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핵시설에서는 고농축 우라늄 생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VOA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영변에 있는 4000개의 원심분리기로는 3.5~4%의 저농축 우라늄을 제조할 수 있다며, 농축도를 90%까지 끌어올리려면 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3단계의 추가 공정이 필요한 무기급 우라늄은 영변이 아닌 비밀 장소에서 모두 이뤄지고 있을 것이라는 진단입니다.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영변 핵시설 동향이 계속 주목받는 것은 핵물질 생산 여부 때문인데요. 영변에서 무기급 우라늄 농축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영변 우라늄농축공장의 설계를 보면 실제로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파키스탄의 농축 기술이 북한과 리비아, 이란으로 전수된 것을 고려할 때,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생산은 4단계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가 천연 우라늄을 3.5~4%로 농축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 이를 20%까지 끌어올리죠. 세 번째 단계에서 20%를 60%로 올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90%까지 농축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변에는 원심분리기로 가득 찬 두 개의 공간이 있습니다. (한 공간에 2천 개 씩) 모두 4천 개의 원심분리기가 있는데, 이는 3.5~4% 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밖에 없는 규모입니다. 이 (저농축) 우라늄은 실험용 경수로 연료로 사용되거나, 다른 시설로 옮겨져 90%로 농축될 수 있습니다.
기자) 우려해야 할 고농축 우라늄 생산은 영변이 아니라 다른 비밀 시설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추정하시는 거군요.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북한이 2010년 방북한 (미국의 원자력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에게 이 공장을 저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곳으로 소개한 것이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농축 우라늄은 다른 비밀 장소에서 생산하는 겁니다. 북한 입장에선 그런 방식이 더 안전합니다. 북한은 영변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이미 공개했기 때문에, 외부의 공격에 매우 취약한 상태로 노출돼 있으니까요. 따라서 안보적 관점에서 우라늄 농축도를 4%에서 90%로 끌어올리는 작업은 다른 곳에 있는 작은 터널 등에서 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이 작업을 하려면 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추가로 필요합니다. 대형 슈퍼마켓 규모인 1500~2000제곱미터 크기의 장소면 충분합니다. 제 생각에 이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저는 북한에 고농축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 장소는 영변이 아닐 겁니다.
기자) 영변에서 일부 우라늄은 무기급으로 농축도를 높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보다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합니다. 영변의 우라늄 농축 활동에는 이중목적이 있습니다. 4% 농축 우라늄을 생산해 한편으로는 무기 프로그램으로 연결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험용 경수로 연료로 쓰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해당 시설에서는 항상 같은 농축도를 유지하며 이를 바꾸지 않습니다. 이런 방법을 전수한 파키스탄의 설계를 보면, 안전한 다른 장소에서 나머지 농축 작업을 하는 것이 다음 단계입니다.
기자) 하지만 북한 핵시설에 대한 위성사진 분석은 영변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북 핵 시설을 직접 사찰한 경험으로 비춰볼 때 이런 관측에 어떤 한계가 있습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외람되지만, 기술자가 아니라 이론 물리학자들이 위성사진 분석을 하면서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IAEA는 이런 시설을 다른 시각에서 봅니다. ‘설계 정보 검증(design information verification)’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다시 말해 IAEA는 단지 몇 개의 원심분리기가 있는지만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핵 시설이 어떻게 가동되고, 어떤 장애에 부딪히고, 어떤 취약점이 있는지 숨겨진 측면을 봅니다. 이런 절차를 통해 설계자의 계획을 파악합니다.
기자) 위성사진을 토대로 한 지난 몇 년간의 분석을 보면, 핵시설에서 포착된 특정 동향을 곧바로 핵무기 관련 공정으로 진단하곤 했는데요.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몇몇 사람들이 저지르는 큰 실수는 (그런 움직임을 보고) 핵시설이 항상 가동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설은 가동하지 않을 때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령 원심분리기 시설은 진공상태로 만들어 놔야 하고, 액화질소로 (냉각장치인) ‘콜드 트랩’을 계속 가동해야 합니다. 먼지와 습기 등이 전혀 없는 상태로 시설을 유지하려면 농축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항상 이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시설을 멈추면 즉시 심각한 부식 현상이 일어나니까요. 핵시설에서 어떤 움직임을 발견한 뒤 서둘러 광범위한 결론을 내는데 주의해야 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기자) 그런 분석을 경계하시면서 “영변 핵시설에서 육불화우라늄 실린더 관련 움직임이 위성에 포착된다면 중요한 우라늄 농축 증거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셨죠? 원심분리기 실린더 반입도 포착 가능합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그렇습니다. 특정 지름과 길이의 특수 용기에 담기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정도의 다른 종류가 있죠. 그런데 북한 핵시설을 분석하는 사람 중에 누구도 영변에서 이런 용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북한의 ‘강성’이 농축시설이라는 관측에도 회의적입니다. 만약 그런 시설들에서 실제로 농축 활동이 이뤄져 왔다면 수많은 실린더 반입 정황이 포착됐을 텐데 단 한 번도 목격된 적이 없습니다. 물론 한밤중에 비밀리에 반입할 수도 있습니다만, 북한이 이미 영변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고 밝힌 상황에서 이를 숨길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북한은 5MW 원자로에서 폐연료봉을 꺼내 재처리공장으로 옮기는 정황을 노출해 왔습니다. 이런 활동은 공개적으로 하면서 실린더 반입을 감출 이유는 없습니다. 논리적이지 않죠. 그래서 저는 영변 우라늄농축공장에서 별 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겁니다.
기자) 육불화우라늄 실린더는 얼마나 자주 교체해야 합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북한 원심분리기의 질은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10년 주기로 원심분리기를 모두 교체해야 합니다. IAEA의 보고서를 보면 이란에서는 항상 이런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란의 원심분리기는 원래 네덜란드에서 개발됐고, 수명이 10년 정도입니다. 전체 원심분리기의 10% 정도를 매년 교체해주죠.
기자) 그럼 이론상 북한이 영변 외 비밀 시설에서는 원심분리기를 계속 교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북한이 어느 정도의 고농축 우라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중국이나 러시아 수준의 핵무기를 생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목적은 김정은이 말한 것처럼 억지력 차원일 수 있고, 그럴 경우 100개, 200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20개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확실하진 않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인도나 파키스탄과 같은 핵보유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1990년대에 핵실험을 한 인도와 파키스탄은 각각 100개가 조금 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그렇게 하기까지 20년이 걸렸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최대 60개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미 국방정보국의 추정치는 짧은 시간을 고려할 때 매우 높은 숫자입니다. 그리고 핵무기와 핵물질을 구별해야 합니다. 개발을 진행 중인 핵무기를 지나치게 많이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농축 우라늄을 비축해 놓고, 나중에 어떤 종류의 핵무기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지 결정하는 겁니다.
기자) 운반 수단에 따라 다른 형태의 핵무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북한은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그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미사일을 모두 개발 중인데, 각각 다른 설계가 필요하고 이는 탄두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같은 우라늄 탄두를 다른 형태의 미사일에 그대로 탑재하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북한은 어떤 종류의 탄두를 각각 얼마나 만들지 결정해야 합니다. 북한은 여전히 미사일을 개발 중이기 때문에 핵탄두를 규격화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이미 만들어 놓은 핵탄두를 다른 종류로 전환하려면 우라늄 부분을 제거하고 처음부터 새 공정을 시작해야 하므로, 수많은 핵무기 재고를 안고 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핵연료와 핵무기 재고는 별개이며, 보유 중인 핵물질로 어떤 핵탄두를 만들 것인지 나중에 결정하는 것입니다.
기자) 그런 북한을 상대로 핵 협상을 하려면 어떤 접근이 필요합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우선은 핵물질 추가 생산을 동결시키고 새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중지시키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기존 미사일과 다른 궤적을 그리는 중단거리 미사일이나 잠수함발사미사일처럼 예측이 어려운 무기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순항미사일에도 제약을 가해야 합니다. 핵무기를 소형화하면 결국 순항미사일에도 탑재할 수 있고, 이는 방어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상황을 동결시킨 뒤 북한의 안보 우려 등을 해소하는 협상을 진행해야 하고, 한국과 일본 등을 이 과정에 참여시키는 지역적 접근법을 채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국이 탈퇴한 이란 핵합의와 달리 합의를 이행할 것이라는 확신을 북한에 줘야 합니다.
기자) 하지만 북한이 비밀 농축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알려진 무기 프로그램만 동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핵 프로그램 전반을 검증할 방법이 있습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있습니다. 우선 북한이 핵 프로그램의 역사를 신고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북한은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핵시설에 대해 숨기려고 하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핵 관련 장비를 얼마나 들여왔는지, 어디서 생산 활동을 했는지, 실험은 어떤 식으로 했는지 등이 포함됩니다. 이런 신고를 토대로 우리는 현장을 방문해 관련 장비와 사용된 물질을 살펴보고, 환경 시료를 채취해 동위원소 등 핵분열 생성물을 측정합니다. 북한이 한 두가지 측면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완전범죄에 성공할 순 없습니다. 핵신고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폐기는 이후에 따르는 과정입니다.
기자) 미국이나 IAEA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북 핵 프로그램에 대해 훨씬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 그런 검증이 가능할 것 같네요.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그들은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북한은 핵 관련 장비를 유럽 국가들, 중국, 러시아 등 많은 나라에서 입수했고 각국의 정보를 합하면 북한의 해외 구매 현황에 대해 꽤 정확한 그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북한은 원심분리기 입수 등 파키스탄과의 협력 현황을 속일 수 없습니다. 리비아가 원심분리기 관련 활동 등 핵 프로그램을 중단했을 때 파키스탄은 과거 리비아와 어떤 거래를 했었는지에 대해 IAEA에 협조했습니다. 파키스탄은 북한과 관련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핵 관련 물질과 장비, 기술과 관련해서도 많은 정보를 공유할 핵심 국가들이 있습니다. 중국, 러시아, 그리고 몇몇 아시아 국가들이 북한에 중요한 장비를 보냈으니까요.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으로부터 북한의 우라늄 농축과 핵 개발 현황에 대한 분석을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