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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문가들 "북일 '납치자' 걸림돌 못 넘을 것…북한 '균열책' 안 통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료사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료사진)

일본과 북한에서 정상회담 추진 신호가 흘러나오지만 워싱턴에서는 근본적인 인식 차 때문에 성사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일본의 우선순위인 ‘납치자 문제‘는 거론조차 힘들어 지지율 최저점을 찍은 기시다 총리의 운신의 폭을 더욱 좁힌다는 지적입니다. 다만 북일 접촉을 미한일 균열책으로 활용하려는 북한의 전략에 일본이 휘둘릴 리 없어 3국 공조에 금이 갈 우려 또한 없다는 긍정론에 무게가 실립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안준호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미국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한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북한과 일본 간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

해리스 전 대사는 VOA의 관련 논평 요청에 “‘일본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문제 삼지 않고, 일본인 납치 문제를 양국 관계의 장애물로 삼지 않는다’는 이런 조건들 하에서는 의미 있는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해리스 전 대사] “Under these conditions(i.e., "...if Japan does not make nuclear and missile development an issue and does not place the abduction of Japanese citizens as an obstacle to bilateral relations...) I don't think a meaningful summit can happen.”

제임스 프르지스텁 허드슨연구소 일본 석좌는 20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양측이 어떤 종류의 만남과 조건을 설정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며 “양측 모두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과 관련해선 “(일본인) 납치 문제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정상회담은 일본에서는 외교적∙정치적 실패로 간주될 것”이라며 “일본 입장에서 정상회담의 본질은 납북자 문제 해결인데 현재 정상회담의 틀에서는 그것이 실현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임스 프르지스텁 허드슨연구소 일본 석좌. 사진 = 허드슨연구소.
제임스 프르지스텁 허드슨연구소 일본 석좌. 사진 = 허드슨연구소.

일본이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밝히고 북한이 이에 호응하는 듯하지만 현재 진행 상황으로 봐서는 실제로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입니다.

[녹취: 프르지스텁 석좌] “It seems to me that both sides are slowly inching toward some kind of meeting and the way they've set up conditions. (중략) So again, Both sides seem to be exploring the possibility. (중략) And again, to my mind, a summit meeting that is not able to advance the abductions issue would be, I think, in Japan, seen as a diplomatic as well as a political failure. So you know, I think we'll have to wait and see. But so again the essence of any summit from Japanese point is resolving the abductees issue and I'm not sure that's going to be realizable in the context of the present framework for a summit.”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15일 발표한 담화에서 일본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문제 삼지 않고 일본인 납치 문제를 양국 관계 전망의 ‘장애물’로 놓지 않는다면 기시다 총리가 평양을 방문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16일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김 부부장의 담화에 유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김 부부장이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고 주장한 데 대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일본은 일북평양선언에 기초해 납치와 핵·미사일 등 여러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오른쪽)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지난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오른쪽)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북일평양선언은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한 뒤 발표한 선언입니다.

선언에는 국교 정상화 회담 추진과 과거사 반성에 기초한 보상, (납치 등) 유감스러운 문제의 재발 방지,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관계 구축 등 4개 항이 담겼습니다.

일본 정부는 1970~1980년대 일본인 17명이 북한으로 납치됐고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 방북 후 5명이 귀환했으며 12명이 여전히 북한에 남아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12명 중 8명이 사망했고 4명은 아예 오지 않았다며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프르지스텁 석좌는 “북한은 오랫동안 납북자 문제는 이미 해결된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면서 “오랫동안 지속된 외교적 입장은 바꾸기가 매우 어렵고, 특히 북한은 더욱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일 간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문제를 예로 들면서 “일본이 정상화 합의 맥락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해온 것과 매우 흡사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프르지스텁 석좌] “The North Koreans are taken at that's been a long standing position. And then I don't see the North Koreans moving off of it. They've said this is over and very much, it's very much like in the same context when the you know when Japan and the ROK talk about resolving issues related to labor during the war, the Japanese have maintained that the content in the context of the normalization agreement, all those issues have been resolved. So, you know, long standing diplomatic positions are very difficult to change and I think that's particularly true in terms of North Korea.”

프르지스텁 석좌는 또 고이즈미 전 총리 때와는 달리 이미 20여 년이 흘러 납북 생존자가 얼마나 될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이 좀처럼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조셉 디트라니 전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
조셉 디트라니 전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

조셉 디트라니 전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는 “일본에 있어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은 기시다 총리와 그의 전임 총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핵심 이슈로 고집하지 않더라도 납치 문제만이라도 논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면 일본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 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납치 문제가 양국 정상회담의 장애물이 될 필요는 없지만, 정상회담에서 논의의 일부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 “For Japan, solving the abduction of Japanese nationals by North Korea is of paramount importance to Prime Minister Kishida and his predecessors. I think Japan would be open to a summit with Kim Jong Un but only if the abduction issue could also be included in the discussions, while not insisting on making the nuclear and missile issues the core issues. Thus the abduction issue need not be an obstacle to a bilateral summit, but it would, in my view, have to be part of the discussions at the summit.”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은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납치 문제에 대한 사전 협의 없이 일본 총리가 방북 요청을 수락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일본 국민은 일본 지도자가 북한을 방문하면 이 (납치) 문제에 있어 상당한 진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북한에 가서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하는 것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북한에 가기 전에 북한과 (납치 문제에 관한) 사전 합의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와일더 전 선임국장] “I think it would be very foolish of the Japanese Prime Minister to accept the visit to North Korea without a prior agreement on the abduction issue.
The Japanese public expects that any Japanese leader going to North Korea will make significant progress on the issue.
His polling is not high enough to sustain him if he goes to North Korea and gets no progress, so it is vital that the Japanese, before they go, have a prior understanding with the North Koreans. (중략) I would be shocked if he goes without a prior agreement.”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초 기시다 총리를 ‘각하’라 호칭하며 지진 피해를 위로하는 전문을 보내고 김 부부장이 북일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하는 담화를 내놓은 것은 최근 더욱 가까워진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한일 3국 협력 구도에 분열을 일으키려는 의도라고 진단했습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석좌.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석좌.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안보석좌는 “북한은 자신과 대립 관계에 있는 (미국∙한국∙일본 등) 세 민주국가 간의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이용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크로닌 석좌는 “북한은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한국과 일본, 미∙한∙일 3국 협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면서 “한국 윤석열 정부가 집권하고 퍼주기가 아닌 상호주의를 주장한 이후 더욱 절실해진 경제 제재 완화를 위해 일본이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크로닌 석좌] “Pyongyang hopes to exploit conflicting interests among the three democratic powers arrayed against it. It sees a summit with Japan as a possible means of weakening South Korea-Japan and trilateral cooperation with the U.S. It also thinks Japan could be useful for economic sanctions relief—relief made even more necessary since the Yoon administration came to power and insisted on reciprocity not handouts.”

크로닌 석좌는 “일본 정부는 김정은 정권의 셈법을 잘 알고 있다”며 “서울∙워싱턴과의 조율에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기시다 총리에게 있어 일본인 납치 문제는 최우선 과제이긴 하지만 이를 자신들에게 유용하게 이용하려는 북한의 의도를 잘 알고 있으며 역내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한국과 긴밀히 조율할 것이라는 진단입니다.

[크로닌 석좌] “Meanwhile, Prime Minister Kishida understandably needs to stand up for the Japanese people for whom the unresolved abductee issue is remains a priority. But the Kantei understands the Kim regime playbook and will be careful to coordinate with Seoul and Washington.”

전문가들은 일본과 북한의 정상회담 개최 여부와 무관하게 미한일 3국 공조는 공고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와일더 전 선임국장은 “김정은은 일본을 끌어들여 동맹 간 분열을 일으키고자 하지만 일본은 김정은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만큼 충분히 경계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와일더 전 선임국장은 북일 정상회담이 미한일 3국 협력과 역내 안보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선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은 미국, 한국과 잘 조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와일더 전 선임국장] “Kim is trying to create some divide within the alliances by inviting the Japanese, but the Japanese are wary enough and confident enough that they won't fall into Kim's trap. So I don't think this will have a major effect. I think the Japanese will coordinate well with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on what they are doing.”

해리스 전 대사는 “일북 정상회담이 열리든, 열리지 않든, 미한일 3국 협력과 역내 안보 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사진=Paul Morigi/Brookings Institution/Flickr.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사진=Paul Morigi/Brookings Institution/Flickr.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기시다 총리가 일본 내 지지율 회복을 위해 북한에 큰 양보를 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런 행위는 잠재적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약화시키고 한국과의 관계 진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일본이 스스로 나서서 이 (납북자) 문제로 인해 더 광범위한 동맹과 안보 관계에 손상을 입힐 위험을 감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그런 행위는) 일본 총리를 돕기보다 오히려 해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오핸런 선임연구원] “And again, I just don't see the Japanese going up on their own and doing this and risking damage to their broader alliance and security relationships over this issue. I think it'd be more likely to hurt the Japanese Prime Minister than to help him.”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도 “만약 양국 정상회담이 실제 성사된다면 일본은 틀림없이 그 결과를 포함해 미국과 한국에 이런 진전 상황을 계속해서 알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 “I'm confident Japan will keep the U. S. and South Korea apprised of these developments with North Korea, to include the results of any summit, if that in fact materializes.”

전문가들은 납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계속되는 한 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오핸런 선임연구원은 향후 일본과 북한 간의 관계는 “썩 좋지 않거나 어쩌면 더 안 좋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김정은은 계속 적대적이고, 주로 한국과 미국을 위협하고 있지만 일본도 확실히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오핸런 선임연구원] “Very mediocre and maybe even poor. So I think that you know, Kim Jong-un continues to be hostile, he continues to be threatening mostly to Sou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but certainly to Japan as well.”

프르지스텁 석좌는 “정상회담이 열리면 일본과 북한 관계가 개선될 거라고 사람들이 추측하겠지만, 북한이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일본을 향해 미사일을 계속 발사한다면, 양국 관계가 크게 개선되기는 매우 어렵다”며 “양국 관계를 크게 개선하려면 북한이 기본적으로 미사일과 핵실험을 포기하는 엄청난 조치가 필요할 텐데 좀처럼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안준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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