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패션 잡지 등 미국 매체들이 최근 청년들의 옷차림과 머리 단장을 더 강력히 단속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판하며 반체제를 억누르려는 의도로 풀이했습니다. 해외 대북 소식통과 엘리트 출신 탈북 청년은 최고지도자의 이런 구태의연한 강요가 청년들의 반발만 더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올해 창간 90주년을 맞은 미국의 유명 남성 패션 잡지 ‘GQ’가 19일 ‘김정은은 스키니진을 싫어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북한 정권의 청년 문화 규제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북한 청년들 사이에서 ‘몸매바지’, 장년층에서 ‘땡빼바지’로 불리는 스키니진은 지구촌 주민들이 편하게 즐겨 입는 옷이지만 북한은 자본주의의 산물로 금지하는 의상 중 하나입니다
‘GQ’는 “국제적 왕따이자 3류 패션 영향력자인 김정은이 이번에는 법의 힘을 통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며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을 통해 청년들의 스키니진 등 옷차림과 액세서리. 머리 단장까지 규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청바지 등 외부 문화를 퇴폐적으로 보는 전체주의 공산국가 북한에서 이런 규제는 새삼스럽지 않지만 최근에는 훨씬 더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며, 유치해 보이는 이런 법은 세계적으로 2천 년의 긴 역사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가령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비단이 너무 가벼워 여성에게만 적합하다며 남성은 입지 못하도록 명령하는 등 역사적으로 독재적 횡포들이 있었으며, 여기에는 대체로 체제 저항이나 외국 사상과 미학을 억누르려는 목적이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지난 세포비서대회와 청년동맹대회 등 국가 행사와 관영 매체를 통해 최근 청년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강조하며 자본주의 부르주와 문화를 강하게 배격하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21일에도 일부 사회주의 나라에서 과거 개인주의, 부르주아 도덕에 오염된 청년들이 공산당을 분열와해시키고 사회주의 제도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다며 “청년 세대가 타락하면 그런 나라에는 앞날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외모와 계급, 이념 연관성 등을 연구한 뉴욕시립대의 루텐 롭슨 교수는 ‘GQ’ 잡지에 “옷차림을 통제하고 획일성을 강요하려는 욕망은 모든 유형의 폭군들에게서 흔하게 나타난다”며 “이런 규제와 법률, 정책은 상류층만 예외를 두는 사회 통제의 한 유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폭스뉴스의 토크쇼 프로그램인 ‘것필드(Gutfeld)’의 진행자 그레그 것필드 씨도 21일 방송에서 스키니진을 북한에서 입으면 노동수용소로 끌려갈 수 있다며 북한 정권의 청년 문화 규제를 풍자적으로 비판했습니다.
[것필드쇼] “dictator Kim Jong-un has banned skinny jeans and mullet. There's irony, banning skinny jeans in a country that starving.”
백성이 굶주리는 국가에서 몸매가 날씬한 사람들이 몸에 밀착해 입는 스키니진을 금지하는 것이 역설적이란 겁니다.
것필드 씨는 북한 청년들에 대한 이런 규제는 자본주의 생활 방식이 침투하고 청년들이 북한의 체제 전복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김정은의 두려움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청년들도 김 위원장의 이런 규제 강화에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C국의 한 대북 소식통은 21일 VOA에, “국가가 청년들에게 제대로 해 주는 게 없으면서 하지 말라는 요구는 더 늘고 있다”며 “현실을 다 아는 청년들로서는 반발심만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외국 생활을 했던 간부들의 자녀들과 한류 문화의 영향으로 평양에서는 젊은 남성들도 향수를 바르고 발목이 좁은 ‘송곳바지’, 구두 끝이 뾰족한 ‘코구두’, 허리에 붙는 양복을 입는 게 유행이었다며, “이런 세대를 60~70년대 청년들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리과대학을 졸업하고 청년 사업가로 활동하다 지난 2019년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장혁 씨도 많은 청년이 지도자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혁 씨]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리더가 뭔가 바꾸길 원했거든요. 그런데 10년을 지켜보니 그대로인 거예요. 김정은이 뭔가 탈출구를 못 찾고 있어요. 그렇다고 미래지향적이지도 않아요. 자꾸 보여주기식, 물놀이장, 스키장, 승마구락부를 짓고. 우리 사람들이 승마하려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뭔가 비전이 없구나. 고생을 못 해봐서 그런가?”
장 씨는 한국에서 자기 개성을 살리며 자유롭게 도전하는 청년들을 볼 때면 북한의 현 상황과 너무 비교돼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혁 씨] “한국 청년들은 북한 청년들과 제일 다른 점이 개성이 매우 강한 것 같아요. 북한은 개개인의 사람들을 국가에서 필요한 거대한 국가라는 시스템의 부속품들처럼 비슷하게 만드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여기와서 느낀 것은 확실히 사고나 선택의 폭이 넓구나. 북한 사람들 기준에서 볼 때 사상이나 이념을 떠나서 하루하도 내가 어떻게 편하게 살까? 더 행복하게 살겠는가 이런 것을 고민하고. 북한 청년들은 그럼에도 꿈이 없고 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그냥 하루하루를 버리면서 살아요. 꿈많은 청춘인데 달려갈 목표가 없으니까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청년들이죠.”
장 씨는 조국을 비판하는 게 불편하지만 이것이 북한의 현실이란 게 더 서글프다며, 김 위원장이 지금이라도 용단을 내려 사상교양이 아닌 경제 개혁에 매진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