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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텍사스를 미국 영토로 , 샘 휴스턴


[인물 아메리카] 텍사스를 미국 영토로 , 샘 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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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 텍사스는 면적이 거의 70만 제곱 Km로 한반도 넓이의 세배가 넘습니다. 이 시간에는 이 광대한 텍사스를 미국 영토로 합병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샘 휴스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중요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물 아메리카 시간입니다. 미국 남부 텍사스는 면적이 거의 70만 제곱 Km로 한반도 넓이의 세배가 넘습니다. 이 시간에는 이 광대한 텍사스를 미국 영토로 합병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샘 휴스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샘휴스턴은 미국 연방 하원의원에 상원의원, 주 지사, 텍사스 공화국의 대통령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미국 남부를 개척한 영웅이었습니다. 샘 휴스턴이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난 1793년은 미국이 독립을 한지 겨우 17년밖에 안된 때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전쟁 시 미국 혁명군으로 싸웠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버지니아 군의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아버지가 군 복무로 바쁠 때 농장 관리는 어머니가 맡아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샘이 14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남편이 남기고 간 빚을 갚기 위해 농장을 팔아야만 했습니다. 그 후 샘네 가족은 서부 테네시로 이사를 갔습니다.

테네시에서의 생활은 어려웠습니다. 휴스턴 부인과 아이들은 직접 나무를 자르고 집을 지어야 했습니다. 샘은 그 힘든 일을 하기가 싫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들도 샘이 농부가 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샘은 농장일을 안 하고 근처 가게로 일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샘은 가게 일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샘은 일을 나가지 않고 몇 주째 집을 비웠습니다.
얼마 후 어머니는 샘이 체로키 인디언들과 함께 산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샘을 데리러 갔습니다. 그러나 샘은 집에 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인디언들의 생활 방식이 맘에 들어 계속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체로키 추장 울루테카는 샘을 아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살던 샘은 그의 나이 19살이 됐을 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1812년 영국과 미국 간에 다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샘은 이때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한다 생각하고 앤드루 잭슨 장군 휘하로 자원 입대했습니다. 휴스턴은 영국군을 편을 들고 있는 크리크 인디언들과 전투를 벌이게 됐습니다. 이때 휴스턴은 다리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싸움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잭슨 장군은 인디언 공격을 지휘하도록 사람을 찾았습니다. 이때 휴스턴은 다리 아픈 것도 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지휘를 떠맡았습니다. 휴스턴은 총알을 몇 방 더 맞고 거의 죽음에 직면했습니다..

휴스턴은 오랫동안 가료를 한 다음 겨우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다시 평화가 찾아온 후 몇 년을 보내고 있던 젊은 장교 휴스턴에게 수도인 워싱턴 디시에서 특별 임부가 부여되고 호출장이 왔습니다. 미국 정부는 체로키 인디언 추장들에게 그 부족의 모든 인디언들을 미시시피 강 건너 서부로 이주시키려는 조약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휴스턴이 함께 살았던 인디언 추장 울루테카는 그 조약 서명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휴스턴에게는 바로 그 추장이 서명을 하게 만들라는 임무가 주어진 것입니다.

휴스턴은 그 일을 하기 원치 않았습니다. 휴스턴은 인디언들에게 강제로 고향을 떠나라고 요구하는 건 옳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군인은 상부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었습니다. 체로키 인디언들은 샘을 보게 된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왜 오는지를 알고는 슬펐습니다. 여러 차례 논의를 한 끝에 울루테카는 결국 그 땅을 떠나기로 동의했습니다. 휴스턴은 임무를 잘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떠났습니다. 그의 나이 25살 때였습니다.

샘 휴스턴은 변호사가 되기로 작정하고 테네시 주 수도 내쉬빌로 가 법을 공부했습니다. 휴스턴은 열심히 공부해 18개월 과정을 불과 6개월 만에 마쳤습니다. 그리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내쉬빌 부근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과거 군 장성을 지낸 앤드류 잭슨이 가까이 살고 있어서 휴스턴은 종종 그를 방문했습니다. 두 사람은 가까운 친구가 됐습니다. 테네시 주의 정치 지도자였던 잭슨은 휴스턴에게 같이 정치를 하자고 권했습니다. 휴스턴은 그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잭슨의 후원에 힘입어 휴스턴은 테네시를 선거구로 하는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됐습니다. 그리고 4년 동안 하원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때 앤드류 잭슨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휴스턴은 테네시 주 지사가 됐습니다. 그는 잭슨 대통령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람들은 휴스턴이 잭슨의 뒤를 따라 대통령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휴스턴은 한 젊은 한 여성, 즉 친구의 딸 엘리자 알렌에게 더 마음을 쏟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몇 개월 동안 두 사람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엘리자는 샘을 떠나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샘 휴스턴은 공통스럽고 사적인 일이라고 말할 뿐 결별 이유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습니다. 휴스턴은 주지사 직을 사임하고 테네시를 떠났습니다.

샘 휴스턴은 체로키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아칸소 주로 갔습니다. 추장 울루테카는 그를 따뜻이 맞아주었습니다. 휴스턴은 그곳에서 열심히 일을 하며 슬픔을 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슬픈 기억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휴스턴은 술을 마셔댔습니다. 어떤 때는 여러 달씩 술에 취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편지를 받게 됐습니다. 휴스턴은 고향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숨지기 전 아들을 보고 “나는 내 아들의 강인함을 믿는다. 너는 반드시 성공하는 삶을 살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무렵 휴스턴은 뉴욕시 은행가 그룹으로부터 한통의 서신을 받았습니다. 은행가들은 휴스턴에게 서부 텍사스라는 곳으로 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휴스턴은 그 아이디어를 반가워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곳에는 갈수록 많은 미국이들이 이주해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곳은 멕시코의 일부였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미국인들에게 그곳에 와서 살 수 있도록 개방을 해놓고 있었습니다. 휴스턴은 은행가들을 만났지만 그들로부터 금방 무슨 결정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휴스턴은 워싱턴으로 와 잭슨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잭슨 대통령은 오랜 친구인 그에게 텍사스 주로 가서 코만치 인디언들과 평화협상을 하도록 임무를 주었습니다.

1832년 휴스턴은 텍사스로 갔습니다. 그리고 인디언들을 만났습니다. 협상은 성공하고 인디언들은 평화협정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는 중 사람들은 휴스턴에게 텍사스 전역에 반란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들려주었습니다. 멕시코 정부가 미국인 이주자들에게, 공정하지 않은 각종 법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휴스턴은 미국인들이 수도로 삼고 있는 산 펠리페 데 오스틴 (San Felipe de Austin)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스테픈 오스틴이란 사람이 멕시코 정부의 허락을 받아 그 지역을 식민지 수도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오스틴은 휴스턴이 그곳에 와 반 멕시코 저항운동에 불을 지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오스틴은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멕시코에서는 정권교체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멕시코의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부스타만테 (Anastasio Bustamante)는 쫓겨나고 안토니오 로페즈 데 산타 애나 (Antonio Lopez de Santa Anna) 장군이 세력을 장악했습니다. 오스틴은 새로운 지도자들이 멕시코 법을 개정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어느 면에서 오스틴의 생각은 옳았습니다.

텍사스 인들은 회의를 열고 샌타 아나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했습니다. 이들은, 오스틴에게 부스타만테가 만든 악법을 개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새 지도자 샌타 아나에게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오스틴이 임무를 띠고 떠난 지 여러 달이 지난 후 텍사스인들은 그가 멕시코 시티에서 체포돼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텍사스인들은 산타 아나도 부스타만테와 다른 바 없는 사람이라고 믿게 됐습니다.

멕시코 지도자는 그 후 오스틴을 플어주었습니다. 오스틴은 이제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텍사스 사람들에게 유익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믿게 됐습니다. 텍사스 인들은 또 회의를 열고 대표단을 구성했습니다.
여러 대표들은 텍사스가 멕시코 정부로부터 완전 독립을 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대표들은 완전 민주적인 멕시코를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논의가 있은 후 대표들은 텍사스를 멕시코의 한 주로 그냥 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들은 신속히 텍사스 주 헌법을 제정하고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습니다. 이어 새로운 텍사스 지사가 선출되고 샘 휴스턴은 텍사스 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됐습니다.

그러자 멕시코 지도자 샌타 아나 군대가 접근해 왔습니다. 샘 휴스턴은 텍사스 군대를 훈련시킬 시간이 없었습니다. 샌타 아나 병력은 금방 텍사스 지역인 샌 안토니오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일단의 텍사스 지원병 그룹이 멕시코 군과 싸우기 위해 샌 안토니오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휴스턴은 그 아이디어를 반대했습니다. 그는 병사들이 출동하기 전에 훈련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의용군들은 서둘러 샌 안토니오로 갔습니다. 결국 그곳에서는 5일간에 걸쳐 처절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 싸움에서 놀랍게도 소규모인 텍사스 의용군이 멕시코 군을 물리쳤습니다.

대부분의 텍사스 사람들은 그들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휴스턴은 샌타 아나가 텍사스를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휴스턴은 열심히 군대 조직에 매달렸습니다.

이때 몇몇 장교들이 휴스턴의 허락을 받지 않고 소수의 텍사스 군대를 이끌고 멕시코 공격을 계획했습니다. 그는 그 계획이 무모하다고 믿고 사령관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전 휴스턴은 샌 안토니오의 텍사스인들에게 알라모 (Alamo)라 불리는 오래된 스페인 진지를 파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휴스턴은 알라모가 대규모 멕시코 군을 막아낼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물 아메리카 샘 휴스턴 이야기는 다음 주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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