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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청년·전문가들 "북한 인간개조론 불가능, 시장경제 인정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9일 평양에서 열린 6차 당 세포비서 대회에서 연설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9일 평양에서 열린 6차 당 세포비서 대회에서 연설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청년들에 대해 `인간개조론'과 `반사회주의 척결'을 강조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정권 안정에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전문가들과 장마당 세대 출신 탈북 청년들이 주장했습니다. 외부 정보와 시장경제에 익숙한 청년들을 구식 사상교양으로 개조하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란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 장마당 세대로 2019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장혁 씨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잇달아 청년들에 대한 ‘인간개조론’, ‘반사회주의’ 척결을 강조하는 것에 착잡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많은 청년들은 집단주의와 헌신, 국가에 대한 희생과는 거리가 멀고, 국가에 기생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옛날 방식으로 장마당 세대를 개조하겠다는 최고지도자의 발상 자체가 너무 무모해 보인다는 겁니다.

[녹취: 장혁 씨] “저는 경제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사람들의 마인드를 못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급격히 변하고 있는데, 올드한 방식의 사상교양을 계속한다고 사람들이 이기심을 다 버리고 맹종 복종을 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관리들 질책에서는 좀 효과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실제 대중적 사상 변화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개최한 6차 세포비서 대회에서 청년동맹사업에 대한 “인간개조론”, “교양개조” 등 개조를 9번이나 언급하며, 당이 “청년들의 옷차림과 머리 단장, 언행을 늘 교양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김정은 위원장] “청년교양 문제를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사활이 걸린 문제,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운명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김 위원장은 또 최근 열린 사회주의 애국청년동맹 대회에서도 반사회주의와 비사회주의 행위 등 “불순의 독초를 단호히 뿌리 뽑아야 하다”며 청년들의 ‘교양개조’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과 북한 장마당 세대 출신 탈북 청년들은 중앙의 통제에서 계속 멀어지는 청년들이 김정은의 안정적 정권 유지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합니다.

역시 북한 장마당 세대로 북한 무역업체 부대표를 지낸 이현승 씨입니다.

[녹취: 이현승 씨] “외부 정보가 많이 들어갔고, 북한 체제에서 김정은은 자라나는 세대가 자기를 뒷받침해줘야 앞으로 권력을 유지하는데 그런 세대가 지금은 김정은에 대한 신뢰나 충성도 이런 것이 매우 낮단 말입니다. 장마당 세대도 그렇고 엘리트 그룹도. 그거보다는 돈을 많이 벌고 해외에 나와 자유롭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 서울대학교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교수는 최근 언론(중앙일보) 칼럼에서 옛 소련과 중국이 각각 80년 전과 40년 전에 포기한 사회주의 인간개조론을 북한 지도부가 새삼 강조하는 것은 “제재와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벼랑으로 내몰리자 주민의 불만이 정권으로 향하지 않도록 차단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그러나 다수 주민은 사상교육으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것을 싫어해 뇌물을 주며 빠지는 등 주민과 관료가 부패를 고리로 유착돼 김정은의 통제력이 더욱 약화된다며, 사회주의 인간개조론은 “무리수, 자충수”로 “상황을 악화시킬 따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청년들에 대해 인간관계에서부터 말씨와 외모까지 사실상 개인의 모든 것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북한 전체의 커다란 국가적 모순과 부딪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북한 수재들의 등용문인 평양리과대학 출신으로 북한에서 영상 촬영 전문업체를 운영하며 김정은 정권을 10년 동안 체험한 장혁 씨는 국가 대부분의 경제가 비합법적, 비사회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을 최고지도자가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혁 씨] “김정은이 원하는 대로 일을 하는 사람은 없어요. 위에서 그런 수단이 나오면 그것을 자기의 생계유지에 이용하려는 사람들뿐이죠. 이유는 주민들에게 뭔가 먹고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일을 견실하게 하라면 말이 됩니다. 근데 사람들은 불법을 안 저지르고는 살 방법이 없어요. 경제 활동을 하는 게 합법적인 게 없어요. 보통 백성들이 살아서 경제 활동하며 먹고 쓰고 산다는 것 자체가 범죄죠. 월급이 안 되는데 어떻게 먹고 삽니까? 관리들도 주는 게 없는데 먹고 산다? 그것도 범죄인 거예요. 비리가 없을 수 없는 겁니다.”

이런 지적은 좀 더 객관적인 지표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2019~2020년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 10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2020 북한 사회 변동과 주민의식’), 북한에 있을 때 자본주의를 지지한 응답은 67.9%, 장사 활동 경험자 사이에서는 78%가 자본주의를 더 선호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를 공동 진행한 한국은행 북한경제연구실 이종민 부연구위원은 관련 토론회에서 대다수 북한 주민이 사실상 사회주의를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종민 위원] “장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소비품 판매, 기업 설립, 고용, 은행 대출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각각의 질문에 대해 계속해서 80% 이상의 높은 응답 비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매우 적극적으로 경제 활동의 자유에 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자본주의 도입, 경제관리 방법 개선 등 개혁정책을 얘기하거나 외국과의 경협 확대 등 개방정책을 북한 경제가 발전하기 위한 조건으로 꼽고 있습니다.”

또 북한 경제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는 개혁개방이 없어서 23.9%, 최고지도자 김정은 때문에 16.5%, 국가정책 실패 8.4% 등 사회주의 경제에 대한 부정적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북한 해외업체 지배인 출신으로 미국에 망명한 허강일 씨는 지금은 “북한판 문화대혁명 상황과 같다”며,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하면 인생을 망친다는 것을 청년들이 가장 잘 알아 불만도 가장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장마당 세대로 미국의 한 대학원에서 국제 갈등분석해결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성주 씨는 ‘인간개조론’이란 표현 자체가 “김정은이 당면한 위급성과 북한이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국임을 동시에 증명해 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성주 씨] “인간을 개조한다? 이것은 21세기에 가장 심각한 인권 침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개인은 자기의 꿈이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자기 생각이 있는데, 그것을 사회주의라는 그들만의 생각과 틀 속에 인간을 맞춰버린다는 거거든요. 그것은 개인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겠다는 겁니다. 수령독재를 위해 개인의 인권은 없어도 된다! 그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전문가인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 교수는 북한 청년들의 상황이 청년동맹의 원조인 옛 소련의 ‘콤소몰’과 정치에 무관심했던 소련 청년들과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란코프 교수] “콤소몰 조직의 젊은이들은 공식적인 정치에 관심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소련 젊은이들은) 외부 정보와 생활에 대해 배웠고, 공산당과 콤소몰의 주장과 달리 갈수록 소련과 자본주의 선진국 간 격차는 넓어지고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옛 소련 청년들이 공산당의 구식 선전과 교육을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처럼 북한 청년들도 반복되는 북한 지도부의 시대착오적이고 고리타분한 선전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겁니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 청년들은 대부분 한국과 중국이 훨씬 잘 산다는 것을 알지만, “북한 지도부는 이런 현실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보다 부정하고 있다”며, 특히 “노년의 고위 관리들이 청년들의 문화나 소통 방식에 관심조차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평양의 한 여대생은 지난 2008년 북한을 취재한 미국 ‘ABC’ 방송에 세계 젊은이들과 이메일로 소통할 날을 기대한다고 말했지만, 김계관 외무성 고문은 이 방송에 “인터넷이 젊은이들을 부패시킬 수 있어 위험하다”며 부정적 견해를 보였었습니다.

옛 공산 루마니아의 청년동맹인 ‘파이오니어스’ 출신인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북한 청년들의 현 상황은 지도자와 사회주의를 겉으로 찬양하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믿지 않았던 옛 파이오니어스와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지금 상황은 1980년대 초반 공산 동유럽을 연상하게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So, obviously, the situation in North Korea today reminds me of the early 1980s in Eastern Europe. The regime is losing the struggle over legitimacy, people are consuming information from the outside world.”

당시 동유럽 공산 정권들은 합법성을 둘러싼 투쟁에서 자리를 잃고 국민은 외부 세계로부터의 정보 소비를 통해 정권의 정통성과 권력에 도전하는 양상이 나타났는데, 북한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과 장마당 세대 탈북민들은 이런 배경 때문에 반사회주의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압박이 단기적으로는 일부 성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정권에 더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주도의 `흡수통일' 우려 때문에 개혁개방은 당장 힘들 수 있지만, 최소한 국내 경제를 작은 범위의 시장경제로 전환해 현 상황을 인정하고 합법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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