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이른바 ‘베팅 발언’을 계기로 한 한국과 중국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한 동맹과 미한일 안보 협력 강화를 추구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국의 견제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이른바 ‘베팅 발언’을 거듭 비판했습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12일 브리핑에서 싱 대사를 겨냥해 “대사라는 자리는 본국과 주재국을 잇는 가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가교 역할이 적절하지 않다면 본국과 주재국의 국가적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빈 협약 41조에서 외교관은 주재국의 법령을 존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또 같은 조항에서 외교관은 주재국 내정에 개입해선 안 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각계각층 인사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은 싱 대사의 직무”라며, “그 목적은 이해를 증진하고 협력을 촉진하며, 양국 관계의 발전을 유지하고 추동하는 것”이라고 싱 대사를 엄호했습니다.
싱 대사는 앞서 지난 8일 한국의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관저에 초청해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을 하고 있다”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이라고 고압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싱 대사의 발언은 양국 외교부가 상대국 대사를 초치하는 상황으로 번졌습니다.
장호진 한국 외교부 1차관은 9일 싱 대사를 불러 “사실과 다른 내용과 묵과할 수 없는 표현으로 한국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은 외교사절의 우호관계 증진 임무를 규정한 ‘빈 협약’과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고 지적하며 “한국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내정간섭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자 다음날인 10일 눙룽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는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를 불러 “싱 대사가 한국 각계 인사들과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은 그의 업무”라고 설명하며 “한국 측이 현재 양국 관계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되돌아보고 진지하게 대하길 바란다”고 한국 정부에 책임을 돌렸습니다.
중국은 ‘초치’ 대신 ‘회동을 약속하고 만난다’는 의미인 ‘웨젠’ 형식이었다고 발표했지만 내용상 한국의 주한 중국대사 초치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싱 대사의 발언이나 이후 중국 정부가 한중 관계 악화를 한국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태도에 대해 한국 정부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윤석열 정부가 미중 간 균형을 취하던 문재인 전임 정부와 달리 미한동맹과 미한일 공조 강화를 추구하는 외교노선을 밟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4월 미한 정상 간 확장억제 강화를 담은 ‘워싱턴 선언’ 발표, 한반도 서해상에서의 합동훈련, 미한일 안보 공조 강화를 지향한 윤석열 정부의 안보전략 최상위 지침서 공개 등을 지켜 본 중국이 한국에 대한 공세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한국의 입장에선 지금 명확하게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 좌표외교를 지향하는 상황이고 여기에 대해서 중국이 입장 정리를 거의 끝내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두고 봐야겠지만 한국에 대해서 일종의 공세, 대응 정책을 본격화하는 것 같고 그 출발점이 싱하이밍 대사 사건이라고 보여지거든요.”
한중 외교 당국 간 항의 공방은 앞서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에 앞서 ‘로이터' 통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타이완해협에서의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를 언급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월20일 정례브리핑에서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타인의 말 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비외교적 언사로 반발했고, 장호진 차관은 같은 날 싱하이밍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날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정재호 대사에게 전화로 항의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기존 한중 관계에 대해 불공정한 측면이 있었다고 보고 상호 존중과 호혜 원칙을 기초로 한 새로운 양국 관계를 추구하는 데서 빚어진 갈등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윤석열 정부 대중정책의 핵심 중 핵심이 상호 존중과 호혜 원칙이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 의미는 이전에 있었던 한중 관계에서 국제사회의 기본적인 외교 규칙과 규범에 어긋나는 행위들이 많이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가지 않겠다는 게 핵심인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의 마찰음이 들리고 있는 거죠.”
싱 대사의 비외교적 발언은 한중 외교 당국 간 이견을 조율하기 위한 비공개 자리도 아닌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공개적 자리였다는 점에서 논란을 더 키웠습니다.
중국 전문가인 통일연구원 전병곤 선임연구위원은 싱 대사의 발언 의도와 관련해 한국과 국제사회를 겨냥한 일종의 여론전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전병곤 선임연구위원] “자기가 야당 대표를 불러서 읽었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즉흥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본국으로부터 받아서 여론전을 해서 자기들의 명분도 축적하고 한국도 좀 흔들고 중국 내부는 좀 견고하게 만들고 이런 것들을 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도 싱 대사가 한중 관계를 중시하는 야당 대표를 초청한 것은 한국 국민들의 여론을 움직이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나 싱 대사의 발언엔 중국 우월주의와 한국에 대한 화풀이식 태도가 담겨 있다며, 그렇지 않아도 높은 한국 국민들의 반중 정서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대국중심주의 그 다음에 대국우월주의 그리고 일종의 화풀이식 이렇게 돼 버렸기 때문에 또 야당 입지를 더 축소시켜버렸기 때문에 지금 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또 한중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커지고 있거든요.”
한중 관계 악화가 표면화하고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으로 갈 경우 북 핵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한일 대 북중러 간 대결 구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외교 지형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중 관계 악화를 자신들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나 무력 도발에 적극 활용하려고 할 것이라는 겁니다.
전병곤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전병곤 선임연구위원] “북한 입장에선 한미일 협력구도와 북중러 구도 이렇게 이뤄지는 것을 좋아하는 입장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중국으로부터 외교적 지원, 경제적 지원 이런 것들을 다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보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에 있어선 한중 관계 악화가 그렇게 좋지 않은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한편 한덕수 한국 국무총리는 12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 나와 “중국은 한국에게 경제적으로 중요한 관계고 서로 존중하고 상호주의 원칙으로 서로 국익을 위해 성숙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중국에 당당한 외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관계를 가져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