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을 위한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약 석 달 만에 다시 열어 국가비상방역 강화를 강조했습니다. 대남공세 보류를 선언한 뒤 내치에 집중하면서 대외 문제에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제7기 제14차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3일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회의에서 신종 코로나 비상방역 장기화로 방심과 방관, 만성화 현상이 만연하고 방역 규율 위반도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섣부른 방역 조치의 완화는 상상할 수도, 만회할 수도 없는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오늘의 방역 형세가 좋다고 자만도취해 긴장성을 늦추지 말라”며 “전염병 유인 위험성이 사라질 때까지 비상방역 사업을 더 강화해야 한다” 주문했습니다.
북한은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가 본격 발병한 직후인 지난 1월24일부터 국가비상방역체계를 가동했고 김 위원장은 신종 코로나의 세계적 대유행 우려가 제기되던 2월 28일과 최고인민회의를 앞둔 4월 11일에도 당 정치국 회의를 열고 관련 대응책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정치국 확대회의는 또 김 위원장이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인 10월 10일까지 완공을 지시한 평양종합병원 건설 가속화와 의료봉사 보장 대책 문제도 논의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평양종합병원 건설이 일정대로 추진되는 데 대해 만족하면서 시공과 자재 보장, 운영준비 부문 등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이나 한국과의 대외관계와 관련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고 다만 회의에서 “당 대외사업과 관련한 중요 문제들과 기타 사항들에 대한 연구도 진행됐다”고만 전했습니다.
관측통들은 김 위원장이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순수민생을 안건으로 정치국 회의를 잇따라 열어 대북 제재와 신종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가중된 경제난과 민생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앞서 지난달 7일에도 정치국 회의를 열고 농사에 필요한 비료와 생필품 생산에 필수인 화학공업 발전과 평양시민의 생활 개선을 핵심 안건으로 다뤘습니다.
한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 사태로 위축된 북-중 무역 규모가 5월 한 달 간 전월 대비 163% 증가하는 등 연초보다 조금씩 회복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혜실 통일부 부대변인입니다.
[녹취: 조혜실 부대변인] “코로나19에 따른 국경차단 조치의 영향으로 무역 규모가 전년 대비 큰 폭의 감소세는 지속되고 있지만 연초에 비해서 조금씩 상승하면서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이게 본격적인 무역 활성화로 이어질지 여부에 대해선 계속 주시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은 김 위원장의 이번 회의 주재가 북한 내부에 전염병 확산 등의 새로운 상황이 발생해서 이뤄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동 사무총장은 북한이 대외적으로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고 밝히면서 이를 김 위원장의 업적으로 선전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거듭 국가비상방역을 강조한 것도 유능한 지도자상을 선전하고 주민들로 하여금 자력갱생 노선에 매진할 것을 독려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동용승 사무총장] “김정은의 대단한 업적으로 지금 선전이 되고 있어요. 코로나 방역한 것을. 이게 뭐냐 하면 가장 먼저 (국경을) 전부 다 닫고 선제 대응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것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된다는 게 이제 정치적 측면에서 중요한 거죠.”
이번 회의에서 대외관계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 결과가 공개되지 않아 김 위원장이 당분간 대외 문제 보다는 내치에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북한은 앞서 지난달 23일 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에서 군 총참모부의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한 이후 한국에 대한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최근 미-북 대화 재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북한도 내부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구체적인 반응이 나올 시점은 아니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북-미 정상회담 이것도 미국이 얘기한 게 아니잖아요. 북-미 간에 직접 하겠다고 했는데 남쪽이 제안한 걸 가지고 자기들 입장 내기가 어렵잖아요. 한국 제안에 대한 입장 표명식이 아니라 미국에서 자기들이 뭔가 한다면 북한이 반응을 하겠죠. 그런데 그것도 없는 상황에서 대미 입장을 밝히긴 어려울 거란 말이죠.”
한편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의 회의석상 사진을 실었는데 김 위원장의 사진이 공개된 것은 지난달 7일 열린 당 중앙위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 이후 25일 만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 매체가 김 위원장의 사진과 함께 이번 회의가 당 중앙위 본부청사라고 명시한 것은 김 위원장의 건재함를 과시하고 일각에서 제기돼 온 ‘평양 부재설’을 불식시키려는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