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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방백서 6년만에 '북한 정권은 적' 부활


윤석열(가운데) 한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대전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오른쪽은 이종섭 국방장관. (자료사진)
윤석열(가운데) 한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대전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오른쪽은 이종섭 국방장관. (자료사진)

한국 정부의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군을 적으로 명시한 표현이 6년만에 부활했습니다. 백서는 북한의 핵 위협과 잇단 도발 행위들을 부각하며 '힘에 의한 평화'라는 안보 기조를 분명히 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 위협의 실체와 엄중함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기술한 ‘2022 국방백서’를 16일 발간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국방백서는 1967년 이후 25번째로,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처음입니다.

이번 국방백서는 북한에 대해 “2021년 개정된 노동당 규약 전문에 한반도 전역의 공산주의화를 명시하고, 2022년 12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한국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했으며 핵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군사적 위협을 가해오고 있기 때문에,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 군은 한국의 적”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 군을 한국의 적으로 규정한 표현이 6년 만에 부활한 겁니다.

아울러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호칭도 국무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빼고 ‘김정은’으로 바꿨습니다.

국방부는 적 표기 부활에 대해 “북한의 대남 전략, 한국을 적으로 규정한 사례, 지속적인 핵 전력 고도화, 군사적 위협과 도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김 위원장 호칭 변경에 대해선 “북한이 한국 대통령을 지칭하는 표현이나 대남 행동을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윤석열 정부는 원칙적인 남북관계를 강조하며 북한을 국제법적인 협상 대상으로 보다는 한국을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규정한 국내법적 관점에서 상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대적 투쟁 선언, 한국에 대한 선제 핵 공격 가능성 언급, 그리고 잇단 도발 등으로 한반도에 적대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2022년이 중요한 게 그 이전엔 북한이 핵 위협 대상을 미국으로 한정했거든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이고 동포를 향해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명시적인 북한의 입장이었는데 2022년 9월 핵 무력 정책 법제화 이후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을 통해서 남한을 공격하겠다는 의도를 명백히 했거든요.”

주적 개념은 지난 1994년 남북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북한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1995년 국방백서에 처음 명기돼 2000년까지 유지됐습니다.

이후 남북 화해 무드가 형성되면서 2004년 국방백서부터 ‘적’ 대신 ‘직접적 군사 위협’ 등의 표현으로 바뀌었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에도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이라는 표현이 사용됐습니다.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그 해 발간된 백서에 ‘북한정권과 북한 군은 적’이란 표현이 재등장했고 박근혜 정권까지 유지됐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2018년과 2020년 국방백서에선 북한을 특정하지 않고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적으로 간주한다’는 문구로 대체됐다가 이번에 다시 북한 정권과 군을 적으로 규정한 겁니다.

이번 국방백서는 또 2년 전 백서 일반부록에 들어있던 9.19 군사합의서를 삭제하는 대신 ‘북한의 9.19 군사합의 주요 위반사례’를 실었습니다.

북한의 반복적인 도발 행위를 부각시킨 겁니다.

이번 국방백서는 2020년까지 북한의 주요 위반은 두 차례였지만 작년 한 해만 무려 15차례에 걸쳐 위반했다는 기록을 제시하면서 “해상완충구역 내 포 사격과 북방한계선, NLL 이남으로 미사일 발사, 무인기 침범 등 9.19 군사합의의 상호 적대행위 중지 조치를 반복적으로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현황도 도표를 통해 구체적으로 적시했습니다.

도표에 따르면 지난해 1월 5일부터 12월 31일까지 34일에 걸쳐 하루 한차례 이상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11월 2일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NLL 이남 해상완충구역에 미사일이 탄착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입니다.

[녹취: 신종우 사무국장] “이번 한국의 국방백서의 경우 지난 정부의 백서와 달리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과 함께 북한의 그동안의 도발 상황을 육하원칙으로 기술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미사일 명칭에 대해서 혼용돼서 이해가 어려웠던 내용들까지 구분해서 정리한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결국 이런 북한의 도발 양상을 국민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기술을 세부적으로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번 국방백서는 새 정부의 안보전략 기조를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국방백서는 국익 우선의 실용외교와 가치외교를 구현하고 강한 국방력으로 튼튼한 안보를 구축하며 원칙과 상호주의에 입각한 남북관계 정립, 경제안보 이익의 능동적 확보, 신안보 위협 요인에 선제적 대처 등을 안보전략 기조로 꼽았습니다.

국방부는 “2022 국방백서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힘에 의한 평화’ 기조 아래 한국 군 능력과 태세 강화 노력과 강력한 대응 의지를 강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힘에 의한 평화라는 것이고 그리고 힘에 의한 평화와 더불어서 자유민주주의, 현 정부가 계속 얘기하는 가치, 그 두 가지가 결국 국방안보 전략에도 포함된 핵심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국방백서는 북한의 핵 무력 수준에 대한 평가도 담았습니다.

국방백서는 북한의 핵물질 보유량과 관련해 “핵 분야는 1980년대부터 영변 등 핵시설 가동을 통해 핵물질을 생산하여 왔으며, 최근까지도 핵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 70여㎏,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통해 고농축 우라늄(HEU) 상당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기술했습니다.

2016 국방백서 때부터 직전 2020 국방백서까지 ‘50여 ㎏’이었지만 이번 백서에선 이보다 20㎏가량 늘어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이는 2021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등이 제기한 플루토늄 재처리 의혹을 사실로 판단한 데 따른 추정치입니다.

핵탄두를 제조할 때 구성품과 기술력에 따라 1기에 4~8㎏이 쓰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은 핵무기 9~18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국방백서는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 능력에 대해선 “2006년 10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총 6차례의 핵실험을 고려 시 핵무기 소형화 능력도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된다”고 기술했습니다.

구체적인 정보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화성-17형’ 등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필두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북극성-4ㅅ형’과 ‘북극성-5ㅅ’, 활공체형과 원뿔형의 극초음속 미사일 등 새로운 핵 투발 수단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는 점도 백서에 반영됐습니다.

백서는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억제와 대응 능력 강화를 위해 확장억제 실행력 제고, 맞춤형 억제전략(TDS) 발전, 전략자산 전개 강화, 동맹의 미사일 대응(4D) 전략 발전, 미사일 대응 정책협의체(CMWG) 신설 등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방백서는 이와 함께 “북한이 2018년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의 3개 갱도를 폭파하였으나 2022년 3번 갱도를 복구하는 등 핵 능력 고도화를 위한 추가 핵실험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어 군은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고 기술했습니다.

국방부는 총 7장의 본문으로 구성된 국방백서를 국방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고자 영문본과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다국어 요약본으로 제작해 올해 상반기 중 발간할 예정입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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