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어제(3일) 청와대를 거칠게 비난한 담화를 발표한 데 대해 남북한 간 상호 존중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가 앞으로 남북관계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여상기 한국 통일부 대변인은 4일 정례 기자설명회에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3일 대남 비난 담화에 대해 남북 간 상호 존중을 촉구했습니다.
[녹취: 여상기 대변인] “정부는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남북이 상호 존중하며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여 대변인은 “김여정 제1부부장 담화와 관련해 따로 언급할 사항은 없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또 김 제1부부장의 위상 강화 여부에 대해선 “좀 더 시간을 갖고 분석할 문제”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원론적 반응은 3개월여 만에 재개된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와 김 제1부부장의 비난성 대남 담화 등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한층 더 경색될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상황관리에 주력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입니다.
김 제1부부장은 북한이 2일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하자 한국 청와대가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는 북한의 행동에 강한 우려를 나타낸 데 대해 자신의 명의로 담화를 내 청와대를 맹비난했습니다.
이번 담화는 2012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집권과 함께 등장한 김 제1부부장의 첫 공식 담화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김 제1부부장이 직접 나섬으로써 담화 내용이 김 위원장의 의중을 그대로 담고 있음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김 제1부부장이 2018년 초 평창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한국과의 대화 물꼬를 튼 메신저이자 대남 특사 역할을 하면서 한국 내에선 온건파로 인식돼 왔기 때문에 이번 비난 담화가 한국 정부에 주는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아산정책연구원 고명현 박사입니다.
[녹취: 고명헌 박사] “한국이 갖고 있는 김여정에 대한 온건파 또는 유화적 이미지를 북한은 이번 발언을 통해 파괴함으로써 한국 정부가 느낄 수 있는 당혹감 또는 실망감을 극대화시키려는 거죠”
또 김 제1부부장의 위상과 역할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그동안 당 선전선동부에서 부부장에 이어 제1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기점으로 권력의 정점인 조직지도부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담화 발표도 김 제1부부장이 김 위원장의 오른팔로 정책 결정과 국정운영 전반을 관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조성렬 연구위원] “앞으로 김여정이 김정은 위원장의 하나의 측근 또는 비서 역할을 넘어서 공식적인 당내 지위를 갖고 활동하겠다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담화가 향후 남북관계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통일부 내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는 대로 다각적인 남북 간 협력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통일부는 최근 ‘비무장지대(DMZ) 국제평화지대화’, ‘북한 개별관광’, ‘교류협력 다변화와 다각화’ 등 남북 간 접촉면을 넓히기 위한 방안들에 초점을 맞춘 ‘2020년도 통일부 주요 업무 추진 계획’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비난 담화로 남북관계가 한층 얼어붙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담화가 청와대를 비난하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선 여지를 남겨 남북관계를 전면 봉쇄하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해석도 제기됐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청와대의 반응이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며 수위를 조절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때문입니다.
아산정책연구원 고명현 박사는 북한이 미국과의 갈등 국면에서 한국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태도로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앞으로도 비슷한 불만 표출을 지속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북한이 한국 정부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사안별로 대응하는 자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미-한 연합훈련이 연기됐고 다음달 한국 총선이 예정돼 있어 북한이 대형 도발 보다는 당분간 상황을 관망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