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최근 북한과 일본이 관계 개선의 손짓을 주고 받았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북 정상회담 운을 띄우자 북한도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화답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27일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며 북한과의 고위급 협의를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도쿄에서 열린 ‘일본인 납북자 귀국을 촉구하는 국민집회’에 참석해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기시다 총리입니다.
[녹취: 기시다 총리/ 일본어]
기시다 총리는 “조건을 달지 않고 언제라도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마주할 결심을 하고 있고, 전력을 다해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틀 뒤인 29일 북한은 ‘조건부 수용’ 의사를 보였습니다.
박상길 북한 외무성 부상은 담화를 내고 “만일 일본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조일(북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화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은 말이 아니라 실천행동으로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합니다.
북한을 10여 차례 방문한 일본 ‘주간 동양경제’ 신문 후쿠다 게이스케 칼럼니스트입니다.
[녹취: 후쿠다 게이스케] “이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도 기시다 총리 발언에 대해 이렇게 일찍 빠른 반응을 보인 데 대해 놀라는 분위기입니다.”
일본의 역대 정부는 2019년 이래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없이 만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북한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건부이긴 하지만 북한이 긍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은 주목할만 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현재 북일 대화의 공은 일본에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의 대화 제의에 북한이 일단 호응한 만큼 이번에는 일본이 접촉 시기와 장소를 제안할 차례라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전문가들은 북한과 일본 사이에 고위급 접촉이나 협의까지는 이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히로시마대학 객원 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 기자입니다.
[녹취: 마키노 요시히로] ”일단 아세안 지역안보 포럼, ARF에서 최선희 외무상과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장관 사이에 고위급 회담이 이뤄질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진전될만한 알맹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정상회담은 이뤄지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다음달에 아세안 지역안보 포럼 (ARF) 외교장관 회의가 열립니다.
전문가들은 북한과 일본의 대화 조건이 맞느냐 여부가 핵심 관건이라고 말합니다.
일본의 목표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입니다.
북한과 일본 관계는 납치 문제를 둘러싸고 상당히 꼬여있습니다.
지난 2002년 9월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이 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15명의 일본인을 납치했다”고 시인하고 사과했습니다.
이어 피랍 일본인 5명을 일본으로 송환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이미 사망했거나 북한에 아예 입국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공식적으로 17명이 북한에 의해 납치됐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피랍자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실제로 사망했으면 유해를 조사하자는 입장이라고 마키노 요시히로 기자는 말했습니다.
[녹취: 마키노 요시히로] ”2014년 스톡홀름 합의처럼 북한이 양보한다면 일본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협상하려 할 것입니다.”
북한과 일본은 지난 2014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나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설치에 합의했지만 이후 북한의 핵실험으로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납치 문제가 이미 끝난 사안이라는 입장입니다.
박상길 외무성 부상도 “선행한 정권들의 방식을 가지고 실현 불가능한 욕망을 해결해보려고 시도하는 것이라면 오산이고 괜한 시간 낭비”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납치 문제는 이미 끝난 사안인만큼 더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북일 관계를 관찰해온 후쿠다 게이스케 씨는 납치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 간에 견해차가 큰데다 일본 국내 상황을 감안할 때 양측 간 고위급 협의가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후쿠다 게이스케] ”일본 국내 상황을 보면 기시다 총리가 말로만 하지, 북한에 구체적인 조건을 발표하는 여유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일본의 대북 독자 제재를 완화 또는 해제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일본은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2006년부터 북한에 독자 제재 조치를 취해왔습니다.
그 중에는 만경봉호를 비롯한 북한 선박 입항 금지를 비롯해 북한 국적자의 일본 입국과 조총련 간부의 재입국 금지, 대북 송금 규제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나 마키노 요시히로 기자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상황과 미한일 관계 등을 감안할 때 일본이 대북 제재를 해제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마키로 요시히로 기자] ”2014년 스톡홀름 합의 때는 독자 제재를 일부 완화했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요즘 미국이 한미일 안전보장 협력이 워낙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있고…”
실제로 미국 전문가들은 일본인 납치 문제를 풀더라도 미국과 한국과 조율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납치 문제를 풀려고 하다가 대북 제재에 금이 가거나 미한일 공조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의 국장은 일본이 이 문제를 놓고 워싱턴과 긴밀한 사전 협의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Oviously Japanese will have a consultation with Washington before moving forward.”
북일 관계 정상화는 북한의 해묵은 숙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1945년 8월 일제 강점에서 해방되자 1965년 6월 한일 기본조약을 맺고 일본과의 국교를 정상화했습니다.
이어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금조로 청구권 협정을 맺고 일본으로부터 5억 달러를 받아 포항제철을 비롯한 경제개발에 활용했습니다.
반면 북한은 아직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 하지 못했기 때문에 청구권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국교가 정상화될 경우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100억 달러 이상의 청구권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일 관계에는 수교 배상금이 있습니다. 100-300억 달러로 수교 배상금이 있는데, 만일 그 정도 돈이 들어오면 단비가 될 수 있죠.”
전문가들은 북한과 일본이 대화 재개의 신호를 주고 받았음에도 실질적인 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납치 문제를 둘러싼 북일 간 견해차가 워낙 큰데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역내 대결 상황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과 일본이 꽉 막힌 양자 관계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