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가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되면 북한과 신속하게 협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각에서 개최 가능성이 제기됐던 대선 전 미-북 3차 정상회담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선에서 이길 경우 북한과 매우 신속하게 협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재선 이후 북한과의 협상을 우선 과제로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와 함께 대선 전에는 북한과의 협상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상황 인식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시사한 발언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북한이 입장 전환을 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건 굿딜이다’ 할 정도의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보다 양보된 안으로 북한과 합의를 하면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 실험을 하지 않는 정도의 상황 관리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고, 본격적인 대화는 재선이 되면 하겠다는 일반론을 이야기했다고 봐요.”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도 미-북 간 비핵화 협상 재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이 대선 전 정상회담 가능성을 한층 떨어뜨리는 내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박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이후 우선과제로 북한과의 협상 재개를 언급한 것은 자신만이 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바탕으로 정상 간 합의를 통한 이른 바 ‘탑 다운’ 방식의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북한의 도발을 방지하는 상황관리 차원의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대선 전 미-북 3차 정상회담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6월의 대남 공세와 7월 대미 메시지 공세 이후 한국과 미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와 상관없이 대선 전 대미관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북한이 대북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수해까지 겹친 `3중고’에 시달리면서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폐기 이외 추가적인 협상안을 결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럴 경우 대선 판도에서 수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전격적으로 만남에 응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한편 일본 ‘교도통신’이 9일 미국 행정부가 교착 상태에 빠진 미-북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 북한과 상대방 수도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연락사무소 설치는 과거에도 미국과 북한이 검토한 적이 있었던 사안으로, 비핵화 협상의 전기가 될 만큼 비중있는 조치는 아니라고 평가했습니다.
박원곤 교수는 연락사무소 설치는 미국과 한국이 선호해 왔고 북한에 주는 일종의 혜택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정작 북한은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 주민에게 북한 정권이 하고 있는 것은 미국은 여전히 제국주의라고 선전 선동을 하고 있는데 미국 외교관이 와서 사실상 대사관 같은 것을 만들어서 평양 한복판을 왔다갔다 하는 것을 설득하기가 힘들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어쨌든 미국대사관이 들어가면 북한 체제상 그들을 감시해야 되고 여러 가지 따라야 되는 부수적인 게 많다라는 거죠.”
박 교수는 다만 미국이 실제로 북한에 이 같은 제안을 했다면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거듭 확인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합의 중 미-북 관계 정상화가 포함돼 있고 이에 따라 연락사무소 설치에 대한 검토도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연락사무소는 상호간에 양보가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연락사무소는 북-미 양측이 어떤 양보를 수반하는 건 아니에요. 서로 연락채널을 공식적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교착국면에서도 검토될 수 있거든요. 통상적으론 연락사무소가 관계 개선의 첫 단추로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교착상태에서 파국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서도 연락사무소는 검토가 가능하거든요. 그러니까 미국이 새롭게 고안한 거라고 볼 순 없고요, 특별한 상황 변화로 보긴 좀 어렵습니다.”
신범철 센터장은 북한이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엔 미-북 관계 개선에 합의했지만 지금은 대북 적대시 정책 우선 폐기로 입장을 바꿨다며, 미국 측이 연락사무소 카드를 꺼내도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전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