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의 북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대응 관련 발언을 망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국제 방역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취지였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한국 정부를 겨냥해 8일 발표한 담화를 보도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네 문장으로 이뤄진 짧은 담화에서 자신들의 방역 조치에 대한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의 최근 발언에 대해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며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속심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며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강 장관은 앞서 지난 5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초청으로 바레인에서 열린 마나마 대화 제1세션 ‘코로나 팬데믹 글로벌 거버넌스’에 참석해 한 연설에서 북한의 신종 코로나 대응에 대해 “북한이 한국의 지원 제안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며 “이 도전이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강 장관은 또 “북한이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믿기 어렵다”며 “모든 신호는 북한 정권이 신종 코로나를 통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조금 이상한 상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김여정의 대남 비난 담화는 지난 6월 17일 탈북민 단체의 전단 살포에 반발하며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약 6개월만에 나온 겁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김여정의 비난 담화에 대해 강 장관의 발언 취지는 북한의 국제적 방역 협력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신종 코로나 청정국임을 강조한 데 대해 한국 정부 당국자가 이를 부정하자 반감이 표출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입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코로나 청정국이라고 해서 대내적으로도 이야기 하고 있는데 거기에 정면으로 부정한 거잖아요, 국제무대에서. 그러니까 최고지도자의 업적이랄까 그걸 훼손했다 라는 그런 일종의 반감이지 않나 싶어요.”
북한은 올해 들어 김 위원장이 직접 신종 코로나 방역을 의제로 당 정치국 회의 등을 9차례 주재할 정도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방역에 안간힘을 써왔습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확진자가 없다고 대내외에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가 향후 조 바이든 미 차기 행정부와의 협상을 염두에 둔, 한국 정부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박사는 동맹국 의견을 중시하는 바이든 당선인의 성향을 감안할 때 북한이 미국에 원하는 바를 한국 정부가 왜곡해서 전달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성렬 박사] “지난 7월 10일 담화에서 보여줬던 부분들은 북한이 원하는 것은 지원이나 제재해제, 완화 이런 부분들이 아니라 안전보장이다 이런 얘기를 계속 전달하고 있었는데 한국 정부가 북한이 공식 부인하고 있는 민감한 코로나 문제를 있는 것으로 전제해서 필요성을 제기함으로써 자신들이 미국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한국 정부가 왜곡되게 전달한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 담화의 표현 수위나 ‘노동신문’ 등 대내 매체에 실리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이 교착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모종의 도발을 암시하는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관측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내부 상황이 다급한데다 바이든 새 행정부는 대남 도발을 대미 도발로 간주할 공산이 커 북한이 단기간 내 도발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그동안 김여정 제1부부장의 발언 수위로 볼 때 거친 언사는 좀 안 썼어요. 그렇게 보면 경고는 하되 그 수위는 조절했다, 그리고 이게 뭐 도발의 명분 쌓기라기 보다는 향후 남북관계에서 파국까지는 가지 않겠다는 내용을 동시에 담고 있다고 봐야 돼요.”
한편 이번 담화를 통해 김 제1부부장이 대남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는 게 다시 확인됐습니다.
한국 외교부 장관이 국제무대에서 한 발언에 외무상이나 외무성이 아닌 김 제1부부장이 직접 반응을 보인 때문입니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7월 미국을 상대로 담화를 내 연내 미-북 정상회담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를 수록한 DVD를 얻고 싶다는 입장을 피력해 대미 관계도 함께 맡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김 제1부부장의 역할이 대미와 대남 관계는 물론 국내 현안들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대남 대미협상의 컨트롤 타워 그 다음에 국내 통제까지도 컨트롤 타워가 김여정이라고 봐야 돼요. 왜냐하면 최근 첩보로 코로나 방역도, 반동사상문화배격법도 김여정이 주도하고 있다, 그 다음에 최근에 이뤄진 간부 처형이나 도매상 처형도 김여정이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거든요.”
앞서 한국 국가정보원도 지난달 국회 정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 제1부부장이 김 위원장의 후계자는 아니지만 외교와 안보 뿐 아니라 당 창건 행사의 총괄기획까지 국정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며 2인자라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