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지난해 6월 북한의 일방적 조치로 차단됐던 통신연락선을 오늘(27일) 오전부터 전격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동안 단절 상태에 있었던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북 협상 재개에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됩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청와대는 남북한이 27일 오전 10시부터 그동안 단절됐던 남북 간 통신연락선을 복원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긴급 브리핑에서 이 같은 결정이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친서 소통을 통해 이뤄졌다고 발표했습니다.
[녹취: 박수현 수석] “남북 양 정상은 지난 4월부터 여러 차례 친서를 교환하면서 남북 간 관계 회복 문제로 소통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단절되었던 통신연락선을 복원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남북한은 이에 따라 이날 오전 10시와 오후 4시 서해지구 군 통신선으로, 오전 11시께는 남북연락사무소 간 통화를 했습니다. 이와 함께 남북연락사무소와 동서해 군 통신선을 통해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 통화를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복원 조치는 북한이 지난해 6월 9일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하며 판문점 채널을 비롯한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선을 일방적으로 끊은 지 413일 만의 일입니다.
박수현 수석은 “남북 간 통신연락선 복원이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도 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통신 연락선 복원이 남북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여 남북 간 사전 조율에 따른 공동 발표임을 시사했습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남북 정상이 지난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3주년을 계기로 친서를 교환한 이후 최근까지 여러 차례 친서를 주고받았고 이를 통해 오랜 기간 단절된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조속한 관계 복원과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두 정상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남북한 모두 오래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속히 이를 극복해 나가자고 위로와 걱정을 나눴고, 각기 남과 북의 동포들에게 위로와 안부 인사를 전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정상 간 소통 내용으로 미뤄 향후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입니다.
이종주 한국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남북 간 소통이 다시는 중단되지 않고, 복원된 통신연락선을 통해 남북 간 다양한 현안을 논의하고 합의사항들을 실천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통신연락선 복원이 곧바로 남북대화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신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대변인은 지난해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책임 문제나 남북 비대면 회담 등이 의제가 될 가능성에 대해 “오늘 남북이 이룬 합의는 우선 연락통신선을 복원하는 데까지”라고 말했습니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이 지난해 통신연락선을 대남 사업을 대적 사업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하면서 단절시켰던 만큼 이번 복원은 북한의 대화로의 방향 전환의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통신선 복원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가 있잖아요, 이것 자체가. 북한이 말하는 대화와 대결 중에 대화의 방향으로 접근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으니까 미국에 대한 메시지도 되는 거죠. 그리고 남한이 미국에 대해서 보다 더 적극적인 설득 노력 기대도 같이 담은 게 아닌가 싶어요.”
북한의 이 같은 태세 전환은 경제난으로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서 한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이 커진 때문이라는 관측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통신연락선 복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당 전원회의를 통해 대결은 물론 대화에도 준비하라며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피력한 발언의 후속 조치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 입장에선 문재인 정부와의 협상의 기회를 놓치게 되면 내년 신정부 출범은 5월이거든요. 내년 중반 이후에나 한국 정부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북한 내부 분위기는 매우 절박합니다. 식량 문제도 지난해 수해에 이어 올해 가뭄까지 오고 있거든요. 엄밀히 보면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북한이 훨씬 급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를 놓치기 어려운 요인이 있고요.”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조치가 곧바로 대외정책의 기조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진 않고 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연락선 복원은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원치 않는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로 보인다며 그렇다고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미국의 우선양보 요구를 접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지금 북한의 행보라는 것이 대외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자력갱생을 하고 자력갱생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중국이나 한국과 관계 개선을 하면서 경제적 측면에서 어려움을 회피하고 그런 과정에서 계속해서 핵 능력을 강화해 나가는 게 결국 북한이 새롭게 택한 노선이 아닐까 싶어요.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북한의 이번 조치가 미-북 협상 재개를 위한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재신임하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미-중 경쟁 구도에서 한반도 문제를 협력사안으로 만들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것, 미-중 양국이, 이런 부분들이 결국 북한으로선 제3의 통로를 통해서 북-미 협상의 물꼬를 트려고 하는 것이고 그게 일본일 수도 있고 한국일 수도 있고 그런데 동경올림픽 기회가 상당히 힘들어진 상황에서 다시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기대해보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각에선 북한이 남북정상회담 같은 파격적인 행보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남북 정상 간 대면 접촉이나 화상 회담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화상 정상회담 의지를 밝힌 바 있고 기술적으로도 준비를 마친 상태로 알고 있다며,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2018년 작동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현하는 데 또다시 정상회담 카드를 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이 통신연락선 복원에 합의한 시점과 관련해선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 협력을 지향하는 한국의 현 정부와 집권여당에 유리한 상황을 제공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이 실질적으로 코로나 상황이 극복돼서 본격적인 대외정책을 할 수 있는 시점이 빨라야 내년 상반기, 한국 대선이랑 맞물려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쨌든 북한 입장에선 여당이 되는 게 중요하죠. 야당이 되면 셈법이 굉장히 복잡해지거든요. 그래서 정부여당에 도움을 주려면 일찌감치 지금 같은 일종의 평화공세를 해서 남북관계를 최소 수준이라도 복원시키는 게 여당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거거든요.”
다음달 실시 예정인 미-한 연합군사훈련에 영향을 주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번 합의가 8월 미-한 연합훈련 축소 또는 취소 검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통신선 복원과 연합훈련은 무관한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