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김현숙입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하루가 멀다고 최신 기기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똑똑한 손전화기, 스마트폰에서부터 농사에 쓰이는 트랙터까지, 기술력이 바탕이 된 기기들은 소비자들에게 편리함을 선사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런 기기들에 문제가 생겨서 고쳐야 하는 상황이 되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고쳐주는 데도 별로 없고, 고치는데도 과거보다 더 많은 돈과 노력이 들기 때문인데요. 이런 세태를 바로 잡고자 요즘 미국에서는 ‘수리권 보장 운동(Right to Repair)’이 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소비자들을 위한, 고쳐 쓸 권리”
[현장음: 아시시 슈레스타 씨 수리 가게]
미 서부의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전자 제품 수리 가게를 운영하는 아시시 슈레스타 씨는 14살 때부터 전자 기기를 고쳐왔습니다. 각종 수리에 도사인 슈레스타 씨이지만, 갈수록 일하기가 힘들어진다고 했는데요. 예전엔 이동식 컴퓨터 배터리 교체쯤은 거의 누구나 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아니라고 하네요.
[녹취: 아시시 슈레스타]
컴퓨터 내부를 보면 이전처럼 나사로 열 수 있게 돼 있지 않고, 접착제로 다 붙어져 나온다는 겁니다. 요즘 나오는 모든 태블릿이 다 그렇다고 하는데요. 따라서 배터리를 하나를 꺼내는 데도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처럼 애플사의 직원이 아닌 사람이, 애플사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의 스크린이나 배터리를 교체하고 나면, 고객이 폰을 다시 켤 때 경고 메시지가 뜬다고 하는데요. 애플이 지정한 공식 서비스업체 외에서는 도움을 받을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죠.
슈레스타 씨는 전자 기기를 만드는 대기업들이 민간 수리 시장을 제한하고 있고 또 소비자들이 고장 난 걸 고치기보다는 새로운 걸 사도록 유도한다고 했습니다.
[녹취: 아시시 슈레스타]
이런 추세가 앞으로 계속된다면 앞으로 5년 안에 영세 수리점들은 아마 다 문을 닫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각종 가전제품이나 차량도 수리가 어려워지기는 마찬가지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소비자들의 고쳐 쓸 권리를 보장하는 ‘수리권 보장 운동(Right to Repair)’입니다. 운동 측에선 대기업들의 이런 행태가 영세업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산업 쓰레기가 늘어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지적하는데요. 반면, 대기업들은 자사 고객들의 안전과 정보 보호 차원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녹취: 카일 윈스]
각종 기기와 관련한 수리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는 ‘아이픽스잇(iFixit)’의 공동 창업자 카일 윈스 씨는 회사들이 물건을 세상에 내놓았고, 소비자가 그것을 샀다면 소비자 스스로 기기들을 고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최근 들어 기업들이 물건 수리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지 않다 보니, 수리에 관한 사이트를 직접 운영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윈스 씨는 수리권 보장 운동을 이끌고 있는데요.
[녹취: 카일 윈스]
이 운동은 자동차 관련법에 근거해 나왔다고 했습니다. 최근 매사추세츠주에서는 지역 영세 수리 업체들도 자동차 제조업체가 운영하는 공식 정비소가 가진 정보에 똑같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자동차 수리 권리법’이 통과했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러니까 만약 포드사의 자동차를 구매했다면 포드사의 정비소뿐 아니라 지역 영세 정비소에서도 또 같이 수리를 받을 수 있고, 선택은 소비자가 스스로 하게끔 한다는 겁니다.
최근 백악관에서도 고쳐 쓸 권리 운동에 힘을 실어주는 조처가 나왔는데요.
[녹취: 조 바이든 ]
조 바이든 대통령은 건전한 경쟁이 없다면, 대기업들이 원하는 대로 다 요구하고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하며 소비자의 수리권 보장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대기업만 제품을 수리할 수 있게 하지 말고 소비자에게 알아서 수리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취지인데요. 주 정부 차원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현장음: 뉴욕주 의회]
미국 50개 주 가운데 절반 이상이 수리권 보장을 위한 법을 추진 중이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대기업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의 이런 조처가 앞으로 수리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윈스 씨는 그래도 희망이 생겼다고 했는데요.
[녹취: 카일 윈스]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이나 관련 법들이 제품 수명 연장에 있어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 것으로 본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이 예전처럼 일상생활에서 쓰는 물건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연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뉴욕의 새로운 명소 ‘리틀 아일랜드’”
사람도 많고 볼 것도 많은 미 동부의 대도시 뉴욕에 새로운 명물이 생겼습니다. 지난 5월, 뉴욕 맨해튼 허드슨강에 인공섬 공원인 ‘리틀 아일랜드’가 문을 연 건데요. 공원 조성비 총 2억 6천만 달러 가운데 뉴욕의 사업가 배리 딜러 씨와 부인 다이앤 본펄스텐버그 씨가 2억 4천억 달러를 투자해 만든 인공섬은 뉴욕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있습니다.
전체 면적은 1만㎡이지만 실제론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데요. 총 132개의 대형 콘크리트 기둥이 마치 튤립 모양으로 서 있고요. 기둥의 높이도 수면에서 4m~19m 떠 있다 보니 마치 강변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죠.
영국의 디자이너인 토마스 해더윅이 설계한 이 공원은 각종 식물로 가득 차 있고요. 대형 야외 공연장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녹취: 줄리아 크라우스]
리틀 아일랜드의 프로듀서인 줄리아 크라우스 씨는 올여름, 뮤지컬의 산실인 브로드웨이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문을 닫은 브로드웨이가 오는 가을에 다시 문을 열기 전에, 이곳 리틀 아일랜드 야외 공연장에서 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주옥같은 노래들을 들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리틀 아일랜드의 조경은 뉴욕을 대표하는 유명회사 MNLA가 맡았는데요. 튤립 모양의 대형 기둥 위에서 35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요. 60종 이상의 관목과 270가지의 꽃들이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거기다 너른 잔디밭까지 펼쳐져 있으니 가족들이 산책이나 소풍을 하기에 그만인 거죠.
[녹취: 마리아]
공원을 찾은 마리아 씨는 워낙 식물을 좋아하다 보니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꽃이 있어 좋다고 했고요.
[녹취: 산티아고]
가족들과 함께 공원을 찾았다는 산티아고 군은 식물도 많지만, 다들 정말 친절하고,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있어 좋다고 했습니다.
공원의 산책로를 다 연결하면 540m에 달하는데요. 가장 높은 기둥이 받치고 있는 언덕 꼭대기에 오르면 뉴욕의 명물인 ‘자유의 여신상’은 물론 인근 저지시티와 맨해튼 남쪽의 정경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리틀 아일랜드가 자리 잡은 곳은 Pier 55, 즉 55번 부두가 있던 자리입니다. 지난 1912년, 영국에서 출발해 뉴욕으로 향하던 초호화 여객선 ‘타이태닉’ 호가 정박할 곳이 바로 55번 부두였는데요. 타이태닉이 침몰하면서 구조선에 타고 있던 생존자들이 도착했다고 하네요.
이런 역사적 비극을 뒤로하고, 리틀 아일랜드는 뉴욕 시민들에게 쉼과 여유를 선물하고 하고 있는데요.
[녹취: 방문객들]
방문객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좋다며 감탄했습니다.
맨해튼과 리틀 아일랜드는 2개의 도보로 연결돼 있는데요. 매일 아침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누구나 무료로 방문할 수 있다고 합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