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 당국이 요즘 ‘사회주의’와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를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사회가 흔들리고 주민들이 살기 힘들다는 의미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사회주의’와 ‘멸사복무’를 강조하며 사회기강을 다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지난 9일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를 강조하는 글을 여러 편 실은 데 이어 13일과 15일 연이어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강조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모든 당 조직은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 기풍을 철저히 확립하자…”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이렇게 ‘사회주의’와 ‘멸사복무’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난으로 인해 흉흉해진 민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한국 동아대학교 강동완 교수입니다.
[녹취: 강동완 교수] ”며칠 전 노동신문을 보면 인민이 하늘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북한 정권이나 당이 인민의 여론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고, 북한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불만이 굉장히 많고..”
특히 고강도 대북 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1월 말 북-중 국경마저 봉쇄되면서 장마당 상인은 물론 노동당 간부들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당 간부들은 장마당 상인 또는 돈주들과 ‘먹이사슬’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 간부의 월급은 5천-1만원에 불과하며, 이 돈으로는 장마당에서 쌀을 1-2kg 밖에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당 간부와 보위부원, 검찰, 안전원, 군 장교들은 생활을 위해서 상인과 돈주들에게 뇌물이나 뒷돈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가 4년째 계속되면서 외화벌이 돈 줄이 끊겼다는 겁니다. 특히 1월 말 북-중 국경봉쇄로 중국에서 물자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장마당 상인과 돈주들은 장사를 할 수 없게 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렇듯 상인들과 돈주들 형편이 나빠지자 자연 당 간부들도 쪼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함경북도 함흥에 살다가 2001년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민 박광일 씨입니다.
[녹취: 박광일] “간부들도 정부 공급이 없고, 공급은 극소수이고, 지역 주민들에게 뇌물을 받아서 살았는데, 장사 자체가 안 되니까 주민들에게 받을 수도 없고, 어려운 상황이죠.”
북한 내부에 부정부패와 주민들을 못살게 구는 ‘세도주의’가 심각하다는 것은 2월 말 열린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확대회의를 열고 노동당 2인자인 이만건 조직지도부장과 박태덕 당 부위원장을 해임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당 중앙위원회는 이만건, 박태덕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현직에서 해임했습니다.”
이만건은 김일성 고급당학교에서 발생한 부정부패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군부도 기강해이가 심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미 ‘월스트리트저널’ (WSJ)신문은 휴전선 북측 비무장지대에 근무하다가 2017년 12월 남한으로 넘어 온 노철민 씨의 경험담을 소개했습니다.
신문에 따르면 북한군 장교들은 부대에 공급된 쌀을 인근 장마당에 내다 팔고 병사들에게는 가격이 싼 옥수수 죽을 먹이고 있습니다. 또 고위층 부모를 둔 병사들은 뇌물용 현금을 가지고 다닙니다.
한 달에 150달러 정도의 돈을 상관에게 주면 겨울철 보초 근무를 빼주고 별도의 식량과 방한복을 받는 것은 물론 가족과 전화통화도 할 수 있습니다.
강동완 교수는 군 부대에서도 기강해이가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강동완 교수] ”북한 내부에서 부모들이 자식을 군대에 안 보내려고 뇌물을 쓰고 편법을 쓰고, 그만큼 북한체제 결속이나 통제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북한에서 ‘혁명의 수도’로 불리는 평양의 시민들도 요즘 갖가지 생활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6월 7일 당 정치국 회의에서 ‘평양시민 생활보장 문제’를 다뤘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평양시민들의 주택 개보수와 수돗물 문제, 채소(남새) 공급 문제가 논의됐습니다.
탈북민 박광일 씨는 평양 중심가에 새로 조성된 4개의 신시가지를 빼고, 일반 주민들은 심각한 생활난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광일] “평양은 중심구역 4개 빼고는 다 어렵다고 봐야 해요. 중구역, 평천구역 보통강구역 빼고 나머지는 삶이 다 어렵다고 보면 돼요.”
이밖에도 북한 당국은 사회 전반에 퍼진 한국 드라마와 영화, 노래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본격 시작된 한류문화는 북한 장마당 세대를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폭넓게 퍼졌습니다.
함경북도 라진에 살다가 2014년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민 윤설미 씨가 유튜브에서 자신이 북한에 있을 때 본 한국 드라마를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녹취: 운설미] ”저는 중학교 때부터 대한민국 드라마를 봤는데, 처음으로 본 것은 ‘가을동화’였습니다. ‘가을동화’ ‘천국의 계단’,’장군의 아들’, ‘올인’, 1990년대 후반에 유명했던 드라마인데...”
과거에는 카세트 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한국 드라마와 노래가 북한에 유입됐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동식메모리 저장장치(USB)와 마이크로SD카드, MP5, 노트텔에 담겨 한류가 북한사회에 널리, 깊숙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류 침투에 대한 북한 당국의 대응은 구태의연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노동신문’을 통해 ‘사회주의 생활양식’이 최고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검열과 단속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때때로 보위성과 검찰, 지도원 등으로 구성된 ‘109 상무조’를 꾸려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검열, 단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단속과 검열이 별 효과가 없다고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다시 박광일 씨입니다.
[녹취: 박광일] ”검열하고 단속하는 보위부원도 재미있어서 자신들도 보는데요, 단속은 명목상 그저 위에서 단속하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러서 비판하고 뇌물주면 풀어주고, 이제 한류는 보위부원들도 그렇게 심각하게 취급하는 시기는 지났어요. 단속이 안돼요.”
북한 수뇌부가 경제난으로 인한 민심이반 사태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