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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남북군사합의 유지하되 훈련·정찰 재개해야”


한국 군인들이 강화도 인군 비무장지대 철책을 순찰하고 있다. (자료사진)
한국 군인들이 강화도 인군 비무장지대 철책을 순찰하고 있다. (자료사진)

한국 정부가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와 관련해 남북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시사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전문가들은 합의 폐기보다는 중단했던 훈련과 정찰 활동을 재개하는 편이 낫다고 진단했습니다. 한국 국민과 전 세계에 군사합의를 어긴 것은 북한이란 점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안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참모를 지낸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 부대표는 20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이 3차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한다고 해서 한국이 9.19 남북군사합의(CMA)를 폐기하는 것은 대단한 실수가 될 것”이라며 “남북군사합의 폐기는 한국에 아무런 실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맥스웰 부대표] “Although I think that's a huge mistake, and I think that withdrawing from the CMA because they conduct a third satellite launch, it really does nothing for South Korea. And it's really not an action that is gonna pause North Korea to stop a satellite launch.”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 부대표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 부대표

맥스웰 부대표는 “북한은 9.19 군사합의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고, 군사정찰위성을 쏘고 싶으면 쏠 것”이라며 “군사합의 폐기로는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오는 22일에서 다음 달 1일 사이에 3차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일본 정부에 통보했습니다.

앞서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20일 북한을 향해 “현재 준비 중인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즉각 중단하라”며 “북한이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강행한다면 우리 군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신원식 한국 국방부장관과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할 경우 9.19 남북군사합의를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 남북이 합의한 9.19 군사합의는 비무장지대 등 적과 대치한 지역에서의 군사적 우발 충돌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체결됐습니다.

군사분계선(MDL) 기준 5㎞ 내에서 일체의 포병 사격 훈련과 연대급 이상의 야외 기동 훈련을 전면 중단하고, 공중에서는 MDL 기준 서부는 20㎞, 동부는 40㎞ 상공에서 전투기와 정찰기 등 항공기의 군사 활동이 금지됐습니다.

해상에서는 북방한계선(NLL) 이남 85㎞까지 내려오는 덕적도부터 NLL 이북 50㎞인 북한 초도까지 포문을 폐쇄하고 해상 기동 훈련, 포격 활동을 제한했습니다.

지난 2009년 3월 한국 서해 연평도에서 바라본 북한 해주의 해안포 진지와 마을. (자료사진)
지난 2009년 3월 한국 서해 연평도에서 바라본 북한 해주의 해안포 진지와 마을. (자료사진)

군사 전문가들은 9.19 군사합의로 전방 지역의 정찰 작전과 포병 훈련 등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방위 태세 활동에 제한이 생겨 대북 방어전선이 취약해졌다고 지적해왔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수시로 이 합의를 어기는 상황에서 한국만 이를 고수하는 것은 한국 안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은 지키지 않는 9.19 남북군사합의를 한국만 지킬 필요는 없다면서도 한국이 먼저 군사합의 폐기를 공식화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맥스웰 부대표는 “북한은 미한 양국 동맹의 방어태세를 약하게 하기 때문에 9.19 군사합의를 좋아한다”며 “군사합의는 미한 양국군의 DMZ 부근에서의 군사훈련 및 정찰을 제한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북한은 자신들이 정찰위성을 발사하고 싶으면 발사하는 등 한국이 군사합의 폐기로는 그들의 위성 발사를 억제할 수 없다”며 “북한은 군사합의가 자신들에게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군사합의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한 양국의 정찰 및 군사훈련을 제한해 실은 북한에 유리하지만, 북한은 정작 자신들은 합의를 전혀 지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크리스토퍼 존스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 석좌
크리스토퍼 존스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 석좌

크리스토퍼 존스톤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 석좌는 지난 17일 VOA 워싱턴 톡에 출연해 “남북군사합의 유지가 결국 한국 국익에 부합한다”며 “북한은 합의를 폐기하는 쪽이 한국이길 바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존스톤 석좌] “I still believe that at the end of the day, sustaining the CMA is in the ROK interest. I think North Korea probably wants South Korea to be the one that abrogates the CMA that in a sense it's a trap that it would play into the North Korean and Chinese desire to paint South Korea, the United States, Japan as the aggressors as the escalators in this. So maintaining the CMA, I believe is still very much in the ROK interest.”

존스톤 석좌는 또 “(남북군사합의를 폐기하는 것은) 북한과 중국의 속셈에 말려드는 함정이 될 수 있다”며 “한국과 미국, 일본을 침략자와 도발자로 매도하려는 게 그들의 속셈”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지난 2017년 4월 한국 육군 K-9 자주포 부대가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 휴전선 인근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지난 2017년 4월 한국 육군 K-9 자주포 부대가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 휴전선 인근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이미 유명무실해진 군사합의를 먼저 폐기해 북한에 명분을 주기보다는 합의는 유지하면서 한국도 그동안 중단했던 DMZ 부근에서의 정찰 활동이나 포 사격 훈련 등 필요한 군사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낫다는 진단입니다.

굳이 폐기나 효력 정지를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한국도 북한처럼 군사합의를 전부 다 지킬 필요는 없단 겁니다.

맥스웰 부대표는 “한국은 군사합의를 유지하되 북한의 모든 합의 위반과 북한이 군사합의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며 “그리고 군사합의를 파기하는 대신 미한 동맹의 준비 태세에 영향을 미치는 군사합의 일부의 효력을 정지하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맥스웰 부대표] “My recommendation is that South Korea should keep the CMA in force and should highlight all of the violations that North Korea has made to it and the fact that North Korea has not lived up to the CMA and implemented it in good faith while South Korea has. And instead of withdrawing from it, I would suspend those parts of the CMA that cause an impact on ROK-US alliance readiness.”

맥스웰 부대표는 그러면서 DMZ 부근에서의 포 사격 훈련을 포함한 군사훈련이나 정찰기를 활용한 정찰 활동 등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0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미 한국 정부는 북한이 3차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할 경우 9.19 군사합의 일부 또는 전부를 파기하겠다고 경고해 왔고, 확실히 북한은 군사합의가 (훈련 및 정찰 등) 중요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한국의 능력을 제한하기 때문에 중시한다”면서도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때는 언제든 합의를 위반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베넷 선임연구원] “Clearly, North Korea values the agreement because it's limiting South Korea's ability to do some important things. And North Korea feels totally free to violate the agreement anytime they want to.”

한국 내 일각에서는 남북군사합의가 우발적 충돌을 억제해 왔다며, 합의 파기가 북한의 도발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베넷 선임연구원은 “군사합의가 충돌 위험을 줄였다고 생각지 않는다”며 “(북한의 기존 합의 위반 외에도) 만약 북한의 공격 준비를 감지할 수 있는 정찰을 할 수 없다면 북한은 한국을 공격할 유혹을 더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찰 활동을 통해 DMZ 인근에서의 북한의 군사 활동을 꿰뚫고 있으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베넷 선임연구원은 그러면서 “지난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북한에 대한 군사 및 정찰 활동이 계속 제한된다면) 북한이 어느 시점에 하마스와 유사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군사합의가 우발적 충돌을 억제하기보다 오히려 북한의 오판을 불러 하마스식 공격을 감행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베넷 선임연구원은 이어 “한국이 군사합의 일부의 효력을 정지한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인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와 같은 북한의 잘못된 행동과 북한의 고의적이며 반복되는 군사합의 위반 때문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베넷 선임연구원] “I think South Korea, if it suspends part of the agreement, needs to say it's suspending them because of North Korean misbehavior, both in launching a satellite, which is a violation of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and because North Korea has willingly and often violated the agreement themselves.”

베넷 선임연구원은 그러면서 “9.19 군사합의 중단이 한국 보수세력이 진보 세력이 이룬 성과에 타격을 입히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군사합의는 문재인 정부가 홍보했던 것과는 다른 합의였다는 것을 전 세계와 한국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안준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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