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한동맹의 상징적인 인물’로 꼽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고 윌리엄 웨버 대령과 존 싱글러브 장군의 추모비가 최근 한국에 세워진 가운데 유족들은 고인들이 늘 한국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회고했습니다. 고인의 헌신을 기억하려는 한국에 감사의 뜻도 전했습니다. 안소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고 윌리엄 웨버 대령의 손녀인 데인 웨버 씨는 한국에 세워진 할아버지의 추모비가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웨버 씨]”So he was really dedicated to making sure that it was the remembered war and not the forgotten war. And hopefully generation of Americans and anyone who visits Paju would be able to see his story and remember the War.”
최근 한국에서 열린 추모비 제막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웨버 씨는 20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생전 할아버지는 미국에서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는 데 마음 아파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헌신해 오신 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할아버지의 추모비 제막식에 직접 참석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국에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는 한국전쟁 정전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일환으로 지난 12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보훈단지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고 윌리엄 웨버 대령과 존 싱글러브 장군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비 제막식을 거행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6.25 전쟁 참전용사와 전후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던 장병과 가족 등 90여 명이 자리했습니다.
웨버 씨는 할아버지의 평생 염원이었던 ‘통일된 한반도’에 추모비가 세워졌더라면 할아버지가 더 기뻐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드러냈습니다.
[녹취: 웨버 씨] “One of his greatest life regrets was that the Korean Peninsula was remained divided and he was really hoping for reunification. And I think having the whole monument, he would have been a little bit embarrassed to have all of the attention on him in such a way he was very humble and he didn’t see himself as a hero even thought everybody else did.”
웨버 씨는 “할아버지에게 평생 한이 된 것 중의 하나는 한반도가 분단된 채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며 “할아버지가 통일을 간절히 희망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웨버 씨는 또한 “모두가 할아버지를 영웅으로 인식했지만 할아버지는 자기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살아 계셨다면) 추모비 건립으로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조금은 쑥스러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생전에도 한국전쟁을 통한 자신의 업적이 조명되는 것은 꺼렸고 늘 미군과 그 외, 유엔 참전국 병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할아버지는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빠른 속도로 발전해 전 세계 경제 대국 중 하나가 된 한국에 대해 늘 자랑스러워했다”며 살아생전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늘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웨버 대령은 왼손으로 경례하는 모습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6.25 전쟁 발발 후 공수 낙하산부대 작전 장교로 참전해 1950년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작전 등에서 활약한 웨버 대령은 1951년 원주 전투에서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현역으로 복귀한 뒤 지난 1980년 대령으로 전역했고 지난해 4월 97세를 일기로 메릴랜드 자택에서 별세하기 전까지도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희생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국전 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회장을 맡아 워싱턴 DC의 한국전 참전비 ‘19인 용사상’ 건립을 주도했고 워싱턴에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와 한국군 지원부대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 건립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추모비의 또 다른 주인공인 존 싱글러브 전 유엔사령부 참모장의 아들 존 싱글러브 씨는 VOA에 “아버지가 희생한 국가인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며 “아버지의 사진과 이야기가 적힌 추모비를 보는 순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잊지 않는 한국에 대한 고마움을 평생 간직할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전쟁’이 미국인들에게도 잊혀진 전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아버지는 한국에 모든 것을 바친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싱글러브 씨] “His commitment to the Korean people was so important. It’s very evident by the actions he took years ago in the 70s when Korea was really being threatened by the North Korea. And he ended up retiring early not of his own choosing.”
싱글러브 씨는 “한국인에 대한 아버지의 헌신은 너무 중요했다”며 “한국이 북한의 위협을 받던 1970년대에 아버지가 취한 행동만 봐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아버지는 결국 이 같은 행동으로 인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조기 전역을 명령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싱글러브 장군은 1970년대 주한미군 참모장 재직 당시 지미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결정에 반대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싱글러브 장군은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다 보직 해임돼 백악관으로 소환된 바 있습니다.
1978년 싱글러브 장군은 비록 군 복무를 마치지 못하고 강제 퇴역했지만 주한미군 철수 정책은 철회됐습니다.
싱글러브 씨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한국인들이 매일 느끼는 북한의 위협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었다며, 하지만 이번 추모비 제막식 참석차 한국 땅을 밟고 나서 한반도 상황을 걱정하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싱글러브 씨]”I see now why he worried that much. I realized that the threat from North Korea is a real thing and people in South Korea feel that every day and that’s the part that’s hard for Americans to understand. It’s something that I didn’t fully understand until I was over there. I mean my father’s memorial is up near the North Korean border.”
싱글러브 씨는 “아버지는 생전 한국전쟁 경험담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전쟁을 겪고 발전한 한국에 대해 놀라워하고 자랑스러워했다”고 전했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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