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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동서남북] 북한 돈주의 몰락?


지난 8월 북한 평양의 '려명거리'.
지난 8월 북한 평양의 '려명거리'.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 당국의 단속과 통제가 강화되면서 신흥 부유층인 돈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방의 경우 돈주의 70-80%가 몰락했다고 하는데요.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북한 ‘돈주’의 실상이 알려진 것은 2016년입니다.

그 해 5월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WP)신문 기자는 북한 주민 상위 1%가 평양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돈주들은 미국 뉴욕 맨해튼의 부자들과 견줄만 하다며 평양과 맨해튼을 조합해 “평해튼 (Pyonghattan)”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소개했습니다.

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돈의 주인’이라는 뜻의 ‘돈주’들은 북한 정부나 군부에서 공식 직함을 갖고 국영기업을 운영하거나 외국인 투자를 유치합니다.

돈주들은 또 세계적인 유명 의류 브랜드인 ‘자라’와 'H&M' 등을 즐겨 입고, 1인 분에 48달러짜리 쇠고기 스테이크를 먹으며,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다고 `포스트’는 보도했습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돈주가 등장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라고 말합니다.

‘고난의 행군’으로 배급이 중단되자 북한 주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장마당에 몰려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돈을 번 것이 돈주라는 겁니다.

평안남도 평성에 살다가 2011년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조충희 씨입니다.

[녹취: 조충희 씨] ”시장이 형성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력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돈주고, 또 종자돈을 빌려주는 사람도 돈주이고…”

돈주들은 지난 20-30년 간 무역과 금융, 부동산, 유통 등 4개 분야에 뛰어들어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경제가 호황을 누렸던 것은 김정은 정권 초기인 2011-2015년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은 중국에 매년 10억 달러 이상의 석탄과 광물을 수출했습니다. 이 때 북한의 실세였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 노동당과 관련된 돈주들이 석탄 수출로 엄청난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번째 분야는 고리대금업과 외환 분야였습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미 메릴랜드대학 교수는 북한에는 은행이 없어 새로 장사를 하려면 돈주로부터 고금리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If you need money in North Korea you must go to Don Ju, with high interest rate.”

돈주들은 부동산과 건설 분야에도 진출했습니다.

북한은 2012년부터 평양 시내에 창전거리, 은하과학자거리, 위성과학자거리,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 5개 신시가지를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여명거리를 비롯한 고층 아파트는 대부분 돈주들이 자금과 물자를 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전문가인 한국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입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돈주들이 가장 돈을 많이 번 것은 부동산입니다. 부동산에 투자해서 몇 배의 이익을 남긴 사례가 많은데, 자본주의 방식과 흡사하다.”

돈주들은 장마당의 곡물 거래를 비롯한 도소매업과 유통 분야, 자영업, 중소기업에도 손을 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컨대, 북한에서 ‘서비차’라고 부르는 시외버스는 대부분 돈주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2017년을 기점으로 돈주들의 사업은 하나둘씩 철퇴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선 2017년 8월 유엔 안보리는 대북 결의 2371호를 채택해 북한의 최대 외화벌이 수단인 석탄과 철광석, 수산물 수출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그 결과 북한은 연간 10억 달러의 외화 수입이 감소한 것은 물론 사업을 주도했던 돈주들이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사태가 발생하면서 2020년 1월 이뤄진 북중 국경 봉쇄는 돈주들의 주요 돈벌이 수단인 무역을 중단시켰습니다.

앞서 돈주들은 중국 단둥에서 생활필수품과 물자를 수십대의 트럭으로 들여와 북한 전역의 400여개 종합시장과 장마당에 공급해왔습니다. 그런데 국경이 갑자기 차단되면서 하루아침에 물자 공급이 끊긴 겁니다.

북한은 지난 8월 국경 일부를 개방했고, 북중 간에는 다시 화물 열차가 다니고 항공기 운항도 재개됐습니다.

그러나 돈주들이 활용했던 화물트럭은 아직 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탈북민 조충희 씨는 국경 봉쇄로 돈주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씨] ”코로나 19를 빙자한 봉쇄가 3년 이상 계속되면서 돈주들도 그렇고 상인들도 그렇고, 경제가 위축되면서, 돈주 주머니도 슬슬 비어져 가고…”

금융과 환전 업무를 해온 돈주들도 위기를 맞았습니다.

북한 당국은 2020년 10월을 기해 일반 주민들의 외화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이와 함께 달러 당 8천원이었던 환율을 강제로 6천500원대로 조정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이 시기 북한 당국은 평양에서 달러화와 위안화를 주무르는 거물 환전상 즉, 돈주를 처형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지난해 12월을 기해 장마당에서의 쌀 판매를 중단시키고 정부 당국이 운영하는 양곡판매소에서만 식량을 구매하도록 했습니다. 그동안 장마당에서 쌀과 옥수수(강냉이)는 주로 상인과 돈주들이 판매해 왔는데 이를 중단시킨 겁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이런 조치는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원장입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부추긴 게 아닌가, 양곡판매소가 생기면서 다른 민간 상인들의 양곡을 제약하면서 시장에 공급돼야 할 양곡을 공급 못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었고…”

주목할 점은 과거 돈주들과 ‘공생관계’를 유지했던 북한 당국이 시장활동에 대해 단속과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점입니다.

이는 북한 정권이 추진하는 국가 주도의 ‘자력갱생’ 노선에 따른 것이라고 임을출 교수는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2019년 2월의 북미 비핵화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북한은 자력갱생 기조로 돌아서는데, 과거에는 각자도생 자력갱생이었는데 지금은 철저하게 국가가 주도하는 자력갱생을 한다는 것이고, 모든 경제활동을 국가가 장악해서…”

이렇듯 대북 제재가 계속되는데다 북한 당국의 단속과 통제가 강화되면서 돈주들은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북한전문 매체인 ‘아시아 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최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돈주의 70-80%가 몰락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탈북민들과 전문가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탈북민 조충희 씨는 돈주들의 활동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70%는 과도한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씨] ”많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몰락했다고 하는 것은 너무 나간 것 아닌가.”

임을출 교수는 돈주들의 활동공간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때를 봐서 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지금은 돈주들이 사경제 활동을 할 경우 국가의 단속, 처벌을 받기 때문에 활동을 자제하지만, 돈주의 자산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사경제 활동이 허용되면 돈주들이 다시 투자의 주체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지난 30년 간 북한 경제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던 돈주들이 움츠려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돈주들의 이런 상황이 북한 경제와 사회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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