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인이 우크라이나군 포로를 참수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이 온라인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볼로미디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행위 당사자들을 '짐승들'로 부르며 강력 비난했습니다.
12일 현재 주요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온라인 공간에는 위장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남성이 우크라이나군복 차림 남성의 목을 베는 장면을 담은 1분40초짜리 영상이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이 영상이 언제 어디서 찍힌 것인지, 촬영자와 대상자들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영상에는 희생자의 비명 소리가 잦아든 뒤 군인들이 목을 벤 사람을 격려하는 음성과 희생자의 머리를 지휘관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하는 소리도 담겨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군인 2명이 머리와 손이 잘린 채 땅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촬영한 다른 영상도 온라인에 떠돌고 있습니다.
해당 영상에는 러시아 군인들이 웃으며 "우크라이나군이 우크라이나군을 죽였다"고 조롱하는 장면도 담겨있습니다.
■ "짐승들...잊혀질 것으로 생각 말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해당 영상들이 공개된 직후 화상 연설에서, 온 세상이 이 영상을 봐야 한다며 "세상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고 비난했습니다.
아울러 "이 짐승들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죽이는지 봐야한다"면서, "우리는 즉각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이 일이 잊혀질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러시아에 경고했습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러시아를 향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보다 더한 집단이라고 이날(12일) 트위터를 통해 비난했습니다.
이어서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러시아는 순번에 따라 이달 안보리 의장국을 맡고 있습니다.
쿨레바 장관은 이날 트위터 메시지에서 "러시아를 우크라이나와 유엔에서 쫓아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바그너 그룹 소행 가능성
러시아 용병업체 바그너 그룹이 '참수 영상'의 제작과 유포를 주도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바그너 그룹이 지난해 봄과 여름에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시크주 포파스나에서 비슷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지적들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드미트로 루비네츠 우크라이나 의회 인권위원은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 국제사법재판소에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루비네츠 위원은 "포로를 공개 처형한 행위는 제네바 협약과 국제인도법, 인간의 기본권 침해를 보여주는 또 다른 표시"라고 지적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 영상을 보고 몸서리를 쳤다"면서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유엔 대변인이 전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인권 감시단도 "소름 끼치는 행위"라고 규탄했습니다.
OHCHR 측은 "이번 사건을 적절하게 조사해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전쟁 포로에 대한 범죄 등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상당수 확보한 바 있다"고 밝혔습니다.
■ 전쟁 둘러싼 잔혹 영상 확산
앞서 지난달 초,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 포로를 처형하는 동영상이 나돌아 우크라이나 당국이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나선 바 있습니다.
해당 영상은 러시아군에 포로로 붙잡힌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얕은 참호에서 담배를 피우다 자동화기로 사살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으로 추정되는 병사가 욕설과 함께 "죽어라"고 소리치며 총격하자, 우크라이나 병사는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외치며 숨졌습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지난달 12일, 해당 영상 속 자국 병사의 신원을 '올렉산드르 이호로비치 마치예우스키'로 확정 발표하고, '우크라이나의 영웅' 칭호를 수여했습니다.
■ 러시아 "검증이 우선"
러시아 당국은 12일, '참수 영상' 내용의 진위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영상에 담긴 것들이 "소름끼친다"면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거짓의 세계에서는 영상이 진짜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고 이날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 폴란드 총리 "한국 포탄 지원 미국 개입해야"
한국산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기 위해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12일 밝혔습니다.
미국을 방문 중인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이날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포탄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려면 한국의 풍부한 포탄 재고를 활용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우크라이나군보다 훨씬 많은 포탄을 가진 러시아군이 전장에서 더 많은 물량을 발사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막대한 양의 포탄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폴란드가 한국과 협의 없이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에 보낼 목적으로 한국산 포탄을 구매하려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 "한국과 대화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이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와 탄약 전달에 대해 한국과 대화했다"고 밝히고 "한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반응을 두려워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이(무기와 탄약 전달)는 미국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거듭 설명했습니다.
한국이 포탄을 지원해도 러시아와 중국이 반발하지 않도록 미국이 직접 나서라는 이야기입니다.
폴란드는 지난해 한국과 124억달러에 달하는 무기 수입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에는 '천무' 다연장 로켓, K2 탱크,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달 9일 폴란드 국방부는 한국 정부의 승인을 받고 한국산 부품이 들어간 자주포를 우크라이나에 수출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 기밀 문건 유출 여파
모라비에츠키 총리의 이번 '미국 개입 필요' 발언은 미국 기밀 문건 유출 여파로 한국산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우회 지원'하는 문제가 논란이 된 가운데 나와 주목됩니다.
최근 소셜미디어에 퍼진 미국 기밀 자료에서, 김성한 전 한국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에 관해 대화하는 내용 등이 공개돼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유출된 기밀 문건 가운데 적어도 2곳에서, 한국 정부가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기고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공급할지에 관해 내부 논의를 진행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설명했습니다.
한국이 폴란드에 포탄을 수출하고, 폴란드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유출된 정보들의 내용이 상당수 위조됐다는 입장입니다.
김태효 한국 국가안보실 1차장은 관련 보도에 관해 "공개된 정보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데 대해서 미한의 평가가 일치한다"고 지난 11일 방미 출국 직전 기자들에게 밝혔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