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의 주택 건설 현장을 방문하면서 22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이 이 소식을 전하면서 권력서열과 관련해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는데요,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1일 “김정은 동지께서 보통강 강안 다락식(테라스식) 주택구 건설사업을 현지 지도했다”며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속에서도 건설자의 애국 충성심으로 천지개벽이 일어났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노동신문'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김 위원장의 최측근이자 핵심 실세인 조용원을 간부 가운데 두 번째로 호명했습니다.
이 매체는 “현지에서 정상학 동지, 조용원 동지, 리히용 동지를 비롯한 당 중앙위원회 간부들과 건설에 참가한 단위의 지휘관, 책임일군(간부)들이 맞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정상학 노동당 비서 겸 중앙검사위원장이 조용원 비서보다 먼저 불렸고, 리히용 중앙검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조 비서 뒤를 이었습니다.
지난 7월 28일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8주년을 맞아 김 위원장이 평양 조-중우의탑에 헌화할 때까지만 해도 간부들은 조용원, 리일환, 정상학 순서로 호명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순서가 바뀐 겁니다.
하지만 몇 시간 뒤에 나온 `조선중앙TV' 보도에서는 호명 순서가 다시 바뀌었습니다. 두 번째로 보도된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며 당 중앙위원회 조직비서인 조용원 동지가 동행했습니다. 정상학 동지, 리히용 동지를 비롯한…”
북한의 다른 매체들도 조용원 비서의 호명 순서를 슬쩍 정정했습니다. 인터넷에 게재된 `조선중앙방송'과 `노동신문' 그리고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조용원 비서의 호명 순서를 정상학 비서 뒤에 배치했다가 다시 앞으로 정정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북한 선전 매체가 기사 작성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I think it’s more likely mistake…”
그러나 한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노동신문'이 실수했을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박사] ”노동신문 기사는 상당히 면밀한 검토를 거쳐서 나오기 때문에 기자가 잘못 써서 그렇게 나오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 지도나 공개 행사는 `노동신문'의 ‘정치보도반’이라는 특정 기구가 전담합니다.
따라서 이 기구 소속 기자들이 현장에 파견돼 취재와 기사 작성을 한 다음 이중삼중의 검열을 거쳐 관영매체에 기사가 게재됩니다. 따라서 기자의 실수로 보기는 힘들다는 겁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지난 두 달 사이에 모종의 인사가 있었을 가능성입니다.
북한은 지난 6월 고위급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식량난과 코로나 방역 상황에서 간부들의 ‘무책임성’을 이유로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리병철을 해임하고 군 총참모장 박정천과 국방상인 김정관을 강등시켰습니다.
조용원은 당시 인사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약 3주 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하는 자리에서 호명 순서에 변화가 있자 그 사이 추가적인 인사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입니다.
[녹취: 정성장 박사] ”조직지도부 검열 기능이 지금 검사위원회가 갖고 있기 때문에 정상학이 정치국 상무위원회로 올라갔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북한의 2인자인 조용원 비서의 정치적 위상이 여전하다는 겁니다.
공개된 북한 TV의 현지 지도 장면에서는 조용원이 김정은 위원장과 똑같은 흰색 옷을 입고 바로 옆에서 뭔가를 설명하고 받아 적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켄 고스 국장은 북한 당국이 권력서열 순서를 불과 몇 시간 만에 신속하게 수정한 것은 그만큼 조용원의 위상이 견고하다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The fact that thy correct it so quickly…
북한 관측통들이 조용원의 호명 순서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북한정세를 주도하는 핵심 실세이기 때문입니다.
조용원은 지난 2014년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별로 주목 받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 지도를 가장 자주 수행하는 간부가 됐습니다. 조용원은 2017년 34회를 시작으로 2018년 51회, 2019년 34회, 2020년 12회 등 총 131회를 수행했습니다.
결국 조용원은 지난 1월 열린 제8차 노동당 대회를 계기로 북한의 2인자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조용원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위원회 비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직에 올라 북한의 핵심 실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조용원의 위상은 지난 2월 10일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도 확인됐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계획의 문제점들을 지적한 데 이어 조용원이 연단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김 위원장 앞에서 고위
간부들을 거침없이 비판했습니다. 당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당 중앙위원회 비서 조용원 동지는 주요 계획 지표들을 한심하게 설정한 데 책임이 있는 당 중앙위원회와 정부의 간부들을 신랄히 비판했습니다."
북한 최고지도자 면전에서 간부가 다른 간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 후 조용원은 북한판 ‘공안통치’의 주역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인사권과 검열권을 무기로 200만 노동당원들에 대한 통제와 처벌을 강화했습니다.
또 새로 신설하거나 강화한 중앙검사위원회, 규율조사부, 법무부는 물론 국가보위부, 사회안전성, 검찰소, 국가겸열성 등을 동원해 주민들의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를 단속, 처벌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조용원이 당분간 북한의 2인자 자리를 유지하면서 권력을 휘두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김 위원장을 수행하면서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는데다 인사를 비롯한 업무 면에서도 기대를 충족시켰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 조한범 박사] ”김정은 체제에서 조용원의 역할은 생각보다 크고, 위기 상황에서 공안통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고, 또 조용원만큼 실력과 경험을 가진 인물이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효용성이 크다.”
하지만 북한 수뇌부가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조용원을 희생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북한 내부를 오래 관찰해온 켄 고스 국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정책 실패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는데다 반대파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어 언젠가는 조용원이 실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If Cho Yong-won beginning to be despised by other powerful element within leadership…”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이후 몇몇 간부를 중용하다가 권력이 커진다 싶으면 숙청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장성택 숙청에 앞장선 김원홍 국가보위상은 한때 막강한 권력을 누렸지만 2017년 1일 전격 해임됐습니다.
또 당 조직지도부 출신으로 2인자 소리를 듣던 황병서 군 총치국장도 2017년 10월 처벌 받고 사라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조용원이 대북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그리고 경제난을 극복하고 현재의 위상을 지킬 수 있을지, 아니면 위기의 희생양이 될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