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11월3일 치러지는 미국 선거에 5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연방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해 화제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밀착취재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한인 영화감독이 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한인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디아스포라’는 분산, 퍼트림을 뜻하는 말로 특정 민족이 고국을 떠나 이주하는 현상을 의미하며, 해외 한인들을 지칭할 때도 등장합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지난해 11월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가 공개되면서 주요 화두로 떠올랐던 단어이기도 합니다.
영화 ‘헤로니모(Geronimo:2019). 이 영화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쿠바 혁명을 일으켰을 당시 참여했던 한인 디아스포라 ‘헤로니모’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기록영화입니다.
쿠바의 한인 1세대로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자금을 보냈던 독립운동가 임천택 씨의 아들 헤로니모 임, 한국명 임은조 씨가 쿠바의 정치인으로 은퇴한 후 1995년 한국에 입국해 한인 정체성 복구운동을 벌였던 배경과 의미를 재조명했습니다.
당시 영화는 800만에 이르는 한인 디아스포라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한국 주류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영화에 직접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나간 한인 2세 전후석 감독에 대한 관심도 높았습니다.
영어 이름 조셉 전, 전후석 감독은 현재 미 동부 뉴욕에 거주하는 30대 청년으로, 한국 정부 산하 무역진흥기구인 코트라 뉴욕지부에서 변호사로 일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포함한 한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갔던 그는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다시 부모와 함께 미국에 살면서 법학도가 됐습니다.
대학 졸업 후 중동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 등지에서 인턴쉽 등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현지 한인들, 특히 한인 후손들을 만났던 전후석 감독.
정체성에 대한 갈등과 번민이 깊었던 자신과 한인 후손들에 대한 성찰, 쿠바 여행을 계기로 제작한 영화 `헤로니모’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존재를 발견하고 알리는 의미있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전 감독이 미주 한인사회에 시선을 옮기게 됐습니다. 전후석 감독입니다.
[녹취: 전후석] “대선과 팬데믹, 인종차별 문제, 한반도 평화, 북-미 관계 등이 여러 개가 겹치면서.. 그러던 중 존 볼튼 책을 읽으면서 한 나라의 운명이 이런 관료 혹은 미국 정치인들 한반도와 아무런 개인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 몇 명이 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개탄스러웠어요.”
볼튼 전 백악관 국가안보좌관의 회고록을 읽고 미국 내 한인들의 정치참여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됐다는 전 감독은 미주 한인들의 미 연방 하원 출마 소식을 알게됐습니다.
오는 11월 3일 미국의 역대 59번째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미국인들은 상원과 하원, 주지사 선거도 함께 치르는데 이번 선거에는 모두 5 명의 한인이 연방 하원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앤디 김(민주, 뉴저지3지구), 영 김(캘리포니아 39지구),미셸 박 스틸(캘 48지구),메릴린 스트릭랜드(워싱턴 10지구), 데이비드 김(캘 34지구)후보 입니다.
전 감독은 8월 말부터 지금까지 각 후보들과 심층인터뷰와 선거운동을 담는 밀착취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비대면 방식으로 제한적인 선거운동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보들의 면면을 살피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은 ‘The Chosen-선택받은 자’로 후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영화의 목적은 후보들의 활동을 선전하거나 이번 선거에 영향을 주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을 전 감독은 분명히 합니다.
정치인이자 한인 디아스포라로서의 그들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영화 개봉 시기를 내년 초여름으로 정한 것도 선거에서의 당락과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녹취: 전후석] ”각자 배경이 다르고 정치적 견해가 다름이 명백히 드러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공통분모를 찾아내려는 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화합해야 하는 정당성을 찾아보고 싶어요. 그러나 이것은 비단 미국에 있는 교민들뿐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똑같이 답습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좌우간의 갈등 때문에 본질을 놓치는…”
서로 주장하는 정치적 이념과 공약은 달라도 디아스포라로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양분된 한반도 이슈를 풀어나갈 사람이 한인 디아스포라일 수 있음을 증명한다는 설명입니다.
한반도뿐 아니라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가 드러나는 후보들이 한반도 축소판이라고 표현하는 전 감독은 메릴 스트릭랜드 후보를 사례로 언급합니다.
민주당 소속인 스트릭랜드 후보는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미국인 아버지를 둔 57세 여성으로, 한국전쟁 종전을 공약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녹취: 전후석]”그 분이 혼혈 한국인이잖아요. 코리안 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 그분은 존재 자체가 한반도 전쟁의 분단의 결과에요. 어머니는 밀리터리 신부 중 한 명이었는데, 그분들의 혼혈 자녀들은 한인 교회에서도 편견에 사로잡혀 차별을 당했고, 그들의 정체성을 보면서, 자신의 자녀를 떳떳하게 키우려는.. 디아스포라의 내러티브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5명의 후보들 가운데 최연소인 데이비드 김 후보가 사실상 영화의 중점적인 역할을 할 거라고 말합니다.
데이비드 김 후보는 미국에서 태어난 36세 한인 2세 변호사로 김창준 전 의원에 이어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 한인 연방 하원의원 당선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보수 기독교 목사 아버지를 뒀지만 동성결혼과 낙태를 지지하는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고 있습니다.
전 감독은 김 후보의 개인사와 가족 간 갈등은 미국사회나 한반도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녹취: 전후석] “데이비드 후보가 이런 정체성에 대해 첨예하게 스스로와 씨름하는 후보거든요. 그래서 부모와 갖고 있는 이념적 갈등, 세대적 갈등, 문화적, 사회적 갈등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질 것 같아요. 그 친구를 통해 뜨거운 감자, 주제들이 많이 오픈됩니다. “
지난 선거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던 영 김 후보와 미셸 박 스틸 후보에 대해서도 감독으로서 개인적인 가치 판단 없이 각자 후보들이 믿는 것을 그대로 표현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전 감독은 또 1992년 LA폭동사건을 돌아보며 당시 한인 선출직 의원이 없던 당시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며 현재 상황과 비교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당시 상황이 재현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한인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취지입니다.
미주 한인으로서 두 번째 연방하원이 된 앤디 김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는데, 현직 의원의 재도전인 만큼 전 감독은 김 의원의 인터뷰를 선거 후로 미뤘습니다.
영화 `선택받은 자’는 제작비 15만 달러 가운데 8만 달러를 한인들의 풀뿌리 운동으로 마련했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인 킥스타터를 통해 한 달만에 8만 달러를 모은 겁니다. 이런 행보 역시 한인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영화의 주제와 의미를 부각시킵니다.
쿠바 한인 정치인이었던 인물의 일대기를 소개하며 한인 디아스포라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던 전후석 감독의 차기작 ‘선택받은 자.’
전후석 감독은 디아스포라의 정의를 이렇게 내립니다.
[녹취: 전후석] ”헤로니모에서 유대인 랍비가 했던 말로 “디아스포라의 본질은 고통이지만, 고통의 결과는 혁신이다”라는 말을 했어요, 고통으로 시작한 사람들이지만, 본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통,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 차별과 침묵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 자식들을 낳고 그들과 원하던 소통이 힘들 수밖에 없었던 고통, 많은 고통이 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세대가 된 자신은 누구일까 자문하면서 그들만이 발견하는 새로운 정체성, 본국의 문화와 현지의 문화가 융합되어서 혁신적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다는 정체성이 디아스포라의 속성이거든요..”
전후석 감독은 ‘선택받은 자’에 대해, 공존이란 무엇이며 한인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답하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