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문가들은 어제(17일) 이뤄진 한일 두 나라 정상의 전화 회담에 대해, 미한일 세 나라의 공고한 협력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행보라고 말했습니다. 회담에서는 일본의 북한과의 정상회담 추진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논의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대통령실은 17일 저녁 15분간 이뤄진 한일 정상 간 전화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을 포함한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일, 한미일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역내 평화와 번영에 기여해나가자”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최근 이뤄진 자신의 방미 결과와 미일관계 진전 사항에 관해 설명한 뒤 “앞으로도 굳건한 한미일 공조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응해 나가는 가운데 파트너로서 한국과의 협력을 계속 심화해나가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두 정상은 특히 북한에 대한 양국 대응에 관해 의견을 공유하고, 북한 관련 문제에서 한일 그리고 미한일 간 긴밀한 공조를 계속 발전시키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양국이 지난해 7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쌓은 견고한 신뢰관계와 양국 간 형성된 긍정적 흐름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올해도 정상 또는 외교당국 간 격의 없는 소통을 계속해나가기로 했습니다.
이번 통화는 기시다 총리의 제안으로 이뤄졌습니다.
일본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17일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과 방미 성과에 대해 정보 공유를 하려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기시다 총리가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윤 대통령과 통화를 가진 것은 미한일 3각 협력이 정상간 긴밀한 소통 속에서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행보로 풀이했습니다.
임 교수는 특히 미국의 11월 대선을 앞두고 지난 10일 한국에서 치러진 총선에서의 집권여당 대패, 그리고 기시다 내각에 대한 일본 내 저조한 지지율 등 정치적 유동성이 확대된 국면에서 미한일 3국이 협력 기조를 다져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혹시라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한일관계, 한미일 정책 공조에 균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정상끼리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정책 공조를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그런 다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져요.”
기시다 총리로선 총선의 여파로 윤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는 한일 관계 개선 기조가 흔들리지 않도록 윤 대통령과의 좋은 관계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관계가 나아졌다고 하지만 영토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과거사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일본은 지난 16일 공개된 외교청서를 통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재차 했고, 이는 이번 총선에서 대승한 한국 제1야당의 비난의 대상이 됐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석좌연구위원은 한일 관계 개선은 기시다 총리에게도 자국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석좌연구위원] “한일 관계 개선 노선이라는 게 한국 내에서 윤석열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고 한일 우호노선이라는 게 일본 측에 아주 중요하고 그런 것들을 한국민들에게 설득하는 일종의 간접적 시도로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직접 통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번 한일 정상 간 통화에서 기시다 총리가 일북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한 내용도 공유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과 통화 뒤 기자들에게 “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0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북일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해 처음으로 “환영한다”고 지지 의사를 밝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반응으로 미뤄 기시다 총리가 이번에 윤 대통령에게도 북한과의 정상회담 추진 상황을 설명했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전문가들은 북 핵 문제의 핵심 당사국인 한국과 관련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북한이 미한일 공조를 갈라치기 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라고 보고 있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입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지금 만약 한국 정부에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지지받지 않고 따돌리고 했다는 그런 인상을 주면 윤석열 대통령도 어려워질 수 있거든요. 지금 북한이 ‘두 국가론’ 펴는 데는 결국 대한민국을 따돌리고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려는 게 주 목적이라고 봐야 되거든요.”
한국 총선이 여당 참패로 끝나면서 국무총리와 대통령실 장차관급 참모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모두 퇴진하겠다고 의사를 밝혔지만 외교국방 라인인 국가안보실은 제외됐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도 미한동맹과 미한일 공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대목이라며, 기시다 총리의 통화는 이런 윤 대통령의 입장에 힘을 싣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윤 정부는 가치외교, 한미동맹에 기반한 한미일 협력, 북 핵에 대한 강경한 원칙적 대응 이 부분을 계속 가져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외교안보전략 기조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한 상황에서 일본이 협력을 해준 모양새이기 때문에 기시다 총리의 전화가 크게 나쁜 상황은 아니죠.”
한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한국의 4.10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대참패했다고 16일 처음 보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집권당 패배를 한국 정부를 흔들고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선전선동의 소재로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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