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전염병 대응은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란 체제 논리에 따라 평양에 집중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북한 출신 전문가가 밝혔습니다. 의료체계는 잘 갖춰져 있지만 진단 장비와 격리 시설 등 지원이 없어 주민들만 고통에 시달린다는 지적입니다. 청진의대 임상의학부를 졸업한 뒤 청진 철도국 위생방역소에서 전염병 대응을 전담했던 의사 최정훈 씨는 2012년 한국에 입국한 뒤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북한 전염병 관련 논문(감염병으로 본 북한 보건의료체제 실태 연구)을 발표하는 등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6일 최 교수를 전화인터뷰 했습니다.
기자) 북한 당국이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국경을 폐쇄하고 수질 분석까지 지시하는 등 국가 존망에까지 연계시키고 있는데, 방어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최정훈 교수) “작동을 잘 안 하니까 그렇게 야단법석을 떠는 겁니다. 북한의 전염병 방역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습니다. 문제는 작동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겁니다. 과거 전염병 사례들을 보면, 중앙부터 하부 말단까지, 김정은의 방침이나 보건성 지시문 등 각종 방침이 하달되는데, 실질적으로 현장에서는 격리부터 시작해 모든 게 제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염병이 제어되지 않고 상당히 긴 기간 동안 확산되다가 겨울에 확산됐던 전염병이 봄에 따뜻해지면서 자연적으로 수그러드는, 그렇게 진압되는 양상을 보여왔습니다. 지금도 그럴 겁니다.”
기자) 작동이 잘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요?
최 교수) “전염병 투쟁에 대한 국가 차원의 목적이 다릅니다. 한국이나 미국 등 전 세계 정상국가들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중심에 놓고 전염병 대응을 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가 최우선 목적입니다. 다시 말해 전염병이 발생하면 평양만 완전히 격패(격리)시킵니다. 평양으로 향하는 모든 철도와 육로를 봉쇄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는 격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지역 간 이동도 제대로 되지 않아 더 열악한 상황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거죠. 평양만 건재하면 된다는 가치관과 개념 때문에 주민들에 대해서는 자연 방치하고 가두어 놓는다는 개념으로 전염병을 대응하는 겁니다.”
기자) 그럼 구조적 문제를 떠나서 전염병을 실질적으로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의료체계는 어떤가요?
최 교수) “여러 문제가 많습니다. 북한 의료체계가 열악하다는 것은 세상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만, 우선 병원이나 보건기관들의 전기와 상수도는 물론 진단할 수 있는 의료 장비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미 있는 장비도 가동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특히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경우는 과학적으로 진단할 장비나 시약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과학적으로 균을 배양하거나 분리할 수 없다는 거죠.”
기자) 북한 당국은 날마다 전국에 만반의 대응을 하라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그럼 북한의 의사들이나 지역 담당 일군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최 교수) 궁여지책이죠. 과학적 진단을 못 내리니까 북한식 표현으로 하면 개미작전을 하고 있을 겁니다. 북한은 평균적으로 의사 인력이 OECD 국가들의 평균에 거의 맞먹습니다. 그래서 이런 많은 인력을 현장에 투입해 열이 있거나 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발견해 외부와 격리시키는 조치들 밖에 없는 겁니다.”
기자) 많은 나라에서 마스크 확보와 생산에 공을 들이고 있고 북한도 최근 비슷한 뉴스가 나왔는데, 배급이 원활할까요?
최 교수) “마스크 제작을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비슷할 겁니다. 제조해서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게 아니라 시장을 통해 주민들이 자비로 사서 써야 할 겁니다. 국가가 공급하는 게 아니라. 다시 말해 지시만 내리고 이렇게 하라고만 했지, 국가적 책임이나 보장, 배급은 전혀 없이 주민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거죠.”
기자) 북한에 계셨을 때 이런 전염병 대응 지시를 받으면 교수님이나 동료 의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최 교수) “그냥 어이가 없는 거죠. 위에서는 자꾸 대처하라 대응하라 막아라 하는데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죠. 의사는 진단을 내리고 치료해야 하는데 진단 시약도 없고, 설사 진단을 내리고 확진을 해도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특히 진단 시약은 물론 폐렴에 대해 치료 약물도 국가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고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상황을 그저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게 의사들로서 가장 안타까운 거죠.”
기자) 이 정도의 심각한 전염병 사태가 국제적으로 벌어졌다면 북한 당국도 빨리 WHO 등 국제기구나 한국 정부와 협력해서 대응을 하면 훨씬 더 효과적일 텐데, 왜 북한 당국은 잠잠한 걸까요?
최 교수) “그것이 또 중요한 문제입니다. 북한은 전염병이 북한 내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국내외에 발표하는 것을 극히 꺼립니다. 왜냐하면 전염병 발생 문제를 체제와 위상 등 이미지 문제에 직결시킵니다. 북한의 보건 의료와 주민들의 삶의 환경이 열악한 것은 전 세계가 다 알고 있지만, 북한 당국은 전염병 등을 ‘우월한 사회주의 예방의학, 주체의학이 있다’는 식으로 선전하기 때문에 전염병이 북한에서 발생했다는 자체를 체제 유지와 연결시켜 외부에 공표하기를 꺼리는 겁니다.”
기자) 그럼 북한에 확진자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십니까?
최 교수) “당연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봄과 여름, 가을, 겨울 해마다 계절적, 지역적으로 전염병이 계속 유행해 왔습니다. 그래서 사망자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전염병이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북한 주민들은 계속 고통을 받아 왔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이미 무슨 전염병으로 죽었는지 확진을 못 하지만, 아무튼 치료하다 잘 안 돼 사망하는 사람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겁니다.”
기자) 이번에는 국경까지 봉쇄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북한 관영매체들이 밝히고 있는데, 그런데도 확진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얘기시군요
최 교수) “그렇습니다. 지금 겨울이지 않습니까? 북-중 국경 지역이 모두 강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 다 얼어 있습니다. 그것을 다 차단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공개적인 세관은 막을 수 있겠지만, 밀수꾼들을 통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마도 들어갔을 수 있습니다. 과거 전염병 사례가 그랬습니다.”
기자) 한국에서 정부와 국제사회의 여러 노력을 직접 보시면서, 북한에 꼭 적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으신가요?
최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진단키트입니다. 세계적으로 24시간 내지 이틀 걸려야 확진을 했는데, 이번에 한국에서 6시간 만에 확진할 수 있는 키트가 나왔습니다. 한국의 대응이 빠른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의학 과학 수준의 발전상을 보면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만들고 체제 유지에만 집착하지 말고, 이렇게 실질적으로 주민들의 건강 차원에서 의학 과학이라든가 기술 발전에 실제로 신경을 썼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 아닙니까?”
기자) 최 교수께서 북한의 보건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실질적으로 이번 전염병을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하시겠습니까?
최 교수) “첫째, 국제사회와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모든 정보를 공유합니다. 둘째로, 가장 가까운 남한에 도움을 청하고 환자 검체 등 다양한 정보를 공유해서 실질적인 의학·과학·기술적인 협조를 요청하는 게 솔직하고 양심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전염병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게 격리입니다. 남한이나 다른 국가는 먹는 게 다 해결돼 그게 격리의 큰 문제가 아닌데, 북한은 절대 다수 주민들이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때문에, 격리시키면 식량을 공급해 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주민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북한이 보유한 식량을 주민들에게 풀거나 격리가 실제적으로 될 수 있는 효과적 대응을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전염병 대응 의사로 활동했던 최정훈 한국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연구교수로부터 북한의 전염병 대응 실태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방안에 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김영권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