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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동서남북] 두 달 만에 재개된 미-북 '친서외교'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열렸다.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열렸다.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 달 만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정상 간 ‘친분과 외교는 별개’라며 선을 그었는데요. 북한의 의도와 향후 전망을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친서외교’가 두 달 만에 재개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백악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브리핑에서 북한을 도울 뜻을 밝혔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 대해 묻는 질문에 북한과 이란을 거론하며, 이 나라들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도울 것이라고 말한 겁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North Korea and Iran by the way and others we are open helping…”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는 지난 1월 8일 김정은 위원장의 생일을 맞아 보낸 축하 서신에 이어 올 들어 두 번째입니다.

앞서 이날 새벽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개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낸 사실을 확인하며 대미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미-북 관계를 개인적 친분에 기대서는 안 된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생각을 전제로 ‘두 나라 사이에 역학적이나 도덕적으로 평형이 유지되고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두 나라 관계와 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미-북 `친서외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담화를 냈다는 점입니다.

이 담화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자신 이름으로 발표한 두 번째 담화입니다. 앞서 김여정은 이달 초 한국 청와대를 거칠게 비난하는 첫 담화를 낸 데 이어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대한 담화를 낸 겁니다.
북한에서 그동안 대남 담화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대미 담화는 외무성이 주로 맡아왔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김여정이 잇달아 대남, 대미 담화를 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국의 문성묵 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박사] ”그동안 담화는 김계관, 최선희, 김영철 이런 사람이 냈는데, 김여정 이름으로 담화를 낸 것은 3월 들어 두 번째이고 미국에 대해 낸 것은 처음이죠.”

특히 이번 담화를 보면 ‘개인적인 생각’ 등 1인칭 화법을 쓴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북한의 통상적인 담화에서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북한 내부 권력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김여정이 대남과 대미 관계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This is more profound than that. There is a fundamental rewiring of the internal dynamics inside the North Korean leadership that is going on right now. And she is kind of at the center of a lot of this. ”

김여정 담화의 표현이나 톤이 지난번 청와대 비난 담화와 다른 점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지난 3일 청와대를 비난하는 담화를 보면 ‘저능아’ ’바보’ ‘강도’ ‘겁먹은 개’같은 저급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이번 담화에는 ‘개인적 친분’ ’따뜻한 인사’’충심으로 사의 표명’처럼 우호적인 표현이 나옵니다. 김여정을 내세워 친서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미국에 최대한 할 말을 하겠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김여정 담화를 북한이 새로운 미-북 채널을 열려는 신호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1년 간 외무성 채널로 미-북 관계를 열려고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김여정을 통해 미국과 의사 소통을 원할 수도 있다고,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CFR) 국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스콧 스나이더] ”I think the North Koreans are signaling that they want a different kind of channel.”

김여정 제1부부장이 내놓은 담화 자체는 새로운 내용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제재를 풀지 않으면 미국과의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크게 봐서 지난해 10월 북한이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낸 담화와 비슷합니다. 당시에도 북한은 ‘조-미 관계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형성된 친분’ 때문이라며 ‘모든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여정이 담화에서 미-북 대화가 재개되려면 ‘공정성과 균형’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힌 대목은 북한이 평소 해오던 ‘제재 해제’와 ‘계산법 변화’ 요구와 비슷한 맥락이라는 지적입니다. 다시 문성묵 통일센터장입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북한은 그동안 미국에 대해 강도적인 조치라고 얘기해왔거든요. CVID, `선 핵 포기’ 이런 것은 강도적이다,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 말은 젊잖게 했지만 북한의 기본입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올해 36살인 김여정은 최근 북한 정권의 명실상부한 실세로 자리잡은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김여정은 2014년부터 5년 간 노동당 선전선동부에 있으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의전 실무를 챙겨왔습니다.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때는 담배를 피우는 김 위원장 옆에 재떨이를 들고 서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김여정은 의전 업무에서 손을 떼고 초고속 승진을 했습니다. 10월에는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 된 데 이어 12월에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로부터 2개월 뒤, 북한 수뇌부는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노동당 2인자인 리만건 조직지도부장을 공개 해임했습니다.

관측통들은 이 해임을 ‘김여정 작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탈북민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일성고급당학교에서 비리가 발생하자 김여정이 이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직보해 리만건을 해임시켰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누가 리만건을 날리는 것을 연출할 수 있겠냐 하는 것인데, 김정은 빼고 김여정 밖에 없기 때문에 김여정이 모든 연출 총괄을 한 것으로 저는 봅니다."

전문가들은 향후 미-북 관계와 관련 북한에 크게 2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지금처럼 교착 상태를 유지하며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까지 가는 겁니다.

문제는 11월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지가 불투명하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경우 북한은 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새로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3년 간 쌓아놓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경제난이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4년째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 당국은 1월 말 북-중 국경을 봉쇄했습니다.

그 결과 북한의 수출은 크게 줄어습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북한은 1-2월에 중국에 1천67만 달러를 수출하는데 그쳤습니다. 이는 전년도(3천809만 달러)와 비교해 약 72%나 줄어든 수치입니다.

게다가 외화벌이 수단인 관광도 전면 중단됐습니다. 국경 차단으로 400여개 장마당 물가가 올라 북한 내 민심이 흉흉하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문성묵 센터장은 미-북 관계가 재개되려면 내년 봄은 돼야 할텐데, 그 때까지 북한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코로나 상황이 변수인데요, 중국과의 교역 중단으로 쌀가격을 포함해 장마당이 흔들리고, 확진자가 있다는 얘기도 있고, 그럼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느냐, 견디기 어렵다면 김정은도 한국과 미국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는데..”

두 번째 선택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대화를 재개하는 겁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의 인도적 지원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 해군분석센터 켄 고스 국장은 북한이 절박한 상황에 처한다며 앞으로 몇 주, 몇 달 안에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스 국장] “I think this is something that’s going to be played out over the next few weeks or months. If North Korea does take the aid, it sug-gests that he really believes that he needs it to satisfy some sort of domestic consistent constituency.”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관련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8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북한 수뇌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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