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친서를 교환하며 양국 관계 강화를 강조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기초로 한 국제연대를 통해 중국과 북한을 압박하는 움직임에 맞서 대미, 대남 정책 공조에 나서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중 갈등 속에서 양국 관계 강화를 강조한 구두친서를 주고받은 사실을 23일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한반도 정세와 국제관계 상황을 진지하게 연구, 분석한 데 기초해 국방력 강화와 남북 관계, 미-북 관계와 관련한 정책적 입장을 토의,결정한 것을 통보했다며 “적대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단결과 협력을 강화”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또 “중국이 적대세력들의 비방 중상과 압박 속에서도 사회주의를 굳건히 수호하면서 부유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괄목할 성과들을 이룩하고 있는데 대해 자기 일처럼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홍콩과 신장 인권 문제로 서방국가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을 두둔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중국 공산당 창건 100돌과 조-중 우호협조와 호상원조조약 체결 60돌을 맞아 양국 친선관계가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게 승화 발전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시 주석은 친서에서 국제정세와 지역정세가 심각하게 변하고 있다며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수호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해 새로운 적극적인 공헌을 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새로운 형세 하에서 양국 관계를 공고하게 발전시키고 양국의 사회주의 위업이 새 성과를 거두도록 추동하며 양국 인민들에게 보다 훌륭한 생활을 마련해 줄 용의가 있다”며 대북 경제 지원 의사를 밝혔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양국 최고지도자의 구두친서가 전달된 날짜와 구체적인 경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은 22일 베이징에서 리룡남 신임 중국 주재 북한대사를 접견하고 양국 정상의 구두친서를 주고받았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습니다.
이번 구두친서 교환은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기초로 한 국제 연대를 통해 중국과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조 바이든 새 미국 행정부의 외교정책 기조가 분명해지는 과정에서 나와 주목됩니다.
미국은 앞서 15∼18일 일본과 한국을 돌며 외교.국방 장관 간 ‘2+2 회의’를 열고 중국과 북한을 위협으로 규정하는 한편 미-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이어 18일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중국과의 고위급 회담에서 중국의 신장 위구르 문제와 홍콩, 타이완, 사이버 공격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대북 정책이 강경한 방향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북-중간 밀착이 강화되는 양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특히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대미 강경책을 준비하는 수순일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알래스카 담판 이후에 중국 입장에선 북한을 수용하고 지원할 필요성이 커진 거고요, 북한 입장에서도 내부를 다졌으니까 이제는 중국을 뒷배로 삼아서 미국에 대적하겠다는 그런 계획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김 위원장이 친서를 통해 국방력 강화와 작금의 미-북, 남북 관계에 대한 입장을 시 주석에 알린 데 대해선 북한이 향후 취할 수 있는, 도발을 포함한 대미 강경 조치에 대해 중국에 사전 양해를 구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북-중 지도자간 전격적인 친서 교환은 미-중 전략경쟁이나 미-북 협상의 앞날에 지금이 매우 중대한 시점이라는 데 공감한 때문이라며, 특히 북한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를 미국이 수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자신들의 대미정책에 대한 중국의 의중을 타진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흥규 소장] “전략적으로 결국은 협력을 해야 되고 사회주의 동지라는 표현을 대단히 강조해서 얘기한 겁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우리는 한편이니까 중국이 양해를 해라, 중국의 이익을 해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라는 일종의 의사 표시를 한 것이고요.”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시 주석이 북한의 국방력 강화 입장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없고 오히려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적극적인 공헌’ 용의를 밝힌 점에 비추어볼 때 중국은 미-북, 남북간 대결보다는 대화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습니다.
박원곤 교수는 시 주석이 지역 평화와 번영을 위해 새로운 공헌을 할 의지를 밝힌 것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미국에 보임으로써 미-중 전략경쟁의 카드로 이를 활용하려는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중국 입장에선 북한을 카드로 쓸 수 있고 한반도를 자신들이 일종의 통제를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미국한테 보여주는 거죠. 미국이 자신들의 협력 없이 한반도에서 여기서 한 발도 더 나갈 수 없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다른 분야에서도 중국을 때리지 말라는 것, 한반도와 북한을 일종의 카드와 자산으로 놓고 얘기하는 거죠.”
시 주석이 친서에서 대북 경제지원 의사를 우회적으로 밝힌 대목도 주목됩니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했고 이후 제재에 동참해왔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전병곤 박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국경 봉쇄 등 걸림돌은 있지만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중국을 겨냥한 미-한 안보협력이 강화될 경우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이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전병곤 박사]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중국이 참여하기 전에는 미온적이었고 어떻든간에 북한과의 경제 교류, 협력, 지원을 암암리에 했었는데 그런 상황이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원곤 교수는 미-중 갈등이 신냉전 수준으로까지 갈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어기고 정부 차원의 노골적인 대북 지원이나 경제 교류에 나서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