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이 식량난과 ‘알곡 증산’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4월 춘궁기를 앞둔 시점에 식량 사정과 농사 전망은 어떤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현재 북한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식량난을 비롯한 농업 문제입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덕훈 내각 총리는 지난 16일 평양에서 열린 내각 당 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농업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이번 내각 확대회의는 지난달 열렸던 노동당 전원회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6일부터 나흘간 열린 당 전원회의에서 알곡 생산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우리 국가와 인민의 자존과 복리를 위하여 알곡고지를 기어히 점령하고 농업 발전의 전망 목표를 성과적으로 달성해나가자고 열렬히 호소하시었습니다.”
북한 당국이 잇달아 전원회의를 연 배경에는 심상찮은 식량난이 있습니다.
원래 12월은 식량난이 발생하는 시기가 아닙니다. 가을걷이가 11월에 끝나기 때문에 12월에는 쌀 가격이 안정세를 보여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해는 달랐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쌀 가격이 kg당 6천10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전년도 1월(4천800원)보다 무려 1천300원이 오른 겁니다.
식량 가격이 급등하자 북한 당국은 두 가지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나는 장마당 쌀 판매를 중단시키고 정부 당국이 운영하는 양곡판매소에서만 식량을 구매하도록 한 것입니다.
또다른 하나는 중국에서 쌀을 비롯한 식량을 수입한 것입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10월 이후 5개월간 중국에서 7만7천t의 쌀을 수입했습니다.
그 결과 북한의 쌀 가격은 다소 진정세를 보였습니다.
일본의 북한 전문 매체인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6일 kg 당 6천100원이었던 쌀값은 올 3월10일 6천원선으로 떨어졌습니다.
`아시아 프레스’는 주로 양강도와 함경도의 물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한국의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원장도 평양의 경우 쌀 값이 조금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최근 좀 누그러져서 평양의 경우 3월 중순 식량 가격이 5천500원 정도 하거든요.”
평안남도 평성에서 농업 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11년 한국에 입국한 조충희 씨는 중국에서 수입한 쌀이 시장에 풀려 가격이 떨어진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탈북민 조충희 씨] “중국에서 쌀이 한 60만t 계약이 됐다고 해요, 그래서 쌀이 조금씩 들어와 시장에 공급돼 가격이 풀린 것으로 봅니다.”
탈북민들은 평양의 식량난은 진정됐지만 함경남북도와 양강도같은 지방은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이들 지역은 산이 많은 곳으로 그동안 주로 중국과의 공식, 비공식 무역으로 식량을 조달해 왔습니다.
그러나 2020년 1월 북중 국경이 봉쇄되고 3년 이상 밀가루를 비롯한 식량이 들어오지 않아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탈북민 조충희 씨입니다.
[녹취: 탈북민 조충희 씨] “하루에 세끼 다 먹는 집은 드물다고 얘기하고, 두끼, 한끼, 그것도 풀에다 옥수수 가루 섞에 먹는 집도 많고, 집 팔고 산에 올라가 움막생활하다가 굶어죽는 사람도 있다고 하고.”
이런 상황에서 북한 노동당과 내각은 잇달아 전원회의를 열고 ‘알곡 고지’를 점령하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전원회의에서 제시한 방안은 관개공사, 농기계 보급, 간석지 개간, 곡물 수확량 제고 등입니다. 농업 부문에 대한 노동당의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밖에 북한 당국은 밀과 보리의 파종을 10일가량 앞당기며, 봄 가뭄을 비롯한 자연재해에 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의 정책에 핵심이 빠져있다고 말합니다.
알곡 생산을 늘리려면 농민들에게 인센티브(혜택)를 줘야 합니다. 농사를 잘 지은 농민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그러나 기존 정책은 당국이 헐값에 쌀을 수매해 농민 입장에서는 농사를 잘 지어도 본인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다시 권태진 원장입니다.
[녹취:권태진 원장] ”농민이나 협동농장 입장에서는 정부에 팔 이유가 하나도 없죠, 시장에 팔면 더 비싸게 받는데, 그래서 정부가 양곡을 많이 확보 못하는 겁니다.”
실제로 탈북민들은 북한의 곡물 수매 제도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북한에서는 11-12월이 되면 수확량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수매합니다. 그런데 가격이 문제입니다.
현재 북한에는 두 가지 곡물 가격이 있습니다. 국정가격은 쌀 1kg이 46원입니다. 반면 시장가격은 6천원 선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국정가격을 적용해 쌀을 수매합니다. 만일 쌀 100kg을 수매할 경우 농민에게 4천600원을 지불하는 것으로, 농민 입장에서는 큰 손해입니다.
만일 농민이 같은 양의 쌀을 장마당에 팔면 60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농민 입장에서는 쌀 100kg을 국가에 팔면 59만5천400원이 손해인 셈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메릴랜드대 교수는 북한이 농업 수확량을 늘리려면 중국처럼 협동농장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1978년부터 협동농장을 가족농으로 바꿨고, 그 결과 수확량이 50%나 늘었다는 겁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China had same system until 1978 collective farm system, then Deng Xiaoping…”
또 다른 것은 비료 문제입니다.
북한 당국의 지시대로 알곡고지를 점령하려면 논과 밭에 질소, 인산, 칼리 같은 비료를 충분히 공급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이 1년에 필요한 비료량은 58만t(성분기준)이지만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비료는 10만t에 불과합니다.
북한 당국도 전원회의에서 비료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비료 생산 방안이나 해결책은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올해도 극심한 비료 부족을 겪을 것이라고 권태진 원장은 전망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화학비료 대신에 다른 광물질을 사용하는 다른 비료로 대체하겠다는 생각 같은데, 안 되는 것이죠, 말이 그런 것이지.”
전문가들은 올해 농업 전망이 어둡다고 말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한 해 먹고 살기 위해서는 곡물이 550만t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난해 곡물 생산량은 전년도 보다 3.8% 감소한 451만t에 불과합니다. 100만t가량 부족한 겁니다.
북한 당국은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그동안 7만t 이상의 쌀을 중국에서 수입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 수입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4월부터는 북한의 ‘보릿고개’ 춘궁기가 시작됩니다. 이 때는 지난해에 거둔 쌀과 옥수수는(강냉이)는 다 소비하고 아직 새 곡물을 거두지 못한 상태로 식량난이 심각해지는 시기입니다.
북한 농업에 밝은 조충희 씨는 올 춘궁기를 어떻게 보내느냐 여부는 중국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중국서 식량 수입이 잘되면 그럭저럭 넘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녹취: 조충희 씨] ”제가 봤을 때는 그 60만t이 빨리 들어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고 상황을 방치하고, 국경이 안 열리면 4-5월 가면 상황이 더 한층 악화되지 않겠나.”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농업에 나라의 존망이 걸려있다면서 밥먹는 사람들은 모두 식량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경 봉쇄가 풀리지 않고 중국의 대규모 원조가 없는 한 식량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