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국을 헌법상 적대국으로 규정한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방부대를 방문해 한국을 위협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한국을 적국, 타국이라고 부르면서 한국이 주권을 침해하면 거침없이 물리력을 사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의 김환용 기자를 연결해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헌법에 한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한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또 다시 군사 행보에 나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17일 인민군 제2군단 지휘부를 방문해 15일 있었던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연결 육로 폭파에 대해 “단순한 물리적 폐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8일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남북 육로를 완전히 차단한 이유가 “세기를 이어 끈질기게 이어져 온 서울과의 악연을 잘라버리고 부질없는 동족 의식과 통일이라는 비현실적인 인식을 깨끗이 털어버린 것”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철저한 적국인 한국으로부터 북한 주권이 침해당할 때 물리력이 더 이상의 조건 여하에 구애됨이 없이, 거침없이 사용될 수 있음을 알리는 마지막 선고”이기도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진행자) 김 위원장의 이번 행보는 단순한 부대 점검 시찰을 넘어 전시 상황을 연상케 하는데요, 이런 행보의 의도는 무얼까요?
기자) 앞서 인민군 총참모부는 한국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침투해 주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지난 13일 국경선 인근 포병연합부대와 중요 화력 임무가 부과된 부대들에 완전사격 준비태세를 지시한 바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전방 군단인 2군단 지휘소에서 군단장으로부터 적의 동향을 보고받고, 전투 대기태세로 전환한 관할 여단 준비 상태를 점검한 뒤 군사행동 계획을 담은 중요 문건을 검토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습니다.
특히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은 김 위원장이 대형 지도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지도 상단에는 흐리게 처리했지만 ‘서울’이라는 문구가 식별됩니다.
유사시 2군단이 서울을 공격할 계획 등을 논의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옵니다.
또 김 위원장 뒤로는 대형 TV 화면에 한반도 지도가 띄워져 있는데, 비무장지대(DMZ)와 비슷한 위치에 파란색의 굵은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입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가장 적대적인 교전국 설정과 관련해선 헌법 개정을 통해서 일단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서 동족이 아닌 적국을 향해서 군사적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단계에서의 행동지침을 확산시키면서 내부 결속을 계속 도모하고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진행자) 김 위원장이 개정된 헌법 전문을 공개하지 않은 채 한국에 대한 적대국 규정만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게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에 대해선 어떤 분석이 나오나요?
기자)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이번 행보에 대해 통일과 민족을 부정하고 남북관계를 적대하는 두 국가로 새롭게 설정한 자신의 새 대남정책의 정당성을 주민들에게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박사는 북한 당국이 정권의 정통성과 직결된 선대의 대남노선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김 위원장의 새 대남정책의 정당성을 주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정세 긴장을 높이고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인태 박사] “지금 김정은의 결심과 취하는 조치가 정당하다, 그리고 이게 얼마만큼 필요하냐 하는 부분을 군사정세, 적대정세 그리고 여러 가지 조치를 통해서 주민들에게 어필하고자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 위원장이 주민들에게 개정된 헌법 내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통일은 비현실적이라는 식의 설명을 하고 있다며, 이런 모호한 태도는 북한 내부가 이데올로기 혼돈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진행자)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이 또 담화를 발표했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김여정 부부장은 18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북한 매체가 한국 군이 촬영한 영상을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지적에 대해 “몰상식한 소리”라고 비난했습니다.
앞서 북한 매체들은 지난 15일 단행한 남북 연결도로 북한 측 구간 폭파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 합동참모본부가 촬영해 언론에 공개한 영상을 갈무리한 사진을 보도했습니다.
이를 두고 북한이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김 부부장은 이에 대해 “미국 NBC 방송, 폭스 뉴스, 영국의 로이터 통신과 같은 세계의 각 언론들이 보도한 동영상 중 한 장면을 사진으로 썼다”며 “그런 각도에서 우리가 찍을 수가 없는 것이고 또 구도상으로나 직관적으로 보기에도 좋고 우리의 의도에 썩 맞아서 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부부장은 오히려 한국 매체들이 북한 소식을 보도할 때 ‘조선중앙통신’ 사진과 동영상을 도용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또 한국 합참이 평양에 출현한 무인기와 관련한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데 대해 “합동참모본부가 직분에도 맞지 않게 사진 따위나 만지작거리면서 망신하지 말라”며 “중대 주권침해 도발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조사규명하라”고 거듭 요구했습니다.
진행자) 김 부부장의 이런 반박에 대해 한국 측에선 어떤 반응이 나왔나요?
기자) 먼저 김 부부장이 외신 동영상을 썼다는 반박에 대해선 외신이 사용한 동영상이 한국 합참이 제공한 것이라는 점에서 결론적으로 도용을 시인한 셈이 됐다는 설명입니다.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 군사분계선 안에서 찍은 거거든요. 우리가 외신에 제공한 거지 외신이 그걸 직접 어떻게 찍습니까. 지금 불안하고 초조하기 때문에 그런 게 느껴져요. 김여정 발언에서 즉각 즉각 반응한다는 얘기는 예민해졌다는 얘기거든요.”
한국 언론매체들이 북한 측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김인애 통일부 부대변인은 18일 정례브리핑를 통해 “조선중앙통신 자료는 한국 언론사가 일본 중개인을 통해 저작료를 지불하고 합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김 부부장이 사소한 것까지 나서는 것을 보면 북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느낌”이라며 “한국 매체가 합법적으로 북한 매체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몰라서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한편 북한이 김일성 주석을 기리는 ‘주체 연호’를 쓰지 않는 정황이 포착됐다고요. 어떤 의미인가요?
기자) 네, 김정은 위원장의 10일 담화나 11일 밤 나온 외무성 중대성명에는 주체 113이라는 연호와 서기연도인 2024가 병기됐지만 12일 밤에 나온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부터는 주체연호가 빠졌습니다.
‘노동신문’ 지면과 홈페이지의 제호에도 13일자부터 서기만 표기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이 지난 12일 낮에 주체 연호를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추정이 나옵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남북한 두 국가론에 입각한 조치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한반도 두 국가론 관점에서 굳이 분단에 기초한 주체정권이라는 걸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다만 독립적인 사회주의 국가로서 국제사회가 사용하는 연도를 같이 사용하면서 국제사회 일원이 되겠다 그런 걸 거에요.”
통일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올해부터 보여온 김정은 독자 우상화의 하나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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