국 침공 반대라는 북한의 기본 외교노선에 정면으로 위배된 사태지만 그럼에도 러시아를 이토록 두둔하는 것은 북한이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신냉전 체제를 전제로 한 외교전략이 뜻대로 먹힐지 여부에 대해선 변수들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무엇보다 신냉전 구도라는 관점에서 동북아 지역에서 미한일과 대립하는 진영으로 설정된 북중러 진영의 핵심국가인 중국이 정작 신냉전 구도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이 비록 미국과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미국과의 과도한 대결을 원치 않고 있고 한반도 안정적 관리는 여전히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의제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가장 큰 문제는 뭐냐 하면 중국이 신냉전을 부인하고 비판하고 있다는 거죠. 신냉전으로 끌고 가려는 미국의 의도에 반대한다, 진영으로 가면 안 된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계속 얘기하고 있거든요. 중국은 신냉전으로 갈 생각이 없다고 하는데 북한이 계속 신냉전, 신냉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지난해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확정 뒤 중국의 대미정책이 유화적으로 바뀌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이달 초로 예정된 미중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박형중 박사는 미중 간 대립을 완화하고 협력공간을 모색하는 회담이 될 경우 최근 북한을 두둔하기만 했던 중국의 대북정책도 변화가 생길 여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북중관계 전문가인 박병광 박사는 동북아에서 미한일 대 북중러라는 진영 간 대결 구도를 바라는 북한으로선 미중 간 대립이 어느 정도 격화되길 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박사는 그러나 이번 미중 외교장관 회담은 과도한 대립이 서로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 양국이 가드레일 즉 경쟁의 안전대를 만들고 협력할 수 있는 분야도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박병광 박사] “미중 대립구도가 격화돼야 사실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결국 북한 입장에선 미중 관계가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가기 보다는 미중 대립 구도가 지속되길 더 바랄 수 있죠. 그런 측면에서 곧 있게 될 미중 외교장관 회담을 북한은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박 박사는 또 미한이 최근 전략자산인 스텔스기를 동원한 연합공중훈련을 이례적으로 한국 서해상에서 실시한 데 대해 한반도 위기 고조를 막고 북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 역할에 나서라는 중국에 대한 압박 메시지도 담겨 있다고 풀이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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