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주 한국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새 대북정책에서 인권 문제를 중시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가 미-북간 북 핵 협상 재개에 직접적 변수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주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방한에서 연일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17일 미-한 외교장관 회담 모두발언에서 “북한의 독재체제는 북한 주민에 대한 구조적이고 광범위한 학대를 계속하고 있다”며 “기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이들과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18일 미-한 외교 국방장관 간 이른바 ‘2+2회의’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북한 주민들이 압제적 정권 밑에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유린을 당하고 있다”고 거듭 비판했습니다.
북한 외무성은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블링컨 장관의 이 발언을 적시하진 않았지만 인권 상황을 지적하는 서방국가를 향해 “인권범죄자의 인권타령”이라고 반발하면서 “서방의 인권 유린 실상이야말로 국제사회가 바로잡아야 할 초미의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블링컨 장관의 발언에 대해 현재 조 바이든 행정부가 검토 중인 새 대북정책에 인권 문제가 비중있게 다뤄질 것임을 시시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정책의 보편적 원칙으로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 중심의 국제연대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의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인권 문제 부각이 북 핵 협상의 직접적인 변수가 될지에 대해선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미국의 북한 인권 문제 비판은 과거에도 꾸준히 제기됐지만 핵 협상에 직접 영향을 준 적은 없었다며, 블링컨 장관의 발언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압박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인권 문제는 이번에 많이 강조했지만 이것은 하나의 제재 차원에서 즉 북한을 협상으로 인도하고 미국이 원하는 협상의 틀로 북한을 끌어들이기 위한 하나의 제재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지 인권 문제가
협상 틀 안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는 즉 어젠더로서의 역할을 하기는 가능성이 별로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은 인권관련 법 개정 등의 보통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일부 조치들을 취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인권 개선으론 이어지지 않았다며, 인권 문제는 여전히 북한 체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으로선 이 문제가 쟁점화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핵 협상 재개에 영향을 줄지에 대해선 바이든 행정부가 인권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을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공개 처형도 전혀 줄지를 않았고 권위가 취약하기 때문에 일종의 사회적인 공포정치를 취한 측면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은 김정은 체제로선 상당히 아프면서 그렇다고 공세적으로 전면적으로 부각시키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앞으로 상당히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 같고요.
만일에 미국 쪽에서 인권 문제를 전면적인 수단으로 활용을 한다면 비핵화 협상에는 상당히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요.”
신범철 센터장은 북한이 대화 재개를 위해 미국 측에 철회를 요구한 대북 적대시 정책의 주요 내용은 주한미군 주둔이나 미-한 연합훈련 또는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인권문제 비판은 비중이 떨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따라서 북한이 미국의 대북 인권 비판을 문제 삼아서 핵 협상을 거부하진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지켜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협상이 전개된다고 가정할 경우 북한도 주변 문제가 핵협상을 방해하게 놔두도록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접근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요. (북한이) 큰 범위 내에서 인권 문제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우선순위는 상대적으로 낮다 그렇게 평가합니다.”
이와 함께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 격화가 북 핵 협상 재개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 18일 미국은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중국과의 고위급 회담에서 중국의 신장 위구르 문제와 홍콩, 타이완, 사이버 공격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고 중국은 신장 위구르를 비롯해 홍콩과 타이완 모두 분리할 수 없는 중국의 영토라며 미국의 내정간섭을 단호히 반대한다며 거친 설전을 벌였습니다.
한대성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는 지난 12일 유엔 인권이사회 연설에서 “일부 나라들이 신장 지역과 홍콩 문제를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에 이용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며 중국과 밀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신범철 센터장은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둘러싼 미-중간 갈등이 격화될 경우 북한의 전략적 가치 상승과 북-중 관계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미-북 핵 협상의 잠재적 변수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미국의 중국에 대한 인권 문제 제기는 결국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 미-중간 협력 가능성을 제한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는 것이고, 그럴 경우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서 비핵화를 하면서 제재 완화를 얻어내는 그런 셈법 보다는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핵을 공고화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 하는 판단을 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조만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될 예정인 북한인권 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22일 기자들과 만나 “아직 내부 검토 중이며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인권 결의안에 2009년부터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지만 2019년부터는 북한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게 북한과 비핵화 대화 등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공동제안국으로 이름을 올리지 않되 결의안의 합의 채택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신범철 센터장은 문재인 정부는 미-북, 남북 대화 재개를 우선순위에 놓고 대화 재개에 장애가 될만한 요소들은 거론을 피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인권 문제가 부각될수록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