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 중인 탈북민들이 북한으로 송환돼 생사를 확인할 길 없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습니다. 가까스로 북한에서 탈출한 배우자와 자녀의 북송을 ‘보이지 않는 학살’에 비유하며 국제사회에 중국 정부의 강제북송을 막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강제북송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지난 7일 미국 의회 연방 의사당 앞.
[녹취: 구호 소리] “중국은 탈북민에 대한 강제송환을 즉각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탈북민 강제북송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와 함께 미국을 방문한 강제북송 피해자 가족들이 그리운 아내와 아들, 오빠 등을 호명하며 관심을 촉구합니다. 이 가운데는 2019년 강제북송된 아내 최순화 씨를 애타게 그리는 허영학 씨도 있습니다.
[녹취: 허영학 씨] “중국 정부의 강제북송으로 인해서 저는 아내를 잃었습니다. 더 이상 중국 정부의 강제북송 행위를 묵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허 씨는 지난 2017년 두 딸과 함께 한국에 먼저 정착했습니다. 이후 열심히 일해 아내의 구출 비용을 마련한 뒤 2019년 아내를 중국으로 탈출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중국 공안에 체포돼 두 달여 만에 북한으로 송환됐고 이후 소식이 두절됐습니다. 남편과 자식이 모두 한국으로 간 상황에서 탈출하다 체포됐기 때문에 정치범수용소(관리소)에 수감됐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행방도 생사도 알 수 없습니다.
[녹취: 허영학 씨] “제 아내는 북한의 그 험악한 환경에서도 정말 법을 위반하지 않고 살던 여자입니다. 내가 지금도 가슴이 터지는 게 그렇게 법을 위반하고 살았다면 말도 안 하겠습니다. 그렇게 착하게 살던 여자인데 정치범이 됐어요. 국가에 반역 행위를 했거나 무슨 그런 일절 그런 행위도 모르던 사람인데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졌습니다. 생사도 확인할 길이 없어요.”
허 씨는 “큰돈을 두 번이나 쓰면서 백방으로 아내를 찾아 구출하려 노력했다”며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허영학 씨] “(한숨 소리) 한 가정을 정말 찢어 놓고.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원한을 잊지 않을 겁니다.”
미국을 찾은 6명의 강제북송 피해자 가족들은 모두 이런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VOA에 한국에 와서 근심·걱정 없는 것 같지만 가슴에는 상처투성이라고 말했습니다.
탈북민들의 필사적인 탈북 과정을 그린 다큐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우영복 씨는 동생의 부인인 올케를 구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녹취: 우영복 씨] “중국의 강제북송 만행은 탈북민 3만 4천 명의 불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강제북송을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우 씨는 어머니와 남편 두 딸을 데리고 1만 km가 넘는 험난한 여정 끝에 한국 정착에 성공했지만 올케 최순애 씨는 지난달 수년간의 수감 생활 끝에 수백 명의 탈북민과 함께 북한으로 송환됐습니다.
우 씨는 “올케가 너무 불쌍하다”며 그의 기구한 운명을 소개했습니다.
2013년 탈북 후 인신매매돼 중국 남성에게 팔려 갔던 올케는 열심히 돈을 모아 북한의 남편과 딸을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중국에서 반강제적으로 결혼한 다른 남편이 있기 때문에 북한의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최 씨는 기회를 보면서 다른 탈북민들의 탈출을 돕다 2018년 공안에 체포됐습니다. 그리고 인신매매 혐의로 중국 감옥에서 2년을 보냈고 북송 대기 중 다시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백산 구류소에서 3년을 더 보낸 뒤 지난달 북송됐습니다.
우 씨는 “올케가 북한에서 돌봐 줄 가족조차 없다”면서 사실상 “정치범수용소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녹취: 우영복 씨] “진짜 밥을 먹을 때마다 목구멍으로 안 넘어가요. 우리는 실제 (한국에 왔으니) 좋은 날만 남아 있어요. 그런데 내 동생을 볼 때는 너무 불행한 거예요.”
올해 66세인 이병림 씨는 2010년 당시 17살에 불과했던 외아들 박철주 씨를 강제북송으로 잃었습니다.
[녹취: 이병림 씨] “저는 아들이 정말 북송되어 갔을 때 죽고 싶은 생각도 여러 번 했고 지금까지도 가슴 속에 싸늘한 얼음덩이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같은 그런 아픔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저와 같은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 많은 북한 여성들이 다시는 강제북송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참하게 됐습니다.”
아들 박철주 씨는 양강도 집결소로 이송된 뒤 실종됐습니다.
“교화소에 수감됐다면 행방을 어떡하든 알 수 있지만 아무리 찾아도 행방을 알 수 없기에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게 확실하다”는 게 박 씨의 설명입니다.
아들이 살아 있으면 올해 30세. 박 씨는 “희망 고문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병림 씨] “희망 고문을 당하죠. 죽은 것을 보지 못했으니까. 제 눈으로 죽은 것을 봤다면 믿을 수 있겠지만 보지 못했으니까 믿지 못하는 거죠.”
미국을 찾은 북송 피해 가족들은 대부분 이 씨처럼 오랜 기간 숨을 죽이고 있다가 용기를 낸 사람들입니다.
[녹취: 이병림 씨] “그사이에는 많이 주저하곤 했는데 지금 더하잖아요.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너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에 아, 우리 피해자들이 소리를 내야 사회적으로 좀 귀를 기울여 줄 수 있을 것 같고.”
비대위 방미 대표단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한별 북한인권증진센터 대표 역시 강제북송 피해자의 가족입니다.
[녹취: 이한별 대표] “저도 역시 어머니가 두 차례 강제북송당하여서 10여 곳의 구금시설에서 정말 끔찍한 인권침해를 당했습니다. 또 저의 사랑하는 오빠도 2009년에 강제북송되어서 정치범 수용소에 있습니다. 저희 여기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탈북민 가족들이 그 아픔을 함께 안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 대표는 “중국의 북송 만행을 막으려면 한국의 힘으로는 부족해 미국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의회를 비롯해 주요국에서 탈북민 북송 중단 결의안이 채택되도록 국제 캠페인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이한별 대표] “저희 탈북민 강제북송 피해자 가족들은 가족의 안타까운 강제북송으로 인해서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 생사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애타는 마음을 안고 여기 미국 땅에까지 와서 여기에 서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하여 앞으로 전 세계 의회 곳곳에서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 중지를 위한 결의안이 채택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보길 소원하는 허영학 씨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보이지 않는 학살에 대해 꼭 말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허영학 씨]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정말 눈에 보이는 학살이지만 저 강제북송은 보이지 않는 학살이에요. 저 사람들 북한에 넘어가면 그저 파리목숨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학살입니다.”
국무부 대변인은 7일 VOA에 “우리는 최근 중국이 탈북민을 포함한 다수의 북한 주민을 북한으로 송환했다는 신뢰할 만한 보도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중국은 국제법을 준수하고 탈북민들이 원하는 곳으로 이주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그러나 탈북민은 난민이 아니라 경제적 이유로 국경을 불법 월경한 사람들로, 국제법과 국내법,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탈북민 등 비대위 대표단은 8일 워싱턴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강제북송 중단을 촉구했지만 대사관 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For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