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았습니다. VOA는 다섯 차례에 걸쳐 한국전쟁의 의미와 시사점을 되돌아 보는 기획보도를 전해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순서로 ‘참전용사들이 보는 미-북 관계와 남북한’을 전해 드립니다. 김카니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1948년 18살 어린 나이에 미 공군에 입대한 폴 커닝햄 씨.
커닝행 씨는 입대 2년 후인 1950년 9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로 파병됐습니다. 3개월 전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이 한창인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공군 하사였던 커닝햄 씨는 부산을 시작으로 울산과 인천, 평택, 김포 공군기지에 전파탐지소를 건설하고 전투기의 레이더를 수리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내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KWVA) 회장을 맡고 있는 커닝햄 씨는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와 모든 것이 폐허로 변했던 한국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 한국 경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것을 보면서 당시의 희생이 가치있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커닝햄 회장] “We who served during the war are most pleased and proud of what South Korea has become. We know they are the 10th strongest economy in the world. I don’t know where North Korea would rank. But it made it worthwhile…”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병사들은 한국이 이처럼 변한 것이 기쁘고 자랑스럽다는 겁니다.
커닝햄 씨는 한국이 세계 10위 경제강국이지만 북한의 순위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우들의 희생으로 한국이 지금의 모습을 이룰 수 있었다며, 한국전 참전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미 공군 307 폭격편대에서 B-29폭격기 사수로 복무했던 톰 스티븐스 씨는 일본 오키나와 공군기지에서 매일 밤 북한으로 날아가 전투 임무를 수행했던 때를 기억한다며, 전쟁의 기억과 전쟁터의 폭격음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 한국의 한 교회의 초청으로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믿을 수 없이 발전된 한국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스티븐스 씨] “If it weren’t for the language, I would’ve thought I was in NYC. A lot of neon signs, very metropolitan, It’s really astounding. I was strucken by the fact that there were so many high rise apartment buildings. Everything I read and hear about North Korea is primarily to provide the ruling party and benefit the party.”
길거리 간판들에 적힌 한국어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뉴욕시에 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는 겁니다.
스티븐스 씨는 수많은 네온 간판들과 고층 건물 등 대도시의 모습이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자신이 접한 북한 관련 뉴스는 북한의 집권층에 이익을 주기 위한 것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전 당시 보병 제3연대 소속으로 임진강에서 싸웠던 래리 키너드 씨는 한국만큼 미국의 참전에 감사를 표시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키너드 씨] “There is no other country that I know of that has been as appreciative as South Korea. They’ve done everything they can to show appreciation and at the persent time we are probably the single best ally the U.S. has. They have always provided troops to help us, they were there in Vietnam, they were there to help out.”
한국은 참전용사들을 한국에 초청하는 등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해왔다는 겁니다.
키너드 씨는 현재 미국과 한국은 최고의 동맹국이라며, 한국은 베트남전쟁 때 군대를 파병하는 등 미국이 필요할 때 항상 군대를 보내 돕는다고 말했습니다.
1952년 7월부터 1953년 11월까지 수원의 미 전투비행단에서 무전기 수리를 담당했던 찰스 게로드 씨는 한국을 떠날 당시 모든 건물들이 북한의 공격으로 무너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2007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대형 도시들처럼 변한 서울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 아무 것도 없었던 나라가 미국의 뉴욕시처럼 발전한 분주한 도시의 모습이 마치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보는 것 같았다는 겁니다.
[녹취: 게로드 씨] “I have to say, it’s hard for an American’s mind to get around from rubble to a robust economy. I said to myself what special people the South Koreans must be that they were able to come in some generations and shake that feeling of despair to say no we are going to rebuild, and create a great nation. And they created a great nation.”
게로드 씨는 몇 세대에 걸쳐 전쟁의 절망을 떨치고 위대한 나라를 만든 한국 사람들은 정말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한국과 다른 길을 선택한 북한은 70년이 지난 지금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어렵고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게로드 씨] “When I look at a night time map, a satellite picture of North Korea being almost entirely dark except for the capital and small areas because there is no electricity. People live in poverty and they live in fear.”
밤에 찍은 한반도 위성사진을 보면 북한은 전기가 없어 수도와 몇 개 작은 지역들을 제외하면 완전히 어둠으로 덮인다는 겁니다.
게로드 씨는 북한 주민들이 가난과 공포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한반도가 여전히 분단돼 이산가족들이 언제 서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슬프다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북한은 여전히 미사일 개발로 세계를 위협하고 있어 한반도의 긴장 상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래리 키너드 씨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세 번의 만남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희망했다며, 하지만 여전히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안 지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키너드 씨] “At this time, I don’t see any effort on the part of the North Koreans to do that. I personally feel like it is an essential component of many discussions that we have that they back off from their nuclear weapons and sit down at some point and then allow us to get in and inspect what they agreed to.”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고 미국과 마주 앉아 협상을 벌인 뒤 자신들이 합의한 것을 미국이 북한에 들어가 조사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들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고 있지만 북한이 핵으로 전 세계를 위협하는 현실에선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톰 스티븐스 씨는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 북측으로 넘어갔을 때, 또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을 때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희망이 있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예전의 긴장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2년 전 미군 유해 상자 55개를 반환하는 작은 조치를 취했지만 그 후로 어떤 추가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스티븐스 씨] “They made a small step in that direction when they returned the 55 coffins a couple years ago. But to my knowledge, nothing more has happened since that time. I think if they would allow me to go in and retrieve whatever remains could be retrieved, it would be a big step forward.”
스티븐스 씨는 현 시점에서 미군이 방북해 유해를 찾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이는 큰 진전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커닝햄 씨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의 공식 입장은 한반도 통일과 북한의 비핵화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커닝햄 회장] “Our official stance is that we favor reunification, we favor denuclearization. But to have anything less, I’m seeing 36,574 men who gave their lives in the defense of South Korea, and to say and have things go back for communism to prevail, that’s what we fought against. To allow anything other than that would not be keeping faith.”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3만6천 명 이상의 미군이 목숨을 바쳤고, 공산주의가 승리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커닝햄 씨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기존의 입장에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아 남북, 미-북 간 긴장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70년 전에 발발했던 것과 같은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1950년 6월25일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까지 계속된 한국전쟁에는 미군 178만9천 명이 참전했습니다.
이 가운데 3만6천574명이 전사하고 9만2천134명이 부상했습니다.
커닝햄 씨는 현재 미국에 한국전 참전용사 40만 명이 생존해 있다며, 이들의 평균 나이는 90세의 고령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카니입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보내 드리는 기획보도, 내일은 네 번째 순서로 한국전 참전 전직 의원 4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찰스 랭글 전 하원의원과의 인터뷰를 전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