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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70주년 기획] 3. 각국 참전용사들 “한국 발전에 자긍심…북한 실상 안타까워”


지난 2020년 7월 27일 한국 서울에서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지난 2020년 7월 27일 한국 서울에서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오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년이 되는 날입니다. 휴전으로 전쟁을 중단한 남북한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고 70년이 지난 지금 모든 면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VOA는 정전협정 이후 한반도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상황을 점검하는 기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순서로 정전협정 70주년을 맞는 미국 등 주요국 참전용사들의 소감을 김영권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영국 왕립 보병연대 소속으로 18살 때 한국전쟁에 참전한 브라이언 호프(90세) 씨는 정전 협정일인 1953년 7월 27일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당시 최전선에서 중공군과 치열하게 싸우다가 이 날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녹취: 호프 씨] “Actually, I was in the front line the day that the armistice was signed. It was the longest day of my life. Being in the infantry we were just hoping that nobody would go wrong. It was 10 o'clock in the evening,”

영국 왕립 보병연대 소속으로 18살 때 한국전쟁에 참전한 브라이언 호프 씨(오른쪽)가 맨체스터에서 탈북민 출신 인권운동가 박지현 씨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박지현.
영국 왕립 보병연대 소속으로 18살 때 한국전쟁에 참전한 브라이언 호프 씨(오른쪽)가 맨체스터에서 탈북민 출신 인권운동가 박지현 씨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박지현.

영국 맨체스터에 거주하는 호프 씨는 “인생에서 가장 긴 날”이었다며 보병부대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잘못되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밤 10시에 휴전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냈다고 이 노병은 말했습니다.

미 해병 1사단 소속 통역장교로 당시 판문점 인근 최전선에서 정전을 맞은 한국계 미국인 이종연 변호사는 당시 연합군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종연 변호사] “정말 좋아했죠 미군들은. 우선 자기들이 죽음에 노출되지 않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중공군이 특히 후크라고 판문점 아래 우측에 고개가 있는데요 거기에서 격전이 보통 있지 않았습니다. 많이 죽었고요. 그래서 휴전 소식에 미군들은 보통 즐거워한 게 아니었죠. 한국 해병대도 그쪽(판문점 왼쪽)에서 너무 많이 전사했어요. 물론 한편으론 이 비참한 전쟁의 결과도 보지 못하고 끝났으니까 슬픔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론 자기들이 사니까요.”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미 육군 중장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에 북한과 중국 공산군을 대표한 남일 조선인민군 대장과 정전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이후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과 펑더화이 중공 인민지원군 사령관, 김일성 북한 군 최고사령관이 각각 협정문에 서명하면서 1950년 북한 공산군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지 3년 1개월 2일 만인 이날 밤 10시에 한반도에서 긴 총성이 멎었습니다.

워렌 위드한 전 미군 해병대 대령(오른쪽)이 2013년 해병대 사령부를 방문해 지휘관과 촬영한 사진(미 해병대 제공)
워렌 위드한 전 미군 해병대 대령(오른쪽)이 2013년 해병대 사령부를 방문해 지휘관과 촬영한 사진(미 해병대 제공)

19살 때 미 해병대원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베트남전을 거쳐 대령으로 전역한 워렌 위드한 한국전 장진호 참전용사협회 회장은 그러나 정전협정은 실망스러운 결말이기도 했다고 평가합니다.

전쟁의 마지막 해는 교착 상태였고 누구도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용두사미’ 격으로 정전협정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녹취: 위드한 전 대령] “The armistice was anti-climactic. And the reason was anti-climactic is because the last year of the war was a stalemate. Nobody want nobody lost a lot of people died. so it was anti-climactic at that time now don't get me wrong. I'm glad the war was over. I'm glad people stopped killing one another. But I was back in the United States at that time and I was said it was over, I said what I got?”

위드한 전 대령은 물론 “전쟁이 끝나서 다행이었고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지 않아서 기뻤다”면서도 미국 콴티코 해병대 본부에 복귀한 뒤 정전협정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뭘 얻었지’라며 반문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두 달여 만에 부산에 도착해 낙동강 전투와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흥남철수 등 역사의 현장에서 전우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던 장본인으로서 종전이 아닌 정전에 대해 만감이 교차했던 것입니다.

당시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정전협정 서명 뒤 “기뻐할 시간이 아니라 기도할 시간”이라고 말한 것처럼 한국전쟁은 유엔군과 공산군,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수많은 아픔과 상흔을 남겼습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미군 등 유엔군 사망자는 5만 4천 246명, 중공군 40여 만 명에 달했습니다. 한국 국방부는 한국군 전사자가 14만 7천여 명, 북한군은 52만여 명, 남북한 민간인과 실종자는 160만여 명이라고 밝혔습니다.

래리 카이나드 전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장(KWVA)이 한국전쟁 중 카투사 병사들과 촬영한 사진. 사진 제공 = 레이 카이나드.
래리 카이나드 전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장(KWVA)이 한국전쟁 중 카투사 병사들과 촬영한 사진. 사진 제공 = 레이 카이나드.

미국 육군 제3보병사단 소속 포병장교로 38선에서 중공군과 치열하게 싸웠던 래리 카이나드 전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장(KWVA)은 이런 이유 등으로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참전용사들은 환영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카이나드 전 회장은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 중에 우리가 한 일이 한국 국민들에게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카이나드 전 회장] “When I came back home from the war we had very little welcome for the US. But I realized that what we did during the war was a wonderful thing for the people in South Korea. And as I look back on it, I think more and more. We accomplished a great thing for the South Korean people. I'm very pleased to have been able to return to South Korea seven times and see the living the Korean people and how much they are enjoying the freedom,”

1990년대 이후 한국을 7번 방문했다는 카이나드 전 회장은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돌이켜 보면 점점 더 그런 생각이 든다면서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한국인들을 볼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캐나다군 보병연대(PPCLI) 장교로 참전했던 앨런 박쉘 씨가 1951년 가평전투 직전 고아들과 촬영한 사진. 사진 제공 = 앨런 박쉘.
캐나다군 보병연대(PPCLI) 장교로 참전했던 앨런 박쉘 씨가 1951년 가평전투 직전 고아들과 촬영한 사진. 사진 제공 = 앨런 박쉘.

캐나다군 보병연대(PPCLI) 장교로 참전했던 앨런 박쉘(97) 씨도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한국전에 참전하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국이 이룩한 발전은 정말 놀라우며 역사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다는 사실이 기쁘다는 것입니다.

[녹취: 박쉘 씨] “It was really an honor to be there for us and the way Korea is turned out with their democracy and the South Korea and the progress they've made is amazing. So we feel good, that that's an important part of history that we were a little part of.”

박쉘 씨는 전쟁 중 매우 비참했던 피난민들과 고아들을 돌봤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1951년 가평전투 직전 고아들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VOA에 보여줬습니다.

그러면서 정전협정 70주년이 됐지만 한반도가 계속 분단 상태로 있는 게 안타깝다면서도 북한의 현 정권이 항상 전쟁을 원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쉘 씨] “I do feel sorry that the country was split up like that. And I always worry about North Korea like they just seem to be looking for war. And I feel sorry for the people of North Korea. I feel bad they couldn't have had the same opportunities that the South Koreans had.”

아울러 “북한 주민들이 불쌍하다”면서 “남한 사람들과 같은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위드한 전 대령은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한국전 참전용사라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을 공산주의로부터 구하는 데 아주 작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고 많은 한국인 친구가 있다는 것이 아주 자랑스럽다”는 것입니다.

[녹취: 위드한 전 대령] “I am very proud to be called a Korean War veteran. I am very proud to have been a part very small part in saving South Korea from communism. I am very proud to have so many Korean friends. I live in Koreatown and I am very proud of when I go to see how the Koreans are thriving.”

한국이 좋아 북버지니아 애난데일의 코리아타운 인근에 살고 있다는 위드한 전 대령은 한국인들이 어떻게 번영하고 있는지 보러 갈 때면 매우 자랑스럽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전협정 70주년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참전용사도 있습니다.

난 2018년 한국 평창 동계올림픽 때 한국에서 성화를 직접 봉송해 주목받았던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의 참전용사 클로드 샤를랑 씨는 “복잡한 감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캐나다 한국전 참전용사 클로드 샤를랑 전 대령 (본인 제공)
캐나다 한국전 참전용사 클로드 샤를랑 전 대령 (본인 제공)

[녹취: 샤를랑 씨] “I have mixed feelings about this thing. First of all, there was no war declaration. There was no declaration of peace. We have what we call a ceasefire agreement. And that's the way it's been for 70 years. From my point of view, don't forget that I'm giving you my point of view. I find this very unfortunate that there has not been the settlement and peace treaty.”

캐나다 보병연대 장교로 1951년 10월 참전한 샤를랑 씨는 한반도는 종전선언과 평화선언 없이 정전협정으로 70년을 지내왔다면서 남북 간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당시 많은 전사자가 속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전협정은 올바른 조치였고 한국의 눈부신 발전 역시 긍정적이지만 남북이 70년째 분단된 채 평화를 이루지 못하는 현실을 볼 때 여러 감정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카이나드 전 미 참전용사협회장은 오랜 분단이 안타깝다면서도 북한에 김 씨 독재정권이 있는 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평화로울 수 있다면 한반도 전체에 더 좋을 거라는 것은 알지만 김정은이 권좌에 있고 그가 한국과 미국의 파트너십에 대해 증오심을 갖고 있는 한 (평화협정에 대해) 많은 의구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각국 참전용사들은 그러나 북한 지도부가 정전협정일을 전승일이라며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전쟁을 북침이라고 선전하는 데 대해선 “명백한 거짓”이라며 세뇌에 속는 북한 주민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습니다.

위드한 전 대령과 캐나다의 박쉘 씨입니다.

[녹취: 위드한 전 대령] “I'm sorry for the people who have to live under this totalitarian regime. I'm sorry for them because I know in my heart that they would rather live in freedom. It is a terrible situation.

[녹취: 박쉘 씨] “I feel sad for North Korean people not their government, but the North Korean people. I feel like they missed out so much that you know, they could have had if they had been with South Korea.”

위드한 전 대령은 “이런 전체주의 정권 아래서 살아야 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며 “주민들이 자유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기 때문에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박쉘 씨는 “북한 정부가 아닌 주민들이 안타깝다. 한국과 함께 했다면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너무 많이 놓친 것 같다”며 안쓰러워했습니다.

영국의 호프 씨는 맨체스터 지역에 사는 박지현 씨 등 탈북민들과 자주 교제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실상에 대해 많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날 지도를 보면서 북한도 한국도 찾을 수 없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호프 씨] “I really hope that one day I can look at a map and find no North Korea and find no South Korea. I just want to look at your map and see Korea. One Nation going together in a moment of peace. And I truly truly hope that can happen.”

호프 씨는 지도에서 단지 하나의 코리아를 보고 싶다며, 평화의 순간에 하나의 국가가 함께 하는 모습을 보길 원하며 정말로 그렇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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