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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루 선장, 크리스마스 피란민 1만4천명에 생명 선물"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오른 피란민들.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오른 피란민들.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 작전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며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흥남철수 주역인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라루 선장은 배에 실린 무기와 물자를 모두 버리고 대신 1만 4천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한겨울 바닷바람이 살을 파고드는 흥남부두에 모인 피란민들은 초조한 모습으로 구조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38선을 넘어 북진했던 유엔군과 한국군이 중공군의 개입과 매서운 추위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배편으로 철수하는 작전을 세운 것입니다.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군인과 피란민, 군수물자를 선박을 통해 남쪽으로 이동시킨다는 계획이었지만 턱없이 부족한 선박이 큰 문제였습니다.

흥남부두에 정박해 있던 7천600 t급 화물선인 메러디스 빅토리호도 탑승 정원은 고작 60명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이 때 도움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을 목격한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은 무모해 보이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배에 태우기 위해 싣고 있던 무기와 물자를 모두 버리기로 한 겁니다.

흥남 철수 작전을 생생하게 그린 한국 영화 ‘국제시장’엔 당시 상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녹취: 영화 '국제시장'] “(번역) (선원) 안됩니다. 배 안은 무기들로 꽉 차있습니다. 피란민들을 태울 자리 없습니다. (라루 선장) 장군의 명령이다. 배에 선적한 무기들을 모두 버리고 피란민들을 태운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12월 22일 라루 선장은 공산군에게 목숨을 잃을 것을 우려하는 피란민들을 배에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6시간이나 이어진 승선 끝에 빅토리호는 무려 정원의 230배나 되는 1만 4천여 명을 태우고 23일 남쪽으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라루 선장은 추위와 배고픔, 공포 속에 목숨을 건 항해 끝에 195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에 한국 거제도 장승포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피란민 중에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고, 운항 중 배 안에서 5명의 아기가 태어나는 경사도 있었습니다.

이 항해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렸고, 빅토리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기적의 배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됐습니다.

라루 선장은 흥남 철수 작전 4년 뒤인 1954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베네딕토수도원에 입회했고 200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여 년간 수도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라루 선장은 생전에 흥남철수에 대해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고 회고했습니다.

그가 말년까지 소속됐던 가톨릭 패터슨 교구의 케빈 스위니 주교는 17일 미 주교회의에서, 라루 선장의 구조가 이후 한국 선교에 소중한 도구가 됐다며, 문재인 한국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신도가 당시 피난민의 후손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스위니 주교] “Captain LaRue’s rescue of 14,000 Korean refugees could become an invaluable tool for New Evangelization amongst our Korean sisters and brothers Korean communities…It is reported that over a million Koreans are now descendants of the refugees from that ship, the merit of victory, including the current president of South Korea Moon Jae-in.”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미국 해병대 박물관 구내에 설치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해 라루 선장의 헌신을 언급하며 흥남 철수에 얽힌 개인적 사연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문재인 대통령] “2년 후, 저는 빅토리호가 내려준 거제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 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빅토리호에서 1등항해사로 일했던 로버트 러니 전 미 해군 제독은 지난해 6월 VOA와의 인터뷰에서, 라루 선장은 자유를 갈구하는 피란민을 외면할 수 없었고 결국 옳은 선택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러니 전 제독] “He was a man of great integrity. He was not concerned about the enemy. He was a man that in retrospect, just did the right thing. Are these people seeking freedom and that was his role.”

러니 전 제독은 라루 선장이 진실성을 지닌 매우 훌륭한 선장이었고 최고의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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