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워싱턴에서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대화와 긴장 완화를 위해 북한의 인권 침해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있지만, 이런 저자세가 오히려 북한의 요구와 공세 수위를 끌어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해 인권 상황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워싱턴에서 더이상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권 압박을 줄임으로써 다른 부문에서 북한의 협조를 얻어냈던 예는 전무했고, 오히려 북한의 더 많은 요구와 도발만 부추겼다는 게 북한 문제를 오랫동안 다뤘던 미국 전 당국자들의 지적입니다.
특히 한국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 대화와 경제 협력 등에 방점을 두고 국제적인 북한 인권 개선 노력에 적극 동참하지 않았지만, 남북관계는 최악의 국면을 맞았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북한 정권을 달래려는 한국 정부의 시도는 북한을 한국과 건설적으로 관여하도록 만들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정권은 한국의 ‘선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한국을 계속 경멸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Seoul's attempts to appease the Pyongyang regime have not made North Korea any better disposed to deal constructively with the ROK. Indeed, Pyongyang is taking Seoul's "good will" for granted, and continuing to treat the South with contempt.”
한국 정부가 대북전단금지법과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불참 등으로 북한을 달래려고 시도한 것은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해 오히려 유리한 대북 협상력을 스스로 떨어뜨렸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한국의 행동은 인권은 한국에 그리 중요하지 않고 다른 목적을 위해 팔아넘길 수 있다는 것을 북한에 전달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부차관보] “What South Korea's action does is to convey to North Korea that human rights have low priority with South Korea and can be bartered away for other objectives.”
코헨 전 부차관보는 “그러나 인권은 한국이 가진 힘이지,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라면서 “문재인 정부는 한국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중요한 레버리지를 거저 넘기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부차관보] “But human rights is South Korea's strength, not a point of exchange in a market. The Moon Administration is giving away important leverage South Korea has over North Korea whose main insecurity derives from its extreme poverty, food insecurity and denial of human rights in comparison with South Korea's prosperity and democratic form of government.”
그러면서 “북한의 불안감은 한국의 번영과 민주주의 정부와 대비되는 극도의 빈곤과 식량 불안정, 인권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한국 정부가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에 침묵하고 있는 동안에도 대화 제의에 일절 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 비난, 잇단 미사일 시험 발사,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해양수산부 공무원 총격 살해 등의 도발을 이어가는 한편, 한국 통일부의 대북 지원 제의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불행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인권결의안을 공동제안하는 데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북한과 화해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불행하게도 이는 사실로 판명되지 않았고, 북한은 오히려 지난 2년 동안 한국에 더욱 불쾌하게 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The thing that's unfortunate is that obviously the Moon administration thinks that by not sponsoring the resolution, it will improve the chances of some kind of reconciliation with North Korea. Unfortunately, that has not proven to be the case. North Korea has, if anything, become more obnoxious towards South Korea in the last couple of years.”
킹 전 특사는 “한국이 적어도 과거 한때 그랬던 것처럼 인권 원칙을 옹호하려 하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It's just unfortunate that South Korea is not willing to stand on the principles of human rights which they have done at least some of the times in the past.”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배려’에 긍정적으로 화답한 전례가 없다며, 북한의 행동을 다소나마 변화시켰던 것은 오히려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압박 수위를 최대한 끌어올렸을 때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인권단체 북한인권위원회(HRNK)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북한이 15년 만에 외무상을 유엔총회에 파견하도록 압박한 것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였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은 인권 침해 사실을 계속 부인하긴 했지만, 북한 인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정권을 고립으로부터 끄집어냈다”는 설명입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 “It was the UN COI report that persuaded the DPRK regime to dispatch its Foreign Minister to the UN General Assembly for the first time in 15 years. Although the answer has continued to be denial that human rights violations are being perpetrated, focusing attention on DPRK human rights does draw the regime out of its isolation.”
실제로 COI 보고서가 2014년 3월 발표되고 미국 등의 인권 압박이 거세지자 리수용 당시 외무상은 그해 9월 북한 외교 수장으로는 15년 만에 유엔총회에 참석해 국제사회의 압박에 대한 방어에 나섰습니다.
이어 다음 달에는 장일훈 당시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VOA와의 인터뷰를 자청해 북한 지도부를 국제사법 심판대에 세우려는 유엔의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이례적으로 국제사회의 태도에 따라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현장 실사도 논의 가능한 주제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의 정책에 대한 명백한 규탄을 삼간다 해도 성취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I don’t think the Moon administration will accomplish much by refraining to clearly condemn Kim’s policies.”
미 국무부와 국가정보국장실 선임 자문관을 지낸 매닝 연구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남북 대화와 화해에 다시 나서도록 유도하기 위해 온갖 수고를 다 했지만, 김정은으로부터 아무 반응도 끌어낼 수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이 어떤 이유를 대든, 그런 노력이 김정은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President Moon has bent over backwards to take steps to incentivize the North to renew inter-Korean dialogue and reconciliation, and he has gotten no response at all from Kim Jong Un. Whatever Seoul’s reasons, it will not change Kim’s behavior.”
또한 “김정은은 문재인 정권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이고, 아마도 차기 대통령의 집권을 내다보고 있을 수도 있다”며 “그가 추가 남북 대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미국과의 관여에 집중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마저도 불확실하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It appears Kim is waiting out the remaining year and perhaps looking ahead to the next ROK President. Or he may simply not be that interested in further North-South Dialogue focusing on engaging the US, though even that is uncertain.”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문재인, 노무현, 김대중 정부는 북한이 남북 대화를 중단할 것을 두려워하면서 북한 정권의 잔혹한 인권 기록을 비판하는 것을 삼가왔다”며 “이런 양보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자국민 처우를 개선하거나 유엔 결의안을 준수하지 않았고, 한국에 대한 위협적 행동도 줄이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The Moon Jae-in, Roh Moo-hyun, and Kim Dae-jung administrations refrained from criticizing Pyongyang' atrocious human rights record out of fear that doing so would lead the regime to cease inter-Korean dialogue. Despite this capitulation, North Korea did not improve its treatment of its citizens nor did it comply with UN resolutions or curtail its threatening behavior toward the South. Despite the Moon administration's silence on North Korean human rights violations and its imposition of a gag order on freedom of speech in South Korea, Pyongyang continues to reject all entreaties for inter-Korean dialogue.”
그러면서 “문재인 행정부가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에 침묵하고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금지령을 내려도, 북한 정권은 남북 대화를 촉구하는 모든 간청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최종문 한국 외교부 2차관은 지난달 24일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10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 정부를 향해 “북한과 협상할 때는 인권 문제도 다뤄야 한다”며 “북한과의 경제·인도 협력은 인권에 기반한 틀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5년째 표류 중인 북한인권재단 설립 등 북한인권법을 제대로 시행하고, 통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낮춤으로써 남북 주민 간 소통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