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이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대미 메시지에 대해 미국의 의중을 탐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미국이 제재 해제 등 선제적인 양보를 해야 대화에 나서겠다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최근 잇따른 고위급 대미 메시지를 통해 미국의 의중을 탐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근 당 전원회의에서 미국에 대한 비난 없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를 “흥미로운 신호”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2일 미국의 “잘못된 기대”라고 일축하며, “더 큰 실망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북 대화 기대감에 선 긋기”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는 22일 VOA에 김여정의 발언은 미국에 대해 “우리가 대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 “I basically translated her remarks as ‘Not so fast Washington. Don’t think that we’re actually moving towards dialogue. You need to show us what it is that you’re prepared to do for us and give to us before we can have any sort of a dialogue.’”
미국이 북한에 무엇을 주고, 어떤 일을 할 준비가 돼 있는지 먼저 보여준 다음에 대화 가능성을 거론하라는 신호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미국이 대화를 위해 북한에 선제 양보를 할 의향이 있는지를 김여정이 탐색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앞서 ‘대화와 대결에 모두 준비됐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과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경우 대화를 향해 움직일 수 있지만 미국이 북한의 조건을 어떻게 들어 주느냐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1990년대 북한과 제네바 핵 협상과 미사일 협상 등에 나섰던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별보좌관도 22일 VOA에 김여정이 미-북 관여와 관련해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말라”고 경고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아인혼 전 특별보좌관] “What she may be saying is that if the Biden administration is interpreting her brother’s statement as indicating a readiness to engage, then maybe the Biden team will be disappointed. So she may be warning the Biden administration not to jump to the conclusion that the North is ready to engage.”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미국이 ‘북한이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실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아인혼 전 보좌관은 김여정의 발언이 모호한 부분도 있다며, 앞으로 상황 전개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발언을 과도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미 중앙정보국 CIA 출신 수 김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김정은과 김여정의 잇따른 대미 메시지가 “흥미롭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 연구원] “If the N Koreans were sincerely not looking for dialogue with the U.S., I think the better option for Kim the sister and Kim Jong Un would have been to just stay silent and just not make any comments.”
미국과의 대화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김정은과 김여정이 발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김 연구원은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기회를 여전히 탐색하고 있다며, “대결과 대화라는 개념을 만지작거리면서(toy) 워싱턴이 얼마나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일지 살피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협상력 제고하며 내부 문제 집중”
미 해군분석센터 CNA 켄 고스 적성국 분석국장은 “북한이 향후 협상의 방도(parameters)를 정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고스 국장] “They’re basically setting out the parameters of future negotiation. They’re making it clear to the U.S. that if you want to negotiate with N Korea you’re going to have to put something on the table first. Don’t expect us to make the first moves toward denuclearization.”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먼저 양보안을 제시해야 하며, 자신들이 먼저 비핵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성 김 대북특별대표가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발언들을 하고 있지만 북한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좋은 말과 분위기가 아닌 미국의 행동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 선임연구원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은 미국과의 다음 대화에서는 구체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성급한 제재 완화 의향이 없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협상 테이블에 돌아올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테리 선임연구원은 밝혔습니다.
[녹취: 테리 연구원] “Kim Jong Un’s tactic is since they’re not going to really meet people, and since the Biden administration does not indicate giving significant sanctions relief, why not spend this year focusing on domestic issues, focus on building pressure and then reach out for diplomacy…”
테리 연구원은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까지 겹친 상태에서 북한이 올해 말까지 내부 문제와 대미 압박 고조에 집중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면서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한 달여 앞둔 내년 2월 쯤에나 북한이 ‘매력공세’의 외교전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테리 연구원은 특히 오는 8월로 예정된 미-한 연합훈련을 전후해 북한이 무기 실험 등 도발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이 아닌 김여정 부부장이 대화 가능성을 일축한 것은 앞으로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최대한의 유연성’을 남겨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한편, 아인혼 전 특보는 “북한이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을 분석하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며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협상장에 나오는 결단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