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 항구적 평화를 위한 한반도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한 연합훈련의 본 훈련이 오늘(16일) 시작되면서 미-한 군 당국은 북한의 무력시위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15일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우리에게 분단은 성장과 번영의 가장 큰 걸림돌인 동시에 항구적 평화를 가로막는 강고한 장벽”이라며 “우리도 이 장벽을 걷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90년 동독과 서독이 통일을 이루며 보편주의, 다원주의,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독일 모델’을 만들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녹취: 문재인 대통령] “비록 통일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남북이 공존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통해 동북아시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한반도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공고하게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남과 북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공동 대응을 위해 출범한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를 거론하며 “동아시아 생명공동체의 일원인 북한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에서 종전 선언이나 평화협정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습니다.
또 남북 철도연결이나 이산가족 상봉 등 구체적인 남북 협력사업에 대해서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미-한 연합훈련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 2주만에 또 통화에 불응하는 등 남북관계가 엄중한 국면에 처해 있다는 상황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입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지금 북한 당국이 너무 과도하게 반응을 하고, 국내적 정서를 봤을 때 유화적 조치를 제안하는 것도 북한의 수용 가능성이 낮고 북한이 이런 식으로 안보 위기를 느끼게 하겠다고 하는데 이것을 제안하면 마치 북한에 굴복한다는 부정적 평가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제안을 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 전 차관은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의 공고한 제도화’를 강조한 데 대해선 2018년 판문점과 평양에서의 남북 정상선언의 한국 국회 비준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북한에게도 합의 사항의 철저한 이행을 우회적으로 촉구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지금은 어떤 구체적인 협력 제안도 북한을 거꾸로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습니다.
조 박사는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려는 현 국면을 불씨를 이어 진정시켜 대화의간다는 차원에서 경축사의 대북 메시지를 원론적 수준에서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의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 선택은 큰 틀에서 대화 복귀 국면으로 볼 수 있고요. 이미 한-미 정상회담이 있었고 남북정상 간 친서가 여러 차례 오고 갔기 때문에 지금 남-북-미 간에 상당한 정도로 정상간 의사소통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한-미 연합훈련을 명분 삼아서 북한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따라서 지금은 상황을 지켜보고 진정 국면으로 진입하는 게 중요한 순간이고요.”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 후반기 미-한 연합지휘소 훈련이 16일 시작됐습니다.
앞서 지난 10일에서 13일까지 치러진 사전연습 격인 ‘위기관리 참모훈련’에 이은 이번 본 훈련은 주말을 제외하고 26일까지 9일간 일정으로 진행됩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15일 “미-한 동맹은 신종 코로나 상황, 연합방위태세 유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 지원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올 후반기 연합지휘소 훈련을 16일부터 9일간 시행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입니다.
[녹취: 김준락 공보실장] “이번 훈련은 연례적으로 실시해온 방어적 성격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의 지휘소 훈련으로, 실병 기동훈련은 없으며 필수 인원만 참가하여 실시됩니다.”
이번 훈련은 같은 신종 코로나 상황에서 실시된 지난 3월 전반기 훈련 때보다 참가 병력 규모가 더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1부 방어와 2부 반격으로 구성된 기존 훈련 시나리오의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해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합참 공식 발표문은 신종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안보 위기’를 경고하며 미-한 연합훈련에 강한 적대감을 드러낸 상황에서 최소 인원 동원,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 지원 등을 공식 언급함으로써 북한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미-한 연합훈련이 지난 2018년 이후 실기동 훈련 없이 시뮬레이션 훈련으로 진행됐는데도 북한이 반발해왔다는 점에서 본 훈련 개시로 북한이 모종의 무력시위에 나설지 여부가 주목됩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앞서 지난 11일 담화에서 “연습의 규모가 어떠하든,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든 우리에 대한 선제타격을 골자로 하는 작전계획의 실행 준비를 보다 완비하기 위한 전쟁시연회, 핵전쟁 예비연습”이라고 비난한 바 있습니다.
박원곤 교수는 실기동 훈련과 미군 전략자산까지 전개됐던 과거엔 북한이 우발적 무력충돌을 우려해 연합훈련 본 훈련 기간 중엔 도발을 하지 않았지만 시뮬레이션 훈련만 하는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2018년 이후부터는 실시간 기동훈련도 없고 훈련 규모도 축소됐기 때문에 북한이 그런 우려를 전혀 안해요. 그런 측면으로 본다면 북한이 도발하겠다고 결심한다면 이전과는 달리 훈련기간과는 상관 없이 이뤄질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그렇게 판단할 수 있죠.”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이번에 최고 수뇌부의 뜻을 담아 연합훈련 비난에 나선 만큼 본 훈련이 끝난 뒤에라도 모종의 무력 시위는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북한은 지난 3월 상반기 연합훈련 기간 중 비난 담화를 발표하고, 훈련이 끝난 직후 순항미사일과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이스칸데르 개량형을 잇따라 발사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