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피바다극단에서 활동하던 저명 성악가의 유해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묻혔습니다. 누나를 어머니 곁에 묻겠다는 재미 한인 의사의 노력으로 가족들은 60여 년 만에 이산의 고통을 내려놨습니다. 최초로 북한에서 미국으로 반출된 이산가족의 유해 안장식을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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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북한 피바다가극단 성악가 박경재 씨 노래]
지난달 31일 미국 일리노이주 다리엔 시에 있는 ‘클라렌돈 힐스 묘지’에 북한 피바다가극단 출신 성악가의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서울에서 인민군에 이끌려 북한으로 넘어간 박경재 씨. 먼 길을 돌고 돌아 64년 만에 미국의 어머니 곁에 나란히 누었습니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박 씨의 유해 일부를 지난해 평양 만수대 인근 묘지에서 미국으로 옮겨 온 동생 박문재 씨는 이날 조심스레 누나의 흔적을 가족들 곁에 묻었습니다.
[녹취: 박문재 씨] “누나, 문재인데, 결국 태평양을 건너 왔네. 엄마가 보고 싶어서 항상 그렇게 그리워하던 누나가 이제 결국은 유골로 태평양을 건너서 오늘 엄마 곁에 눕게 됐어.”
어린 시절 동생들과 뛰놀면서도 늘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던 누나는 결국 폴란드와 체코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북한에서 저명한 음악인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렇게 생사 여부 조차 모르고 살던 남매는 지난 1995년 44년 만에 평양에서 다시 만났지만, 꿈에도 그리던 재회의 기쁨은 2012년 박경재 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17년 만에 끝났습니다.
어머니 곁에 누나를 묻고 싶었던 박문재 씨는 심장내과 전문의로 10년 넘게 의료 봉사를 하며 인연을 맺은 북한 당국자들로부터 지난해 5월 누나 유골 반출을 승인 받았습니다.
10년 전 91살의 나이로 눈을 감는 순간까지 딸의 이름을 불렀던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게 된 겁니다.
[녹취: 박문재 씨] “엄마, 누나가 오늘 엄마 옆에 눕게 됐어. 항상 경재, 경재 하면서 그리워하고 울던 그 누나가 결국은 엄마 곁으로 승천을 했고.”
폭우 속에 진행된 이날 안장식에는 박문재 씨의 자녀와 동생 등 미국 각지에 사는 가족들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남과 북, 그리고 미국에 흩어져 살다 유골로 만난 모녀의 생전 모습을 회고하며 울고 웃었습니다.
박 씨의 딸 박수진 씨 부부는 사후에나마 이뤄진 할머니와 고모의 재회를 보기 위해 미 서부 워싱턴에서 날아왔습니다.
[녹취: 박수진 씨, 박문재 씨 장녀] “It’s raining and it’s very fitting that it represents the sadness that this daughter and mother could be separated for over sixty years but I still remain hopeful that we are all together…”
미 서부 워싱턴 주립대학 소아과 교수로 17대째 의사 가업을 잇고 있는 박 씨는 이날 내린 비가 60년 넘게 만나지 못한 두 모녀의 슬픔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면서 북한에 있는 사촌들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네팔주재 북한대사관을 통해 평양의 고모에게 편지를 전달했었다는 박 씨는 이번 세대 혹은 다음 세대에라도 모든 가족이 재회할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녹취: 박수진 씨, 박문재 씨 장녀] “People will still remember the love and keep up the dreams we will be able to reunite in the future whether it would be this generation or the next…”
박문재 씨는 제주도에 흩어져 있던 선조들의 묘를 이미 4년 전 일리노이 주 ‘클라렌돈 힐스 묘지’로 이장했습니다.
이어 마지막으로 남은 누나를 어머니 품에 안긴 80살 넘은 아들이자 동생은 이날 수십 년 이산의 아픔과 책임을 마침내 내려놨습니다.
[녹취: 박문재 씨] “슬프면서도 기쁜 행사였고. 누나, 저승에 가서 엄마하고 같이 잘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고 나도 이제 몇 년 있으면 조인할 거야.”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