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분석] 흔들리는 북-중 관계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박근혜 한국 대통령과 함께 지난 7월 열린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에 참석했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심상치 않습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중국을 비난하는가 하면 중국 역시 북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북-중 관계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것인지, 양국 관계의 현 주소와 전문가들의 분석을 백성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달 초 이례적으로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했습니다.

[녹취: 시진핑 주석] “안녕하십니까, 따자하오! 감사합니다, 씨에씨에!”

시 주석은 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을 지지하고 북한의 핵 보유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책기조를 재확인했습니다.

북한은 이런 중국을 향해 불만을 표시하듯 시 주석의 방한을 전후해 탄도미사일과 방사포를 쏘아 올렸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발사 훈련을 통하여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로 만든 전술 로켓들의 전투적 성능이 남김없이 검증됐으며 주체적인 로켓 사격 방법이 완성되게 됐습니다.”

때맞춰 중국 내에서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듭 제기됐습니다.

베이징 톈져경제연구소 양쥔펑 연구원은 지난 7일 북한을 중국의 `악성 자산'으로 지칭하며 포기를 주장했고, 같은 날 중국 온라인 뉴스사이트인 ‘왕이’는 한-중 관계의 정상적 발전이 북-중 관계에 비해 더욱 이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홍콩에서 발행되는 ‘명보’는 북한과 중국의 특수관계가 끝나간다는 기고문을 실었습니다.

냉랭해진 북-중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은 지난 27일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에 중국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최룡해 당시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북-중 혈맹’을 한껏 과시했던 것과 대조됩니다.

[녹취: 최룡해 당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우리 인민군대와 어깨 엮어 용감히 싸운 중국 인민지원군 장병들의 희생성과 위훈은 조-중 친선 역사와 더불어 길이 전해질 것입니다.”

오히려 지난 21일 중국을 ‘줏대없는 나라’라며 노골적으로 비난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일부 줏대없는 나라들도 맹종하여 미국의 구린내 나는 꽁무니를 따르면서 저마다 가련한 처지에 이른 박근혜를 껴안아보려고…”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한 데 중국이 동참한 데 대한 불만으로 읽혔습니다.

이 때문인지 지난 11일 북-중 우호조약 체결 기념일에도 양국 간 친선을 띄우는 메시지는 없었습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과 중국 간 이런 기류를 심상치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조너선 폴락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9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북-중 관계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너선 폴락 연구원] “I think it has changed over time, I mean, partly just simply because of China’s ever expanding relationship with South Korea…”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크게 개선하면서 북한의 일방적인 지원 요구에는 선을 긋는 태도가 분명해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여기에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중국의 불신이 점점 커져 있다는 점 또한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큰 이유로 꼽았습니다.

[녹취: 조너선 폴락 연구원] “They don’t have comfortable relationship with Kim Jong Un and I suspect that there may be growing doubts in China that they can achieve them…”

폴락 연구원은 북한이 이미 예고한 4차 핵실험을 강행하지 않은 이유가 중국의 영향력 때문일 수 있다며, 이런 식으로 대북 압박을 유지하면서도 북한과의 유대를 근본적으로 단절하지 않는 게 중국의 기본방침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그리고 장성택 처형이 중국의 심기를 크게 거스른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런 개별 사안들이 양국 관계를 서먹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은 아니라고 일축합니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대학의 김현욱 교환교수는 북한의 1,2차 핵실험 뒤에 북-중 관계가 복원됐었지만, 현재는 과거와 달리 중국 대북정책의 큰 틀이 변하는 중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중국이 좀 더 글로벌한 강대국으로 성장함에 있어서 북한이 더 이상 과거의 미-중 관계 사이에서 중국에게 부여해 줬던 완충지역의 역할이 점점 더 내려가고 있고, 한반도 통일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해서 중국 역시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이 같은 거시전략으로 북한에 대한 입김은 줄어들 수밖에 없지만 대신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 게 시진핑 체제의 과도기적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입니다.

뉴욕의 민간단체인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스티븐 노퍼 부회장 역시 중국에서 한국과 북한이 갖는 전략적 가치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데 주목했습니다.

[녹취: 노퍼 부회장] “South Korea means much greater for Chinese growth and development and China has grown tired of North Korean antics…”

성장과 개발 과정에서 한국을 필요로 하는 중국이 북한의 행동에 지쳐가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에 대한 신뢰 또한 잃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중국이 북한을 완충지역으로 둠으로써 얻는 이득보다 국제적 이해관계가 훨씬 크다고 판단한다면 한동안 북-중 간 냉각관계는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다음 달 미-한 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 가디언 연습을 앞두고 북한이 무력시위를 계속할 경우 양국 관계는 더욱 내리막길을 걸을 수도 있습니다.

컬럼비아대학의 중국 전문가 앤드루 네이선 교수는 북한이 최근 일본 등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며 중국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앤드루 네이선 교수] “The North Koreans also has been pretty skillful at looking for other sources…”

북한은 최근 일본인 납치자 문제 조사 협력을 통해 일본과 관계 개선에 나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나진항 3호 부두를 개통했고, 최근에는 정보통신과 한의학 분야 교류까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과는 거리를 두고, 러시아, 일본과는 한층 가까워진 ‘줄타기 외교’를 벌이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네이선 교수는 국가 간 관계는 늘 부침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움직임은 북-중 관계의 근본적인 성격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북-중 관계가 삐걱거린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특히 1992년 한-중 수교로 북-중 관계는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던 전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해군분석센터의 켄 고스 국제관계국장은 당시 보다 현재 양국 간 긴장이 훨씬 높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You also had Kim Il Sung in power at that time and that’s where it all becomes very unpredictable in the fact that you have young leader who is still consolidating his power…”

20년 전에는 권력기반이 확고한 김일성과 덩샤오핑이 나서 북-중 간 마찰을 조정할 수 있었지만 현재의 두 나라 지도부는 그럴 역량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고스 국장은 한반도 안정을 중시하는 중국의 기본전략에는 변화가 없지만, 북한의 핵 계획과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중국의 압박은 어느 때보다도 수위가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젊고 실용적인 지도부가 북한과의 전통적 관계를 중시하는 원로 인사들을 대체한 만큼 앞으로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지 않을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이념과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는 북-중 관계가 그렇게 쉽게 약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도 있습니다.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고, 북한은 중국의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만큼 두 나라 모두 어떻게든 관계를 복원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워싱턴의 민간기구인 정책연구소 존 페퍼 소장은 양국 관계를 보다 큰 그림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중 관계가 원만한 것으로 비쳐지던 시절에도 북한은 중국의 영향력이나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극도로 경계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존 페퍼 소장] “I don’t think what’s happening today is; a. unusual, b. irreversible, or c. represents a transformation of relationships within Northeast Asia.”

따라서 최근 양국 간 긴장은 특이하지도 않고, 되돌릴 수 없는 성격도 아니며,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역학관계로도 볼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가 북-중 관계의 틈새가 벌어진 상황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대학의 김현욱 교환교수는 한국 정부가 지금 시점에 대북 접촉과 교류를 늘려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동시에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