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탄두를 만드는 데 쓰이는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시설을 처음 공개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에 북한 비핵화 포기와 핵 군축 협상을 압박하는 메시지라는 분석입니다. 서울의 김환용 기자를 연결해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김환용 기자!
기자) 네 서울입니다.
진행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라늄 농축기지를 시찰했다고요?
기자) 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 물질 생산시설을 현지 지도하고 무기급 핵 물질 생산을 늘리기 위한 중요 과업을 제시했다고 13일 보도했습니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현지에서 우라늄 농축기지 조종실을 돌아보며 “정말 이곳은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면서 “핵 물질 생산을 줄기차게 벌여나가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원심분리기 대수를 더 많이 늘이는 것과 함께 원심분리기의 개별분리능을 더욱 높이”라며 “이미 완성단계에 이른 신형 원심분리기 도입사업도 계획대로 내밀어 무기급 핵물질 생산 토대를 한층 강화”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북한은 2010년 핵 물리학자인 미국의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를 초청해 평안북도 영변 핵 시설 내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준 바 있지만, 이를 대외에 직접 공개한 건 처음입니다.
북한 매체에 실린 사진을 보면 최신식 시설 안에 무기급 HEU를 얻는데 사용되는 원심분리기와 연속 농축을 위해 원심분리기 다수를 연결한 캐스케이드가 빈틈없이 꽉 찬 모습입니다.
진행자) 김 기자, 김 위원장이 이번에 방문한 시설이 어디인지 확인이 되나요?
기자) 북한은 해당 시설이 어딘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선 영변이나 강선, 또는 제3의 장소 중 한 곳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김 위원장이 “핵무기 현행 생산을 위해 능력 확장을 진행하고 있는 공사 현장을 돌아봤다”고 전한 ‘조선중앙통신’ 보도 때문에 강선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올해 2월 시작된 강선 단지 본관 서남 측의 별관 공사가 4월 초 완료돼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이 확장됐고 5월엔 인접한 건물의 개축 공사도 진행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북한이 이번에 전격적으로 HEU 생산기지를 공개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기자) 김 위원장은 현지 지도를 통해 “미제를 괴수로 하는 추종세력이 공화국을 반대해 감행하는 핵 위협 책동은 더 노골화되고 위험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며 핵 무력을 중심으로 한 국방력 강화는 “미국과 대응하고 견제해야 하는 우리 혁명의 특수성”이라고 강조해 이번 행보가 미국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오랫동안 은밀하게 관리해 온 시설을 공개한 것은 미국 대선을 50여일 앞두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한편 차후 대미 협상 과정에서 몸값을 올리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박사입니다.
[녹취: 장용석 박사] “바이든식의 제재, 군사적 압박에 의존하는 정책은 결국 무용하다는 걸 시위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대북정책 실패를 미국 대선 과정에서 한 번 더 확인해주고 싶은 욕구, 그런 생각이 들죠.”
진행자) 북한의 HEU 생산시설은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주 원인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도 김 위원장의 이번 행보가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지난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영변 핵 시설 폐기에 플러스 알파를 제시하며 강선 단지도 포기할 것을 김 위원장에게 요구했지만 김 위원장이 해당 핵 시설 존재 자체를 부인하면서 회담이 결렬됐습니다.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핵 물질에는 HEU와 플루토늄이 있는데요,북한은 최근엔 영변 원자로에서 소량으로 생산하는 플루토늄보다 지하에서 은밀하게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HEU에 대한 의존도를 훨씬 높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 위원장은 현지 지도에서 “핵 병기들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이자면 지금 성과에 자만하지 말고 원심분리기 대수를 더 많이 늘여야 한다”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생산시설 검증이 어려운 HEU에 대한 대량생산 의지를 과시하면서 미국에 군축협상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HEU 로 넘어가면 이게 사실 찾기가 어렵고 만일 협상이 시작돼서 일정 수준 동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검증하는 데 이걸 숨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실질적 기술적 어려움까지도 다 집어놓고 얘기를 하고 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거겠죠.“
진행자) HEU 생산의 열쇠는 원심분리기인데요, 이번에 공개된 원심분리기에 대해선 어떤 평가가 나오나요?
기자) 원심분리기는 고속회전에 따른 원심력을 이용해 핵 폭탄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을 만드는 장치입니다.
북한은 파키스탄 핵 개발을 주도한 압둘 카디르 칸 박사로부터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 기술을 받아들여 HEU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는데요. 이번에 공개된 원심분리기는 2m 높이였던 과거 파키스탄 원심분리기 모델보다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김 위원장이 이번 현지 지도에서 ‘이미 완성단계에 이른 새 형의 원심분리기 도입사업’을 언급한 것으로 미뤄 더 많은 핵 물질 생산을 위해 원심분리기 대수를 늘릴 뿐만 아니라 효율이 좋은 새로운 원심분리기를 자체 개발을 통해 도입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진행자) 김 기자, 한국 정부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요?
기자) 한국 통일부는 13일 정부 입장자료를 내고 “북한의 불법적인 핵무기 개발은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라며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가 “한반도와 세계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강력히 규탄했습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입니다.
[녹취: 구병삼 대변인] “정부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며 핵 능력의 가속적 강화, 전술핵무기용 핵 물질 생산을 운운한 데 대해 강력히 규탄합니다. 북한의 어떠한 핵 위협이나 도발도 굳건한 한미동맹의 일체형 확장억제 체제를 기반으로 한 우리 정부와 군의 압도적이고 강력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한국 대통령실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 의도 등을 면밀히 파악하는 중”이라며 “북한 전반의 동향을 관찰하고 분석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실은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과 관련해선 “핵실험 시기는 북한 지도부의 결심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예단하는 것은 제한된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한 정보 당국이 긴밀히 추적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6) 김 기자, 그런데 김 위원장이 우라늄 농축 시설 외에도 다른 군사 분야 현지 지도를 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조선중앙통신’ 등은 김 위원장이 신형 600mm 방사포차 성능 검증시험 현지 지도와 인민군 특수작전무력훈련기지 시찰 소식을 현장 사진과 함께 전했습니다.
한국 군 당국은 북한이 12일 아침 7시 10분께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초대형 방사포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을 수 발 쐈다고 밝혔는데, 방사포차 성능 검증시험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600mm 초대형 방사포는 북한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도록 개발한 사실상의 탄도미사일입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박사는 발사 차량이 기존 것 보다 커지고 이에 따라 발사관도 4연장에서 6연장으로 늘어났다며 기하급수적인 핵 물질 생산과 함께 핵 투발 수단의 능력 향상도 함께 과시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양욱 박사] “KN-25와 같은 이런 차량 그것도 미사일 발사관이 더 늘어나서 더 많이 공격할 수 있는 차량을 도입하고 그 다음에 핵을 양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이런 능력은 이제 수백발 이상의 핵탄두로 나아가는 그런 과정이다 라는 걸 얘기하는 겁니다.”
진행자 7) 다른 소식도 알아보죠.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러시아 관영매체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국가안보회의는 쇼이구 서기가 13일 북러간 지속적인 전략적 대화의 하나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양자 그리고 국제 문제와 관련해 광범위한 의제를 논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쇼이구 서기의 이번 방북은 무기 거래 등 북러간 밀착이 가속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어서 주목됩니다.
국가안보회의는 성명에서 쇼이구 서기와 김 위원장의 이번 만남이 지난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한 국빈방문에서 이뤄진 두 정상의 합의에 따라 매우 신뢰할 수 있고 우호적인 분위기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만남이 지난 6월 북러가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이행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모스크바 방문을 초청한 바 있어 쇼이구 서기가 이번에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논의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진행자 8) 최선희 북한 외무상의 방러 이야기도 나온다고요?
기자) 네, 한국 국가정보원과 외교부는 최선희 외무상이 러시아를 방문할 동향이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13일 밝혔습니다. 최 외무상이 러시아를 찾는다면 지난 1월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난 지 8개월 만입니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최 외무상은 18~2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제4차 ‘유라시아 여성 포럼’과 브라질과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의 경제협력체인 ‘브릭스 여성 포럼’에 참석할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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